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K·현대자동차·LG 등 4대 그룹이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 이후 7년 만에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에 재가입했다. 재가입 배후에 정권이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등 전경련을 놓고 ‘정경유착’ 고리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평가다. 사실상 기업들이 7년 전 입장을 번복한 상황에서 다수 신문은 새로운 경제단체의 역할을 기대·환영한다는 논조의 기사들을 냈다. 진정으로 정경유착이 끊어졌는지, 진정한 경제단체의 역할이 무엇인지 등의 질문은 잘 보이지 않았다.

▲ 지난 20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전경련 회관 모습. ⓒ연합뉴스
▲ 지난 20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전경련 회관 모습. ⓒ연합뉴스

전경련은 지난 22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임시총회를 열고 류진 풍산그룹 회장을 새 회장으로 선임하면서 이름을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로 변경했다. 동시에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을 흡수해 4대 그룹의 15개 계열사가 한경협에 가입하게 됐다. 한경연 회원사였던 삼성증권을 제외하곤 모두 한경협 회원이 되는 것에 반대하지 않았다. 4대 그룹의 주요 계열사 대부분 ‘전경련 부활’에 참여한 것이다.

전경련과 4대 그룹은 2016년 박근혜 정부 요구로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거액을 출연해 ‘정경유착’ 비판을 받았다. 그해 12월, 4대 그룹이 탈퇴 의사를 밝히면서 전경련 해체 수순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윤석열 대통령 당선 이후 기류가 바뀌었다. 대선 당시 윤석열 후보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던 김병준 교수가 지난 2월 전경련 회장 직무대행에 취임했고, 이후 각종 해외 행사에 4대 그룹 총수가 동행했다. 김병준 전 직무대행은 현재 전경련 상임고문에 선임됐다.

▲ 지난 22일 전경련 회관 앞에서 4대 그룹 재가입을 규탄하고 있는 시민단체. 사진=참여연대
▲ 지난 22일 전경련 회관 앞에서 4대 그룹 재가입을 규탄하고 있는 시민단체. 사진=참여연대

전경련 부활을 놓고 “윤석열 정부 작품”이라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한겨레는 <꼼수로 간판만 바꾼 전경련, 정경유착 회귀 우려한다> 사설에서 “당선자 시절 윤 대통령은 경제단체장들과의 오찬을 전경련이 주선하게 했다. 전경련도 한-미 정상회담에 대한 여론조사를 벌여 ‘국민 지지가 높다’는 자료를 발표하는 등 윤 대통령 지원에 적극 나섰다”며 “지난 2월엔 윤석열 후보 캠프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을 지낸 김병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이 회장 직무대행을 맡았다. 조직 부활을 이끈 김 직무대행은 상임고문으로 남는다고 한다. 누가 봐도 독립한 경제단체의 모습은 아니다. 정경유착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전경련 회귀로 비친다”고 지적했다.

정경유착 고리가 여전히 있다는 지적은 시민사회에서도 나온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는 지난 22일 전경련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경련 즉각 해산을 요구했다. 2016년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뇌물죄, 제3자뇌물공여죄 등으로 고발했던 김은정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회장 등은 법원에서 실형을 선고받아 법의 심판을 받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국민 화합, 경제살리기 명목으로 모두 특별사면을 받았다”며 “4대 재벌대기업의 전경련 재가입은 재벌공화국으로의 회귀를 공식화한 것이자 반성 없이 국정농단 이전으로 돌아가겠다는 선언”이라고 했다.

▲ 23일자 조선 경제B 1면.
▲ 23일자 조선 경제B 1면.
▲ 23일자 중앙일보 10면.
▲ 23일자 중앙일보 10면.

사실상 기업들의 7년 전 약속이 무색해진 상황이지만 이를 지적하는 언론은 소수다. 오히려 한경협이 내건 ‘싱크탱크’의 역할을 기대한다는 목소리가 빈번했다. 일간지 중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세계일보 등이 한경협 출범 소식을 알리며 ‘미국 CSIS(전략국제문제연구소)’, ‘정책 싱크탱크’ 등을 제목으로 달았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 성명이 비중 있게 담긴 곳은 경향신문, 한겨레, 한국일보뿐이었다. 경향신문은 “한경연의 경우 박사급 인력이 25명에서 6명으로 줄어 기존 인력만 갖고 글로벌 싱크탱크가 되기엔 역부족”이라고 했다.

동아일보는 지난 9일 <전경련서 한경협으로… ‘기업가 정신’ 되살리는 주역 돼야> 사설에서 “이번 류 회장 체제 출범은 6년 넘게 난항을 겪어온 전경련의 정상 궤도 복귀 신호란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위상 추락의 주원인인 정경유착의 폐습을 철저히 털어내고, 재발 방지를 위한 내부 통제 장치를 만드는 게 급선무다. 대기업 이익만 대변하는 모습, 정치권력과 기업의 물밑 소통채널 역할에서 탈피해 자유시장경제를 지키는 ‘싱크탱크’로 새 출발을 하겠다는 약속도 차질 없이 이행돼야 한다”고 했다.

중앙일보도 지난 9일 <‘뉴 전경련’ 류진 한경협 회장에게 기대한다> 사설에서 “이와 함께 한경협이 재계의 이익단체를 넘어 기업가 정신과 자유시장 경제를 옹호하는 힘 있는 싱크탱크가 되기를 바란다. 우리도 미국기업연구소(AEI)나 헤리티지재단처럼 영향력 있고 존경받는 싱크탱크가 나올 때가 됐다”고 했고 세계일보는 지난 18일 <삼성 복귀 수순 밟는 전경련, 새 출발해 경제위기 극복하길> 사설에서 “한경협은 초심을 되살려 기업가 정신을 고취하는 주역으로 거듭나길 기대한다”고 했다.

▲ 23일자 한국경제 사설.
▲ 23일자 한국경제 사설.
▲ 22일자 매일경제 사설.
▲ 22일자 매일경제 사설.

경제신문도 같은 논조다. 비슷한 시기, 비슷한 구성의 사설을 잇따라 냈다. 한국경제는 지난 23일 <새 출발 한경협, 굳건한 자유시장경제 파수꾼 돼라> 사설을 냈고, 매일경제는 지난 22일 <새출발하는 한경협, 자유시장경제 지킬 주역으로 거듭나라> 사설을 냈다. 서울경제의 23일 사설 또한 <한경협, ‘민간 주도 역동적 경제’ 위한 싱크탱크단체로 거듭나라>이다.

결국, 전경련이 진정으로 ‘정경유착’을 끊어냈는지 질문은 흐려진 상황이다. 한국경제는 지난 18일 <정경유착이라는 낡은 프레임> 칼럼에서 “대기업집단을 대하는 정치적 프레임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 4대 그룹의 전경련 재가입을 둘러싼 정치 공방이 단적인 예”라며 “무엇보다 재벌과 특혜, 정경유착으로 연결되는 과거의 프레임으로 기업을 엮기에는 우리 경제가 직면한 상황이 녹록지 않다. 전경련의 환골탈태 못지않게 과거의 왜곡된 잣대로 기업을 재단하려는 시각에서 벗어나는 것, 그게 출발점이 돼야 한다”고 했다.

진정한 경제단체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도 필요해 보인다. 이창곤 한겨레 기자는 지난 1일 칼럼에서 “우리가 짚어야 할 서구와는 다른 한국 사용자단체의 특성이 있다. 배타적 경영권주의와 기업별 노동조합주의에 대한 강한 집착”이라며 “주요 단체에 대기업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란 점도 있다. 사용자단체가 처음 출현한 이래 거의 바뀌지 않은 데다 사용자단체 스스로 바꿀 수 없는 특성이다. 이는 국내의 사용자단체가 권한과 책임 간의 균형을 취하고, 또 기업별 교섭보다는 초기업별 단체교섭이 활성화하도록 하는 데는 강한 사회적 압력 없이는 절대 가능하지 않다는 생각”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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