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한국교육방송공사)와 ‘EBS 수능특강’ 집필진들이 교재를 만들면서 타인의 저작물을 무단으로 인용해 그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역사교사로 일하던 A씨는 해외 사료를 직접 번역해 수업교재로 사용해왔는데 EBS 수능특강에 무단전재된 사실을 알고 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 제3부(주심 노영희 대법관)은 지난달 18일 EBS와 수능교재 집필진 5명이 A씨에게 약 580만 원을 배상하라는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해당 집필진 중에는 현재 역사 분야에서 대중적으로 활동하는 강사도 있다.  

이에 EBS는 EBSi 누리집 ‘알림방’에 <EBS 수능특강 세계사(2010년 발행) 교재의 저작권 관련 사항 안내>란 글을 올려 “한국교육방송공사는 위 교재에 게재된 사료번역문 46개의 사용에 대해 저작권자인 A씨의 사전 허락을 받지 못했으며 그 출처를 표시하지 않았다”며 “법원 판결에 따라 2010 ‘EBS 수능 특강 세계사’에 게재된 아래 각 사료번역문의 출처를 ‘A 편저, <심마니 세계사>’로 공지하니 학습에 참고하길 바란다”고 한 뒤 무단전재 부분을 모두 열거했다. 

▲ EBS 2010 수능특강 세계사
▲ EBS 2010 수능특강 세계사

 

판결문과 미디어오늘 취재를 종합하면, A씨는 세계사 교과서에 사료가 거의 실리지 않아서 각 시대별 대표적 문헌·연설·조약·선언문 등의 사료를 직접 번역(영어·일어 등)해 수업자료로 활용해오다 지난 2000년 4월 책으로 펴냈다. A씨의 교재는 출간 이후 여러 출판사에서 학습자료로 인용됐고, 수능시험이나 모의고사 출제문항 지문으로도 활용됐다. 

그러던 중 A씨는 EBS가 2010년 수능특강 교재에서 자신의 저작물을 무단전재한 사실을 알게 돼 2019년 12월 EBS와 수능교재 집필진 5명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A씨는 이들에게 약 1800만 원을 청구했다. 해당 액수의 산정근거는 기존 다른 EBS 강사가 저작권을 침해했을 때 A씨에게 지급한 금액, 수능교재 판매 현황 등을 근거로 했다. 

지난 2022년 6월 서울중앙지법은 EBS와 교재 집필진들의 무단전재 사실을 인정하고 A씨에게 약 58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 과정에서 EBS 측은 ‘EBS 수능교재’가 공익적 목적이 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EBS가 재원 마련을 위한 수익사업을 영위하므로 영리 목적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A씨는 피해액이 제대로 산정되지 않았고, 위자료를 100만 원만 책정한 것은 ‘EBS에 유리한 판단’이라며 상급법원을 찾았다.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5월 배상액을 약 4만원 추가하면서 “EBS와 집필진들은 과실로 A의 저작물인 서적 사료번역물을 무단으로 EBS 서적에 인용·전재하면서 그 출처를 표시하지 않고 임의로 내용을 변경해 A의 저작재산권으로서 복제권과 저작인격권으로서 성명표시권·동일성 유지권을 위법하게 침해했으므로 공동으로 A가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한편, A씨가 EBS 측에 제기한 소송은 더 있다. A씨는 EBS 측이 자신의 저작물을 무단전재한 것을 깨닫고 먼저 2018년 12월 민사소송을 제기했고, 추가로 무단전재 사실을 발견해 2019년 12월에 두 번째 소송을 제기했다. 이번 판결은 2019년 12월에 제기한 두 번째 소송 결과로 무단전재를 다투는 부분이 ‘2010 EBS 수능특강’ 한권에 불과했다. 2018년 12월에 제기한 소송은 2008~2017년 EBS 교재 18권과 2011~2018년 동영상 강의로 다툴 부분이 더 많으며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 EBSi 알림방에 올린 저작권 관련 공지
▲ EBSi 알림방에 올린 저작권 관련 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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