언론고시의 철이 돌아왔다. 방송사 입사를 희망하는 사람 중에는 PD가 되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가끔 내 개인 홈페이지(http://koreada.com)에 PD가 꿈인 학생들의 질문이 올라와 있기도 한다. 미래의 PD들에게 혹시 도움이 될까해서 이 글을 쓴다.

PD는 산적(山賊)

세상에 태어나서 한번쯤 해볼 만한 게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축구 감독이란 말이 있다. 축구 감독 대신에 야구 감독이 들어가기도 하지만, 단체 종목의 스포츠 감독은 다 마찬가지일 것 같다. 어쨌든 그 둘의 공통점은 개성이 다른 여러 사람들의 특장을 잘 살려가면서 그들을 통해 자신의 머릿속 구상을 아름답고 멋지게 구현한다는 것이다. 지휘자의 손짓 하나에 악기의 연주가 달라지고, 감독의 눈짓 하나에 선수들의 몸놀림이 달라지면서 격조 높은 연주가 완성되거나, 멋진 승리를 따내는 순간을 떠올리면 누구라도 한번쯤 해볼 만 한 일이라는 데 동의할 것이다. 한마디로 '폼 난다'는 것이다. 볼이 터지게 악기를 불거나 승리를 위해 죽자사자 뛰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그 둘에 요즘은 아마도 한 가지를 더 추가해야 할 것 같다. PD. 몇 해 전이긴 하지만 청소년들이 선호하는 직업 1위가 PD였다. 아마도 PD란 직업도 지휘자나 감독처럼 폼 나 보이고 멋져 보여서일 것이다. 하지만 PD란 직업은 본래 폼하고는 거리가 멀다. 혹시 촬영장에서 PD를 찾으려면 가장 지저분한 꼬락서니를 한 인간을 찾으면 된다. 면도를 한 지 며칠이 지났는지, 머리는 감았는지, 세수를 하긴 한 건지…. 흔히 그런 상태를 '산적(山賊)됐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PD가 선호하는 직업이라면, 그 '산적'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멋진 프로그램 때문일 것이다. 오늘도 프로그램을 위해서 산적되기를 마다하지 않는 많은 PD들에게 '힘내라, 힘!'을 외쳐 주자.

피로주사와 프로도사

'PD'는 흔히 '프로듀서'라고도 한다. 나의 선배인 정길화 PD가 '프로듀서'를 가지고 재미있게 말풀이를 한 적이 있다. 프로듀서는 여러 단계를 밟아간단다. '피로주사(疲勞主事)'에서부터 시작한다. '출근은 의욕, 퇴근은 피로'로 점철되는 조연출 시절이 여기에 해당한다. 프로그램 좀 맡겨달라고 아우성치는 '프로주소', 프로그램 줬더니 죽을 쑤어버리는 '프로죽써',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드디어 그럴듯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프로됐어', 그 다음에는 능력을 인정받아 프로그램이 줄을 서는 '프로줄서', 그리고 입신의 경지인 '프로도사(道士)'.

피로주사로부터 프로도사에 이르는 PD들은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 사람들인가, 세부적으로 들여다보자. PD는 'Producer'의 약자라고 알려져 있다. 예를 들어 보통 'PD연합회'라고 부르는 PD들의 단체는 정식 명칭이 '한국방송프로듀서연합회'이다. 'PD'와 'Producer'를 같은 의미로 사용한 한 예이다. 하지만, 정확하지는 않다. 'Producer'는 보통 '기획자'로 번역된다. 방송 프로그램이 끝날 때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이 담당 업무와 함께 위로 죽 올라가는(혹은 가끔씩 옆으로 흐르는) 것(보통 'Credit'이라고 한다)을 보면, 보통 맨 앞에 나오는 게 바로 '기획'이다. 때로는 '책임프로듀서'라고 하기도 한다.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총괄적인 책임을 지는 사람이 기획자, 즉 프로듀서이다. 일반 회사로 치면 대략 '부장'에 해당될 기획자는 프로그램을 총지휘하지만, 직접 연출하지는 않는다. 큰 틀에서 방향을 제시하고 감독하는 것이 주 업무이다.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PD는 'Program Director', 즉 '프로그램 연출자'에 더 가깝다. '기획자'의 지휘와 감독을 받아, 프로그램을 실제로 제작하는 사람을 말한다. 영화로 치면 '감독'이라 할 수 있다. '기획자의 지휘와 감독'을 받기는 하지만, '연출자'는 사실상 프로그램의 모든 것을 맡아 한다. 그만큼 자율성이 보장되고 인정된다는 뜻이다.

보통 방송사에 입사하면 3년에서 5년 정도의 조연출(AD, Assistant Director) 과정을 거쳐 연출자가 된다. 연출자로서 십여 년 간 경험을 쌓아서 기획자가 된다. 조연출, 연출, 기획을 통틀어서 'PD'라고 하기도 한다. PD들이 별다른 이견없이 동의하는 것 중의 하나는 '가장 화려한 시절은 연출 시절', 즉 프로그램을 만들 때라는 것이다.

PD고시는 무슨 과목을 시험치나?

PD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것 중의 하나는 어떤 공부를 해야 하고 어떤 과를 선택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사실 전공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아니, 전공이 무엇이든 PD로서 업무를 수행하는 데는 다 도움이 된다. 예전에, MBC에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가요순위 프로그램에서 컴퓨터로 점수를 집계했다고 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요새는 다들 컴퓨터로 집계하지만, 10여 년 전만 해도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에서 컴퓨터 집계를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가요순위 프로그램에서 그것을 해낸 것이다. 담당 PD의 전공이 컴퓨터공학이었기 때문이다. 경제학을 전공한 사람은 경제 문제를 다루는 프로그램에서 강점을 가질 수 있겠고, 동·식물학 등을 전공한 사람은 자연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데 다른 사람보다 더 깊이 있는 이해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공과는 무관하게 자기의 관심 분야를 새롭게 발굴하고, 그래서 그 분야에 전문가가 되는 일도 드물지 않다. 한 라디오 PD는 대학교 시절의 전공과는 무관하게 오랫동안 민요 채집과 연구에 매달렸고, 지금에는 우리나라 민속과 민요에 관한 한 그보다 더 뛰어난 실력자를 찾기란 쉽지 않다.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전공은 그것이 무엇이든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 무슨 전공이든 다 PD로서의 업무 수행에 도움이 되고 또 관심있는 분야를 정해 오랫동안 매달리다 보면 어느 새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PD고시 잘 보려면

흔히 '언론고시'라는 말을 많이 쓴다. 물론 PD가 되기 위한 시험은 '언론고시' 안에 포함된다. 요새는 따로 'PD고시'라는 말도 쓰는 모양이다. 어느 언론사나 마찬가지지만 언론사 입사 시험은 까다롭고 어렵기보다는 높은 경쟁률이 일단 기를 죽인다. 몇 백 대 일의 경쟁률이니 말이다. 그 정도 되면 실력으로 당락이 결정되기보다는 운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PD가 되는 길은 크게 두 가지이다. 방송사 입사 시험을 거치는 방법과, '독립프로덕션'이라고 하는, 방송사에 프로그램을 납품하는 회사에 입사하는 것이다. 방송사 입사 시험은 해마다, 보통 가을철에 있다. 4년제 대학 졸업자나 졸업예정자, 남자의 경우 병역의무를 마친 사람, 혹은 면제자에게 응시자격이 주어진다. 1차 필기시험의 경우, 국어·영어·상식에 전공 과목이 추가되기도 한다. 필기 시험을 통과하면 2차로 작문, 혹은 논술 시험을 치른다. 주제는 보통 복수로 주어진다.

작문, 혹은 논술시험에서 주의해야 할 것은 다른 응시자들도 잘 아는, 정형화된 답이 나올 가능성이 있는 주제는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1. 북핵 문제를 둘러싼 6개 나라의 입장에 관해 쓰고 바람직한 해법을 제시하시오'와 '2. 꼭 한번 만나고 싶다'라는 글제가 주어졌다 치자. 1번의 경우는 언론사 입사를 준비한 사람이라면 거의 빤한 작문을 할 가능성이 많다. 작문(혹은 논술) 시험은 상식 시험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2번은 MBC 프로그램 중 하나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MBC 입사 시험에서 글제로 주어지기도 했다. 프로그램 내용처럼 어렸을 때 이별한 부모님, 친구, 선생님에 관한 이야기를 쓴다면 후한 점수를 받기 어려울 것이다. 두 번째 명심할 것은 PD는 창의성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창의성이 넘치는 작문을 하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정연한 논리 전개로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작문(논술) 시험을 통과하면 이제 두 차례 이상의 면접이 기다리고 있다. MBC의 경우 첫 번째 실무 면접이 몹시 까다롭다. 여러 응시자가 한꺼번에 집단 면접하는 게 아니라, 다수의 면접관들이 응시자 한 명을 면담한다. 주어지는 질문은 정답이 있는 게 아니다. 소신껏 이야기하면 된다. 시간은 약 5분에서 10분. 면접관들의 임무는 응시자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이 PD라는 직업에 잘 맞는지를 판별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절대로 거짓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내가 면접관으로 참여해 본 경험에 의하면, 5분에서 10분은 응시자가 거짓을 말하는지 진실을 말하는지를 판별하기에는 긴 시간이다. 물론 면접이 거짓말하는지 진실을 말하는지를 알아내기 위해서 진행되는 것은 아니지만, 거짓을 말하고 있다고 판단되면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렵다.

입사 시험이 해마다 같은 유형으로 치러지지는 않는다. 시험 일자가 공고될 때 꼼꼼히 살펴보고 입사 시험에 새롭게 포함되는 유형이 무엇인지 파악해야 한다. 독립프로덕션의 경우, 아직까지는 입사 시험을 따로 치르지는 않는다. 방송인 양성을 위한 교육기관에서 소정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에게 일반적으로 기회가 주어지지만, 그것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독립 프로덕션의 경우에도 점차 경쟁이 치열해져서 경험있고 능력있는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 시험을 치르지 않는다고 해서 결코 쉬운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프로도사가 되는 길

입사 시험에 합격했다고 해서 모두가 유능한 PD가 되는 것은 아니다. '프로죽써'나 그저 그런 '프로됐어'의 단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입사 시험보다 훨씬 더 치열한 노력이 있어야만 한다. 유능한 PD가 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훌륭한 PD는 노력만으로는 되지 않는 것 같다. 타고난 끼라든가 재능이 있어야 한다고들 이야기한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끼가 있든 없든 노력없이 훌륭한 PD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새로 들어오는 신입 PD들에게 기회있을 때마다 들려주는 이야기가 있다. 사물에 대해서 호기심을 가지고 진지하게 관찰하고 생각하는 습관을 기르라는 것이다. 상식, 아주 자명한 공리라고 해서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간단히 말해, 늘 '왜?'라는 질문을 던지라는 것이다. 그런 습관을 기르기 위해서는 쉬운 방법이 있다. 내 생활과 아주 가까운 곳에서 관심가질 만한 분야를 하나 정한다. 예를 들어, 가장 단순하게 '어느 길에 어떤 가로수가 있는지' 조사해 보고 가능하면 그것을 외우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가로수들이 달리 보이게 될 것이다. 어떤 가로수의 원산지는 어디인지, 언제 잎이 나고 꽃이 피는지, 그 나무에는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 관심은 자꾸 더 깊어지고 넓어지게 된다. 처음부터 관심 분야가 너무 넓으면 깊이가 없을 수 있다. 한 가지를 깊이 있게 공부하다보면 자연히 넓어지게 된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방법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라는 것이다. 설득이란 어려운 게 아니다. '가로수' 이야기를 다시 해 보자. 어떤 사람에게 가로수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그가 그 이야기에 재미있어 한다면 그 사람은 설득된 것이다. 상대가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면 설득에 실패한 것이다. 실패했을 때 우리는 흔히 그 사람을 탓한다. 그러나 먼저 내 이야기에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사실 프로그램을 제작한다는 것은 바로 그런 설득의 과정이다. 더 재미있는 이야기가 없는지 조사해보고 이야기 순서('구성'이라고 한다)를 바꿔보고 같은 이야기라도 주제를 달리해 보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PD는 몇 살인가?

이 글의 제목을 <PD를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이렇게 하고 나서 혼자 웃었다. 나는 지금껏 한번도 내가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중년의 사내라고 생각해 본적이 없다. 누가 내 나이를 물어본다든가, 아니면 '민증 까자'와 같은 무례한 요구를 해 오지 않는 한 내 스스로 나이를 헤아려 본 적은 없다. 어떤 때는 내 생물학적 나이를 계산하기 위해 머릿속에서 계산을 해 보기도 한다. 그리고 나서는 '어이쿠' 더럭 겁을 낸다. 그러나 괜찮다. 금방 또 잊어버리니까.

생물학적 나이라고 했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나이(그걸 사회적, 혹은 정신적, 그도 아니면 주관적 나이라고 해도 상관없다)는 아직 채 서른이 안 되었다. 이런 말하면 내 생물학적 나이를 아는 사람들 중에 누군가는 '도둑놈!' 하며 혀를 차겠지만, 정말이다. '피터팬', '양철북', 심지어 '정신지체아'라고 이야기해도 어쩔 수 없다. 나는 스물 여덟에서 스물 아홉을 향해 가고 있다.

가끔 노래방에 가면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즐겨 부른다. "조금씩 잊혀져 간다 / 머물러 있는 사랑인 줄 알았는데 / 또 하루 멀어져 간다 /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서른이 되면 청춘도 멀어져 가고, 내가 떠나지도 떠나 보낸 것도 아니지만 사랑도 잊혀져 가고…, 아, 서른이라는 게 그런 나이인가 보구나. 마지막 가사는 눈물나게 한다. 매일 이별하며 살다니…. 음미하듯 읊조려야 하는 그 대목에 이르면 괜히 센치해져서 악을 쓰게 된다.

그런데 비밀 하나를 이야기하자면, 나만 이 노래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란 거다. 서로 먼저 이 노래를 부르려고 다투다가 누군가 이 노래를 부르면 합창이 되어버리는 걸 보면, 또 틀림없이 마지막 구절에서 악을 쓰는 걸 보면 내 PD 동료들은 대개 나랑 비슷한 나이인 게 분명하다. 스물 여덟, 아니면 스물 아홉 말이다.

이불(二不)의 나이

스물 여덟에서 스물 아홉은 이불(二不)의 나이이다. 불온(不穩)한 나이이고 불임(不姙)의 나이이다. 왜 불온한가? 세상은 너무 낡았고 기성의 것들은 완강하다. 젊음이 숨쉬기에 공기는 너무 탁하고 뻑뻑하다. 마치 유격 훈련장의 개스실처럼…. 빨간 모자의 유격대 조교는 몽둥이를 들고 설쳐대면서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 헐떡거리게 만들어 놓고는 마침내는 방독면을 벗으라고 한다. 숨쉬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써보지만 참다참다 가느다랗게 쉬는 숨을 비집고 최루가스는 가슴 가득히 밀려들어와 허파를 쥐어뜯는다. 그때 불온은 개스실 천정 가까이 붙어있는 작은 창문이다. 그 창으로는 푸른 하늘과 청량한 매미 소리가 넘실댄다.

왜 불임인가? 푸른 하늘과 매미소리를 끝내 내 것으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마 개스실을 나서서 마음껏 푸른 하늘과 매미 소리를 호흡할 때 필시 나이를 한꺼번에 먹게 될 것이다. 꿈이란, 상상이란, 불편함과 고통스러움, 그리고 결핍을 먹고서만 자란다. 이불의 나이엔 언제나 세상과 나는 불화의 관계에 놓여 있다. 그러면서 화해를 꿈꾼다. 이불의 나이에 세상은 언제나 모순과 부당함 투성이다. 그러므로 나는 조화와 올바른 것을 꿈꾼다.

PD에게는 원숙함의 나이라는 것은 없다. 최승자 시인이 그랬다. 원숙함이란 이제는 익을 대로 익어서 썩을 일밖에는 없는 참외라고.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PD는 언제나 이불의 나이에 머물러야 한다. 스물 여덟에서 스물 아홉으로 가는 중이어야 한다. PD가 되기 위해서는 세상이 '민증 까자'고 했을 때, 언제나 자신만만하게 스물 여덟 살 하고 몇 개월의 민증을 까야 한다. 그리고 세상과의 불화를 선언하고 꿈꾸는 자의 자세를 보여야 한다.

김환균 / MBC PD

   

김환균PD는 87년 MBC에 입사해 줄곧 교양프로그램을 제작해왔다. <인간시대>, <신인간시대>, <PD수첩>, <MBC 다큐스페셜>, <이제는 말할 수 있다>, 2부작 다큐멘터리 <체르노빌, 그 후 10년>, <MBC 스페셜-'미국'> 시리즈 등을 연출했다. 2001년부터 2002년까지 전국문화방송 노동조합 사무처장을 지냈으며 현재는 2004년판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제작에 참여하고 있다. 
‘올해의 프로듀서상’(95)과 ‘통일언론상 대상’(96, 99)을 수상한 것을 비롯해 엠네스티 언론상(<이제는 말할 수 있다-민족일보와 조용수> 2000년), '방송대상'(<MBC스페셜 - '미국'> 2003) 등을 수상했다. (김환균 PD 홈페이지   http://koread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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