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 : 이순임 전 MBC공정방송노조 위원장.
피고 : MBC, 최승호 전 MBC 사장.
사건 : 손해배상 청구소송.
주문 : 法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 소송비는 원고가 부담한다.”
선고일 : 2023년 6월27일.
1심 재판부 : 서울중앙지법 민사48단독 장원정 판사.

신입사원 공채 시험 문제를 무단 유출하며 회사의 이념 편향을 문제 삼았던 전직 MBC 노조위원장이 MBC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으나 패소했다.

2018년 3월 MBC 신입사원 공채 필기시험 감독관이었던 이순임 전 MBC공정방송노조(보수 성향의 제2노조) 위원장은 시험 종결 후 필기 시험지를 MBC 인사부에 반환하지 않고 갖고 나온 뒤 회사 내부망에 일부 내용을 공개했다.

▲ 2018년 당시 무단 유출됐던 MBC 신입사원 공채필기 시험 문항.
▲ 2018년 당시 무단 유출됐던 MBC 신입사원 공채필기 시험 문항.

그가 ‘좌편향’이라고 문제 삼은 지문은 “남북 올림픽 단일팀에 대한 긍정 평가가 늘고 남북 간 대화 분위기도 고조된 현 시점에서 두 견해를 되짚어보고 그 의미를 평가하라. ‘평화’ 혹은 ‘공정성’에 관한 본인 생각을 드러나도록 하라”는 논술 문항과 ‘북한 선군정치 의미’를 묻는 객관식 문항이었다. 이 소식이 외부에 알려지며 일부 언론이 MBC 이념을 문제 삼는 등 갑론을박이 뒤따랐다.

그 직후 MBC는 이 전 위원장을 업무상 횡령죄와 저작권법 위반 등 혐의로 고소했다. 이 전 위원장은 3차례 피의자 출석 요구를 거부했고 2018년 7월 오전 체포영장에 의해 체포된 뒤 같은 날 석방됐다. 2018년 12월31일자로 MBC를 정년 퇴직한 그는 2019년 7월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미디어특별위원회 위원에 임명됐고, 이듬해 총선에선 당시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위성 정당인 미래한국당 비례대표 공천을 신청했다.

이 전 위원장은 2019년 5월 벌금 300만 원의 약식명령을 내린 서울남부지법에 불복하여 정식 재판을 청구했고 2020년 1월 같은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2021년 1월 2심 법원의 검찰 항소 기각으로 그해 2월 무죄가 확정됐다. 법원은 이 전 위원장 행위가 업무상 횡령 및 저작권 위반 구성요건에 해당한다면서도 “MBC는 공영방송을 하는 기관으로 공정성 및 언론, 표현의 자유를 수호해야 할 지위에 있기 때문에 MBC의 정치적 이념에 대한 의문이나 의혹 또는 그 개연성이 있는 한 광범위하게 문제 제기가 허용돼야 한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무죄가 확정되자 이 전 위원장은 2021년 11월 MBC와 최승호 전 MBC 사장을 상대로 4억 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최승호 사장 주도 아래 사내에서 투명인간 취급을 받았고, 최 사장이 MBC로 하여금 자신을 고소케 하여 수사기관에 체포·구금됐고 그로 인해 MBC에서의 역할에 손상을 입게 됐을 뿐 아니라 가족 구성원까지 충격을 받는 등 산정하기 어려운 경제적 피해와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서울중앙지법 민사48단독 장원정 판사는 지난달 27일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 소송비는 원고가 부담한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장 판사는 “원고(이순임)는 평소 적대 관계였던 피고(최승호)가 보복적 감정에서 형사 고소를 부당하게 주도했다고 주장하나 당초 원고가 닉네임으로 게시한 게시물에 대해 고소가 이뤄졌던 것이고, 그 수사 과정에서 원고 스스로 시험지 외부 유출 등을 시인하는 내용이 담긴 대외적 기자회견을 하는 바람에 원고에 대한 인지가 이뤄진 정황에 비춰보면, 처음부터 원고를 특정해 ‘찍어낼 ’ 목적으로 고소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장 판사는 “원고는 참고인 조사를 포함해 총 4차례 출석 요구에 불응하는 바람에 체포 영장에 의해 체포된 것”이라며 “그 와중에 피고들(MBC·최승호)에 의한 관여 행위가 있었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장 판사는 “원고에 대한 피의사실 자체가 업무상 횡령이나 저작권법 위반의 구성요건 해당성을 충족한다는 점에서 MBC 고소가 권리 남용이라 인정될 수 있는 정도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에 의한 것이라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 신입사원 공채 시험 문제를 무단 유출했던 이순임 전 MBC 공정방송노조위원장이 MBC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으나 패소했다. 사진=유튜브 이순임TV 화면 갈무리.
▲ 신입사원 공채 시험 문제를 무단 유출했던 이순임 전 MBC 공정방송노조위원장이 MBC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으나 패소했다. 사진=유튜브 이순임TV 화면 갈무리.

장 판사는 “언론사 직원이 회사 대표의 정치적 성향이나 회사의 보도 방향에 관해 불만을 품고 회사 내부 게시글이나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섞어 공격적으로 비판하는 경우 회사 측에서 곧바로 형사 고소로 대응하는 것이 언론사가 지향해야 마땅할 토론,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 측면에서 바람직하다고 보이지는 않는다”면서도 “그러나 내부 시험지 무단 유출에 대해 재산권과 저작권 침해를 형사적 절차로 주장하는 것 또한 MBC의 헌법적, 법률적 권리라고 보이는 바 그런 권리 실현 행위 자체를 불법 행위로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장 판사는 “피고들(MBC·최승호)이 이 사건에 관해 원고에 형사 고소와 징계 이외의 외압 등을 가했다는 점을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다”며 “이런 점을 종합하면 피고들의 원고에 대한 불법 행위가 성립함을 인정하기 어렵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결했다.

이 전 위원장은 1심 패소에 항소하지 않을 전망이다. 그는 26일 통화에서 “나는 MBC 고소로 출근길에 경찰 4명에 의해 끌려가는 공포를 겪었다. 체포영장이 나올 만한 일인지 의문”이라며 “경찰이 팔을 붙잡고 골방으로 끌고 갔고 8시간 조사를 받았다. 화장실에 간다고 하니까 여경을 붙여 화장실 앞에서 기다렸고, 점심으로 중국 음식을 시켜주는 등 영화에서나 볼 법한 일을 갑자기 당했다”고 주장하면서도 “1심 판결엔 씁쓸하지만 재판을 계속하기 힘들어 여기서 멈출 생각”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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