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은 도달할 수 없는 성(城)인가?

NBC의 뉴스캐스터 쳇 헌틀리 Chet Huntley는 뉴스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내가 뉴스라고 결정하는 것이 곧 뉴스다(News is what I decide is news)" 헌틀리가 오만해서 그렇게 말한 건 아니었다. 보도되지 않은 사건들은 뉴스가 아니라고 말함으로써 헌틀리가 지적하고자 한 것은, 무엇이 뉴스가 될 것인가를 결정하는데 저널리스트의 판단이 필수적이며, 무엇을 보도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저널리스트 개개인은 높은 수준의 자율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높은 수준의 자율성으로 전문적인 식견에 근거해 뉴스 거리를 선택했다 하더라도, 보도한 내용이 모두 곧 사실이거나 진실인 것은 아니다.
우리는 매일 텔레비전, 라디오, 신문, 잡지, 그리고 인터넷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정보를 얻는다. 그 정보는 진실해야만 한다. 진실에 대한 욕망은 기본적인 것이다. 정보는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고 파악하는 데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만일 그 정보가 진실하지 않다면 그것에 근거해 우리가 파악하는 세계가 진실하지 않게 된다.

보도의 진실성, 진실한 보도가 그래서 강조된다. 진실한 정보에는 몇 가지 조건이 전제된다. 우선 정보가 담고 있는 사실이 정확해야 한다. 취재원은 그가 성실하고 성실하지 않고에 상관없이, 고의든 아니든 간에 잘못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 사실 확인이 필수이지만, 그것조차 만만한 것은 아니다. 편견이나 선입견이 개입할 수도 있다. 자신의 입장이나 사상, 혹은 정서가 사실의 판단에 개입하기도 한다.

진실(truth)은 사실(fact)을 뛰어넘는 개념이다. 사실 확인에 있어서, 정확성, 객관성, 공정성, 균형성을 다 견지했다 해도 그것으로써 '진실'이 언제나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들은 진실에 도달하기 위한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진실이 얼마나 도달하기 힘든지 알 수 있다.

서구 언론의 오지 보도

한 때 서구의 언론들은 세계의 오지를 탐사하면서 원주민들의 '진기한 삶'을 전달하는 데 열을 올렸다. 아랫도리만 겨우 가린 채, 더럽고 지저분한 곳에서 비위생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사냥한 고기를 피가 뚝뚝 떨어지는 채로 뜯어먹는 모습들, 일부다처제, 너무 고통스럽거나 위험해서 죽기도 하는 성인식 등…. 실제로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곳 사람들, '원주민'들은 자신들의 삶을 왜곡하거나 지나치게 진기하고 이상하게만 묘사한다고 화를 냈다. 서구의 언론이 자신들의 신앙일 뿐인 기독교적 관점에서 자신들을 바라본다거나,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아닌 다른 정치 체제는 야만적이거나 파괴적인 것으로만 바라본다는 것이다. 서구인들의 가치관으로 원주민을 바라봄으로써 은연중에 자민족 중심주의 또는 우월주의(ethnocentrism), 더 나아가서는 인종주의적 편견을 드러내고, 그럼으로써 서구 사회가 아닌 다른 문화권의 문화와 전통의 독자성을 무시한다는 것이다. 서구의 보도에 대한 그들의 항의는, 자신들의 삶에 대해 왜곡된 이미지를 제공해 선진국들의 투자와 원조를 저해함으로써 굴종 상태를 지속시키려는 제국주의적 의도가 숨어 있다는 데까지 이른다.

이런 예가 다른 문화권을 취재하는 경우, 그 문화권에 대한 이해부족으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 일어난 일을 한국인 기자가 보도할 때도 은연중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 당시 사회의 정치적 슬로건에 매몰될 위험은 항상 존재한다. 이 경우 사실(fact) 확인 차원의 문제를 뛰어넘어 사물에 대한 언론인의 해석, 그 해석의 근저를 이루는 가치관과 세계관의 문제가 된다.

두 가지 예를 들어보려고 한다. <무등산 타잔>의 예에서는 새마을운동이 전국적인 캠페인이었던 시절, '개발'이라는 근대 지향이 '무속'이라는 전근대적 요소에 대해 보이는 적대감, 가난과 궁핍을 개인적 차원으로만 환원시켜 버리는 자본주의적 가치관을 읽을 수 있다. <서해교전>에서는 그릇된 사실에 대한 확신, 혹은 성급한 애국주의가 사실 확인의 절차를 어떻게 뛰어넘는가, 그것은 또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초래하는가를 볼 수 있다.

무등산 타잔

1977년 4월 20일, 오후 3시경, 무등산 중턱 덕산골 무허가 건물을 철거하러 갔던, 당시 전라남도 광주시 동구청 소속 철거반원 7명 중 4명이 살해되었다. 자신의 집이 철거되고 불에 태워지자 격분한 박흥숙(당시 21세)이 철거반원들을 포박한 후 쇠망치로 머리를 가격해 살해한 사건이었다.

당시 언론은 무등산 덕산골을 '무당촌'으로 부르며 이곳이 마치 사이비종교의 소굴이자 범죄의 온상인 양 보도하기 시작했다. "전남의 제1호 도립공원이자 광주의 상징인 무등산이 사이비종교의 아성으로 말썽을 빚더니만 끝내 살인극"(H일보 4월22일). "광주 무등산 중턱에 무당·점쟁이·박수 등 미신집단이 모여 무당촌을 형성"(C일보 4월21일). "풍치 좋은 계곡이 바로 사이비종교 단체가 집단을 이루고 있는 덕산계곡"(J일보 4월21일) 등.

언론은 그가 이소룡을 좋아해 무술을 즐겨 연마했으며, 다람쥐처럼 재빠르게 산을 뛰어다녔다는 증언자의 말을 인용하며, 그에게 '무등산 타잔'이란 별명을 붙여주었다. 기사는 주로 사건의 엽기성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몇 가지의 오보는 제외하자. 사건의 발생, 범인, 범행 수법 등에 대한 기사는 사실보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해석이라는 차원에서 보자면, 사건의 엽기성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번듯한 집에서는 도저히 살 기회가 없었던, 중학교 진학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가난했던던 '도시 빈민 박흥숙'의 모습은 가려졌다. 그는 1980년 12월 24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재판 과정에서 그가 살아온 이력과 철거된 집이 어머니와 동생들과 함께 살기 위해 60일 동안 혼자서 지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많은 이들이 그의 구명운동에 나서기도 했다는 것이다. 엽기적인 살인마에서 그는 섬세하고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검정고시를 치르면서 미래를 꿈꾸었던 긍정적인 청년으로 바뀌었다.

이 사건의 진실은 살인마 박흥숙도 아니고, 착하고 성실한 청년 박흥숙도 아니다. 그 모두와, 당시 커다란 사회 문제였던 도시 빈민의 문제를 함께 놓고서 생각할 때만 진실이 드러난다. 성실한 청년이 왜 살인마가 되었는가, 그 배경에는 바로 도시 빈민 문제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서해 교전

1999년과 2002년에 두 차례 서해 해상에서 남과 북의 무력 충돌이 있었다.

1999년의 상황을 살펴보자. 꽃게잡이 북한 어선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북한 경비정들이 북방한계선(NLL, Northern Limit Line)을 넘으면서 충돌이 시작되었다. 6월 7일에 처음 북한 경비정들이 월선했지만, 일주일이 지날 때까지 별다른 충돌은 없었다. 그러나 15일에 이르러 대규모 전투가 벌어진다. 세계 해전 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선박 충돌 작전이 선보였다. 북측 어뢰정 한 척이 격침되고 5척이 대파되었으며, 3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7일과 15일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북한 경비정이 북방한계선을 넘었지만 우리 국방부는 충돌을 우려해 관망하고 있었다. 그러자 주류 언론들이 국방부의 그런 자세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영해 침범… 본때를 보여주어야 한다.‚ 여론에 등떠밀린 국방부가 결국 강경하게 대응했던 것이다.

주류 언론이 기댄 근거는, 북방한계선을 북한 경비정이 넘음으로써 영해를 침범했다는 것이었다. 즉, 북방한계선을 영해의 경계선으로 본 것이다. 이것은 진실인가?
1996년 이양호 당시 국방부장관은 북방한계선과 관련해, "공해상에 우리가 일방적으로 그어놓은 선"이라고 말했다가 언론의 집중 공격을 받고 결국 옷을 벗어야 했다. 그러나 이 전 국방장관의 견해를 지지하는 많은 증거들이 있다. 그 증거들이 말하는 바는 남과 북 사이에 해상경계선이 합의된 바가 없다는 것이다.

1999년 우리 언론은 북방한계선의 본질에 대한 사실 확인 작업없이 성급하게 애국심에만 호소함으로써 진실로부터 멀어졌고, 자칫하면 한반도에 다시 한번 전쟁의 참화를 불러 올 뻔한 위기로 몰아간 것이다. 만일 당시 보도가 진실에 입각했다면 당연히 강경대응을 부추기기보다는 남과 북으로 하여금 해상분계선 설정을 위한 협상에 나서라고 촉구했을 것이다.

진실이 왜곡되는 데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사실 확인이 철저하게 하지 못해서 생긴다. 사실 확인은 언론 보도의 알파(α)에 해당하는 것이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못한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선입견이나 편견, 정치적 입장과 같은 주관적인 요소들은 사실(fact)의 판단과 취사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 언론사나 언론인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이나 편견에 의해서 진실이 왜곡되는 경우가 더 큰 악영향을 끼친다. 왜냐하면 사실의 해석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사실들을 전혀 다른 맥락에 위치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앞에 든 예들은 언론사의, 혹은 언론인의 주관적인 요소들이 영향을 미쳐 진실의 왜곡이 일어난 경우라고 볼 수 있다.

때문에 언론인은 주관을 배제하고 객관적일 것을 요구받는다. 그런데 주관이 진공인 순도 100%의 객관이라는 것이 가능한가? 그것은 어쩌면 카프카(Franz Kafka) 소설 속의 카(K)가 가 닿지 못하는 성(城)처럼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이상인지도 모른다. 따라서 언론인에게 필요한 것은 나의 생각이 순도 100%의 객관이고 진실이라는 자신감이 아니라, 내 생각이 틀릴지 모른다는 겸허와, 객관과 진실을 끊임없이 지향하는 자세일 것이다.

사실 확인에 철저해서 100%의 객관적인 사실과 진실에 도달했다고 가정해 보자. 이제 수용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미치도록 해야 하는가 하는 가치관의 문제가 대두된다. 이것은 언론의 궁극적인 문제이자, 다큐멘터리스트로서 나의 고민이기도 하다.

쿠르드족은 미국의 전쟁을 비난하지 않는다?

   
▲ 한국군이 쿠웨이트에서의 수주간에 걸친 사막환경 적응 훈련후 이라크 북부 아르빌의 군기지에 도착하고 있다. ⓒ 연합뉴스
얼마 전 이라크 구르드족(Kurds) 다큐멘터리 감독안 자노 로즈비아니(Jano Rosebiani)와 함께, 그의 다큐멘터리 작품 「사담의 대학살(Saddam's Mass Graves)」이라는 다큐멘터리를 감상할 기회를 가졌다. 이 다큐멘터리는 답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은 본질적인 질문을 나에게 남겨주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비극에 대해서 다큐멘터리스트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 다큐멘터리가 추구하는 진실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제목의 '사담'은 사담 후세인(Saddam Hussein) 전 이라크 대통령을 말한다. 사담 후세인이 저지른, 분리 독립을 요구해 온 쿠르드족을 비롯한 여러 소수 민족들에 대한 학살을 이 다큐멘터리는 고발하고 있다. 쿠르드족에 대한 사담의 집단 학살은 1980년대 초에 시작되었다. 1987년과 1988년에는 더욱 심해졌다. 안팔(Anfal) 지역에서만 182,000명이 살해됐다. 1979년 사담이 권력을 장악한 이래, 약 4,500개의 마을이 파괴되었고, 약 130만 명이 실종되었으며 그 중 30만 명이 집단 매장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큐멘터리는 후반으로 치달으면서 등장하는, 유엔의 산하기구에서 활동하는 미국인들은, 후세인을 학살 책임자로서 법정에 세워야 한다고 말한다. 의당 그래야 할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대목에서 궁금증이 일었다. 로즈비아니씨는 미국의 이라크 전쟁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쿠르드족의 비극과는 별도로 미국의 전쟁에 대해서 비판적일까, 아니면 사담이 제거됨으로써 이제 진실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마련됐다고 생각할까, 적의 적인 미국에 대해 감사할까….

시사가 끝난 후 로즈비아니씨는 미국의 대이라크 전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이렇게 답변했다. "미국이 공격 과정에서 많은 실수를 저지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 쿠르드족 입장에서는 누구든 후세인 정권을 몰아내는 세력에게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다. 후세인을 제거함으로써 모든 학살의 진상규명의 길이 열렸다."
앞의 질문을 「사담의 대학살」과 관련해 바꿔보자. 쿠르드족이 겪은 비극을 폭로·고발하고 학살자의 처벌을 강조하기만 하면 되는가, 학살자의 처벌은 누구에 의해서든 어떤 방식으로든 이루어지기만 하면 되는 것인가, 그것은 하나의 범죄를 단죄하기 위해 또 다른 범죄를 허용하는 것은 아닌가, 학살자의 처벌을 위해 다시 학살을 부추기는 태도가 아닌가?

원심력과 구심력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사람은 항상 내부의 갈등을 경험한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보편적인 진실, 혹은 가치관과 어떤 연관을 갖는가?
나는 대한민국에 사는 한민족의 한 남자이다. 아마도 이런 기본적인 실존 상황이 내가 사물을 바라보고 판단하고 해석하는 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아무리 객관적이려고 해도 나는 내가 존재하는 상황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 것들은 나를 끊임없이 '나'라는 중심으로 끌어당기는 강력한 구심력(求心力)이다.

한편 나는 지구에 사는 인류의 일원이다. 그것은 나로 하여금 내가 바라보는 사물을 보편적인 차원, 인류적인 차원, 지구적인 차원에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평화, 자유, 평등이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들, 그것들은 '나'라는 중심으로 끌어당기는 구심력을 견제하는 원심력(遠心力)이다.
시인 엠마 라즐러스는 자유가 인류 보편의 가치가 되기 위해서는 어때야 되는가를 아주 간략하고 쉽게 이야기했다. 어느 한 사람이라도 자유롭지 못하다면, 그것은 자유가 아니다. 내가 평화롭게 살기 위해서 다른 누군가가 불안하거나 위태로와서는 안 된다, 나의 자유가 다른 사람의 부자유를 초래해서는 안 된다, 나에게 소중한 자유와 평화는 다른 사람에게도 똑같이 소중한 것이다.

구심력에만 끌린다면 나는 로즈비아니씨의 딜레마에 빠질 것이다. 원심력에만 끌린다면 나는 무중력의 공간으로 날아가 버릴 것이다. 구심력과 원심력이 팽팽하게 긴장하는 지점에 내가 만드는 다큐멘터리가 놓이기를 나는 소망한다.

김환균 / MBC PD

   

김환균PD는 87년 MBC에 입사해 줄곧 교양프로그램을 제작해왔다. <인간시대>, <신인간시대>, , , <이제는 말할 수 있다>, 2부작 다큐멘터리 <체르노빌, 그 후 10년>, 시리즈 등을 연출했다. 2001년부터 2002년까지 전국문화방송 노동조합 사무처장을 지냈으며 현재는 2004년판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제작에 참여하고 있다. 
‘올해의 프로듀서상’(95)과 ‘통일언론상 대상’(96, 99)을 수상한 것을 비롯해 엠네스티 언론상(<이제는 말할 수 있다-민족일보와 조용수> 2000년), '방송대상'( 2003) 등을 수상했다. (김환균 PD 홈페이지   http://koread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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