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10명 중 7명이 국제기구명을 로마자 약칭이 아닌 우리말 약칭으로 쓰자는 입장으로 나타났다. ‘WHO’ 대신 ‘세계보건기구’로 표기하는 방식이다. 

우리말약칭제안모임이 여론조사기관 티엔오코리아에 의뢰해 성인남녀 1047명을 대상으로 지난달 7일부터 일주일간 16개 국제 조직의 로마자 약칭 인지도와 새로 만든 우리말 약칭 수용도에 대해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1.2%가 로마자 약칭 대신 우리말 약칭 사용을 원했다. 이번 조사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03%P이며 온라인 조사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번 조사에서는 ‘○○기구’로 번역되는 국제 조직 15개와 국내 경제에 영향을 크게 미치는 미국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 등 모두 16개 약칭을 대상으로 삼았다. 신문에서는 지면 제한을 이유로, 방송에서는 시간 제약을 이유로 우리말로 번역한 온 이름을 사용하기보다 로마자 머리글자로 이뤄진 약칭을 주로 사용한다. 예를 들어 ‘세계보건기구’는 ‘WHO’로 적거나 ‘더블유에이치오’로 부른다. 이 경우 글자 수에서는 로마자 약칭이 적지만 음절 수에서는 7음절이라 6음절인 ‘세계보건기구’보다 더 길고 국민들이 이해하기에도 장벽이 높다고 볼 수 있다.

▲ 국제기구명 우리말 약칭 수용도. 자료=한글문화연대
▲ 국제기구명 우리말 약칭 수용도. 자료=한글문화연대

이에 우리말약칭제안모임은 국내 조직에 ‘기구’라는 단어가 들어간 곳이 거의 없는지라 이 단어를 살리고 조직 성격을 표현하는 핵심 용어만 골라 로마자 약칭 글자 수와 비슷하게 우리말 약칭을 만들어 ‘무역기구, 보건기구, 원자력기구’ 등의 단어 사용을 제안했다. 

핵심 용어 하나만 선택하기 어려울 때는 여러 용어의 머리글자를 따내어 약칭을 만들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경제’와 ‘협력’의 머리글자만 따내어 ‘경협기구’로,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는 이미 사용하는 약어인 ‘지재권’을 가져와 ‘지재권기구’로 줄였다. 

해당 용어에 대한 수용도 조사 결과, 로마자 약칭의 인지도가 높은 경우에도 우리말 약칭을 선호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인지도 1위인 WHO(71.5%)를 ‘보건기구’로, 3위인 WTO(57.7%)를 ‘무역기구’로 바꿔 부르자는 제안에 적절하다는 응답이 각각 77.6%(5위), 79.9%(1위)로 나타났다. 

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를 ‘경협기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연공위’로,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를 ‘지재권기구’로 바꿔 부르자는 제안의 수용도는 60% 수준으로 약간 낮게 나타났다. 한글문화연대는 “이는 주요 단어의 머리글자만으로 약칭을 지은 영향”이라고 해석했다.

우리말약칭제안모임은 지난 3월 한글문화연대, 한글학회, 한국기자협회, 방송기자연합회, 한국어문기자협회 등이 모여 꾸렸고 국립국어원도 논의에 참여한다. 이들은 국제조직 영향이 커지면서 언론과 정부 공문서에서 국제 조직의 로마자 약칭이 빈번하게 사용되나 이를 국민들이 제대로 이해할 수 없어 소통 걸림돌이 된다는 데에 문제의식을 함께 했다. 국제 조직의 온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 우선이지만 부득이하게 줄여 불러야 할 때 로마자 약칭 대신 쓸 우리말 약칭을 만들어 권고하는 것이 이 모임의 목적이다. 

우리말약칭제안모임의 구성 단체 추천으로 꾸려진 연구위원회에는 언론인 3명, 국어학자 4명, 국어단체 관계자 2명이 활동하고 있다. 앞으로 유엔(UN) 관련 조직,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국제조직, 새로 설립되는 국제조직의 우리말 약칭을 만들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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