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10월5일자 1면.
서로가 미리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조선·동아 10월5일자 1면에는 서울시청 앞 광장을 깨알같이 메우고 있는 군중 사진이 커다랗게 배치되어 있었다. 평소 집회·시위 기사에 대한 지면 할애에 지극히 인색하였던 두 신문이 집회 현장 사진을 1면에까지 큼지막하게 배치해 놓고 사회면에서 현장 사진과 현장에서 나온 선정적인 주장들을 여과없이 상세히 다루고 있었다.

시청 앞 10만을 '민심의 향배'로 규정하는 조선일보

이렇게 우리나라 보수신문들의 집중 조명을 받은 집회의 명칭은 이미 짐작하였던 바대로 '국가보안법 수호 국민대회'(이하 국민대회)다. 종교·보수단체들을 중심으로 10만여명의 인파가 모였던 집회로 용기백배한 조선일보는 <누가 10만 시민을 시청앞 광장에 불러 모았는가>라는 비장한 제목의 10월6일자 사설을 통해 집회의 의의를 이렇게 설명하였다.

"현 정권 들어 최대 규모의 반정부 성격의 집회다. 이들을 거리로 뛰쳐 나오게 한 것은 국가보안법이다. 해방 전후인 양 좌우가 정가에서 학원에서 언론에서 거리에서 부딪치고 있는 것이 지금의 상황이다." (조선일보 10월6일자 사설 <누가 10만 시민을 시청앞 광장에 불러 모았는가>))

시청 앞에서 열린 집회를 "현 정권 들어 최대 규모의 반정부 성격의 집회"로 의미를 부여한 조선일보는 집회 참가자들의 성격을 규정하면서 이들의 주장을 경제성장과 민주화의 기틀을 다진 우리나라 평범한 중장년층의 의견을 대변하는 목소리로 평가하였다.

"집회 참가자들은 대부분 중·장년층 이상이다. 대한민국이 이나마 나라의 면모를 갖추는 데 몸으로, 마음으로 힘을 보탰던 세대다. 최전방 참호에서 몸으로 침략전쟁을 막아냈던 이들도 이 세대였고, 주(週) 60∼70시간의 살인적 근무를 견디며 경제 발전을 일궜던 이들도 이 세대다. 오늘의 민주화도 이들이 다진 토대 위에서 가능했던 것이다. 나라를 지키고, 살림을 일으켜세우고, 민주화의 기틀을 만든 세대지만 시위나 집회에는 서툰 사람들이다. 시위나 집회는 타고난 전문가가 있겠거니 하고 자신들의 소관 밖으로 생각했던 사람들이다." (조선일보 10월6일자 사설 <누가 10만 시민을 시청앞 광장에 불러 모았는가>)

시청 앞 '국보법 수호집회'는 과연 제대로 된 민심인가

그러나 집회에 참석한 그들을 과연 우리의 평범한 아버지·어머니 세대의 목소리를 대변해 주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을까. 집회 참석자 가운데 대다수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이하 한기총) 산하 대형 교회들이 조직, 동원한 신도들이었다. 집회 참석자 중 대다수를 동원한 여의도순복음교회와 금란교회의 경우 각기 신도 수가 80만명과 10만명에 이른다.

한기총이 걸어온 길도 한국 민주화의 기틀과는 완전히 상반된 길이 아닐 수 없다. 89년 한기총 창설을 주도한 일부 원로들은 80년 전두환 당시 국보위 상임위원장을 위해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위한 조찬 기도회'를 열었던 인사들이다. 그리고 한국 개신교의 권력 야합, 성장 제일주의, 목회직 세습화 문제를 비판한 를 자기 반성과 비판으로서 겸허히 받아들이기는커녕 개신교에 대한 근거 없는 비난이라며 신도들을 동원해 시위를 벌였던 단체가 한기총이다. 

게다가 작년 8월에는 부시 미 대통령에게 한미동맹 지속과 주한미군 철수반대 등의 염원을 담은 서한을 보내 부시 대통령에게서 감사 친서를 받기도 했다. 각종 시국집회들마다 산하 대형 교회들의 신도들을 동원하는 한기총은 극단적인 숭미·반북적인 주장들을 내놓아 한반도 평화와 화해의 시대적인 조류와는 정반대의 길을 걸어 왔다. 현재 한기총은 과거 권력 유착과 비리, 친미 행위에 대한 따가운 내외의 비판에 직면해 있다.

여중생 추모- 탄핵반대 시위와는 정반대의 평가를 내리는 조선일보

하지만 조선일보는 한기총과 산하 대형 교회들이 조직, 동원한 신도들의 외침을 마치 우리 사회 중장년층의 여론을 대변해 주는 목소리, 더 나아가 국민 전체의 민심이라도 되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그러나 시청 앞 광장 10만의 외침을 이용해 여론을 호도하려는 조선일보의 모습은 과거 효순·미선 장갑차 사건에 항의한 국민들의 반미 시위와 노무현 대통령 탄핵 규탄 시위에 대해 조선일보가 보였던 태도와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당시에 조선일보는 국민들의 반미 시위를 한미동맹의 대의를 제대로 자각하지 못한 어리숙하고 충동적인 대중 감정의 발동 정도로 폄하하였다. 조선일보는 수차례 사설을 통해 반미 시위를 통한 문제 해결이 자칫 한미간 감정의 골을 깊게 하고 한미동맹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자제를 부탁했었다. 그리고 광화문 사거리와 시청 앞 광장을 가득 메운 탄핵반대 시위 참석자들을 가리켜 헌법재판소의 독립성을 위협하고 헌정 질서의 중단 사태를 초래하는 위험 행동이라고까지 경고하였다. 시청 앞에서 탄핵반대 시위가 열리면 헌정 질서를 문란케 할 혼란 행위이고 국가보안법 수호 대회가 열리면 나라의 존망을 걱정하는 민심의 대변 행위인 것인가.

"운동이나 시위는 문제제기는 될 수 있어도 문제의 해결이나 마무리일 수는 없다. 거꾸로 상처를 더 덧나게 할 염려도 있다. (중략) 어차피 한·미는 서로를 필요로 하고 있고, 주한미군은 한반도뿐만 아니라 동북아 전체의 안정을 지탱하는 균형자의 역할을 맡고 있다. 따라서 지금 모두가 고민해야 할 것은 현 상황을 풀 해결방안이다." (조선일보 2002년 11월 29일 사설 <'반미'를 넘어 해법을 찾자>)

"만약 탄핵을 반대하거나 찬성하는 시위대가 거리를 휩쓸고 다니는 상황이 온다면 그것이야말로 헌법재판소의 독립성을 위협하고, 헌정 질서의 중단이라는 비상사태를 초래할지도 모른다." (조선일보 3월15일자 사설 <찬반 의사표시는 합법적이고 평화적으로>)

친미수구적인 성향의 종교 집단이 수많은 인원을 동원해 집회를 성사시키면 수구 언론이 바통을 이어 받아 집회 내용 선전과 여론화 작업을 맡고 다시 정치권에서 이를 이용해 반통일적인 정책을 관철시키는 거대한 3자 합작의 판이 벌어지고 있다. 조선일보는 이 같은  일부 친미수구적인 성향의 종교 집단, 그리고 일부 반통일적인 정치권과 야합해 벌이는 혹세무민 여론호도 행위를 즉각 중단해야 할 것이다.  


최사라 /  언론비평 웹진 '필화'(www.pilhwa.com)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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