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핵폐수(nuclear wastewater) 해양 투기에 UN 산하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찬성 입장의 보고서를 공개하자 일부 언론은 IAEA 보고서를 ‘과학’으로 포장하며 여론전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IAEA 보고서는 가장 큰 쟁점이 되고 있는 다핵종제거설비(ALPS) 필터 성능을 검토하는 대목이 빠져 있고 서문부터 “보고서를 사용한 결과에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다”고 명시하는 등 신뢰성에 의심을 받고 있습니다.

일본 언론조차도 IAEA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도쿄신문은 7월8일 <원전처리수방출에 보증… IAEA는 정말 [중립]인가 일본 거액 분담금, 전력업계도 인원파견>에서 일본 정부가 IAEA 예산의 12%를 지원하고 있으며, 일본 각급 기관이 IAEA에 직원도 파견하고 있어 중립성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IAEA 보고서를 대하는 국내 언론의 태도는 3년 전 코로나19 확산 시기 UN 산하 국제보건기구(WHO)를 대하던 것과는 딴판입니다.

▲ 2021년 4월13일 후쿠시마 제1원전 부지 안에 보관된 오염수 탱크. ⓒ 연합뉴스
▲ 2021년 4월13일 후쿠시마 제1원전 부지 안에 보관된 오염수 탱크. ⓒ 연합뉴스

IAEA 보고서 공개 이후, ‘괴담 몰이 정치’ 천태만상

IAEA 보고서 공개 이후 핵폐수 방류의 타당성에 대한 검증이 더 필요하다는 주장을 괴담으로 치부하는 언론의 ‘괴담 몰이’ 보도는 더 거칠어지고 있습니다.

동아일보는 <오늘과 내일-‘킬러 괴담’에 번번히 흔들리는 나라>(7월12일, 박용 부국장), <광화문에서-마치 ‘타진요’ 같은 야 ‘후쿠시마 불신론’>(7월18일, 김지현 정치부 차장) 등에서 핵폐수 방류 우려 여론을 ‘킬러 괴담’, ‘타진요’와 같은 표현을 써가며 비난했고, 조선일보 역시 <사설-IAEA 대표를 당혹스럽게 만든 대한민국의 수준>(7월10일), <‘초밥 10인분’ 이재명가, 평생 생선 끊을 각오 섰나>(7월13일, 김창균 논설주간) 등에서 ‘대한민국의 수준’, ‘이재명 생선 끊을 각오 했느냐’며 조롱조로 비난했습니다.

조선일보는 <사설-식품 안전 가장 엄격한 유럽이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재개한 의미>(7월15일)에서 EU의 후쿠시마 농수산물 수입 재개 결정을 두고 “국민의 불안이 없어질 때까지 우리는 후쿠시마 농수산물 수입을 해서는 안된다”면서도 “그들의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태도, 과학에 대한 신뢰는 눈여겨봐야 한다”고 후쿠시마 농수산물 수입 재개에 운을 띄우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중앙일보의 경우 <사설-IAEA 후쿠시마 보고서 발표… 정부 다각도로 대책 챙겨야>(7월5일), <사설-한·일 정상, 국민이 안심할 때까지 협력 필요하다>(7월13일) 등 사설 논조는 한일 협력과 추가 검증의 필요성을 부정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조선일보, 동아일보보다는 온건했습니다. 하지만 칼럼 필진은 <후쿠시마 오염수 인간의 부정본능>(7월7일, 오병상), <해류는 몸을 뒤척이며 흐른다>(7월11일, 송호근)등에서 핵폐수 투기 반대 여론을 ‘확증편향’, ‘죽창가2’ 등으로 비하했습니다.

중국 지원 1.7% WHO 의심, 일본 지원 7.5% IAEA 신뢰?

2020년 코로나19 확산 초기 WHO는 각국의 입국금지 조치에 우려를 표하며 국제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2020년 1월 말까지는 “전문가들도 중국인 입국 금지는 감염병 관리 조치로 과대하고 예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조선일보 2020년 1월28일)라는 WHO 입장을 전하며 입국금지에 신중했던 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 등은 2월 돌변해 “중국 눈치 보느라 방역 문을 열어놨다가 중국이 한국을 위험국 취급하는 처지가 됐다”(조선일보 2020년 2월25일)며 ‘코로나 정치’에 나섰습니다.

그러면서 입국금지와 중국 코로나 확산 책임 추궁에 미온적인 WHO에 대한 공격적 보도가 잇따랐습니다. 그 핵심 이유로 꼽힌 것이 바로 중국이 WHO에 내는 돈입니다. 조선일보는 <WHO, 중국 눈치 보느라 위기상황 선포 늦추나>(2020년 1월30일)에서 “WHO의 소극적 대처가 돈 때문이라는 해석이 많다”고 주장했으며, 동아일보도 <WHO, 중국 눈치… 알맹이 없는 뒷북 ‘비상사태’>(2020년 2월1일)에서 중국이 WHO에 대규모 투자를 약속했다며 “WHO의 행보를 두고 일각에서는 ‘중국 눈치 보기’란 분석이 나온다”고 썼습니다. 비슷한 내용의 기사는 여전히 여러 언론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런 영향으로 아직도 WHO를 불신하는 여론이 국내에서 적지 않지만, 이를 ‘괴담’이라거나 ‘국제 망신’이라고 표현하는 언론은 없습니다.

코로나 사태 당시 WHO의 2년 예산은 52억 달러(2018~2019 회계연도)로, 워싱턴포스트 2020년 보도에 따르면 중국 기여분은 분담금과 기여금을 합쳐 8600만 달러였습니다. WHO 예산의 1.7%입니다. 반면 IAEA 1년 예산은 약 7억 3백만 달러로 도쿄신문이 밝힌 일본 기여분은 일본 외무성 거출금 63억 엔, 원자력규제청 2억 9천만 엔, 문부과학성 8천만 엔, 경제산업성 4억 4천만 엔, 환경성 3천만 엔을 합쳐 71.4억 엔입니다. 이를 달러로 환산하면 5300만 달러, IAEA 전체 예산의 7.5%입니다. 코로나19 시기 중국의 지원금을 이유로 WHO의 대응을 의심한 근거가 합리적이라면, IAEA 행보도 4배까지는 아니더라도 충분히 의심해야 맞습니다. IAEA 보고서를 신뢰해야 하는 게 맞다면, 코로나19 시기 언론 스스로 퍼뜨렸던 ‘친중 괴담’부터 성찰해야 할 것입니다.

▲ 2020년 1월30일 WHO가 중국 지원금 때문에 코로나에 소극적으로 대처한다는 조선일보 기사. WHO도 IAEA와 마찬가지로 UN 산하 국제기구며 의사결정에는 각국 보건전문가들이 참여한다.
▲ 2020년 1월30일 WHO가 중국 지원금 때문에 코로나에 소극적으로 대처한다는 조선일보 기사. WHO도 IAEA와 마찬가지로 UN 산하 국제기구며 의사결정에는 각국 보건전문가들이 참여한다.

과학은 어떤 ‘정답’을 자의적으로 정해놓고 답을 틀린 사람을 면박주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탐구하기 위해 인류가 만든 것입니다. 과학적 방법론의 핵심은 ‘재현성’입니다. 과학자들이 공개된 데이터와 실험방법을 통해 검증이 가능한 결과를 내놓으면, 그에 대한 의심에 응답하는 과정에서 이론이 견고해지고 마침내 정상과학(토마스 쿤)이 됩니다.

일본과 IAEA는 후쿠시마 핵폐수 검증 과정에서 다핵종 제거설비의 교체주기와 성능 측정 데이터 공개, 그리고 핵폐수의 시료 채취 과정에 대한 의문에 답하지 않았고 그래서 의심을 받는 겁니다. 입자물리학자 이종필 건국대 교수는 7월14일 경향신문 기고에서 “믿음을 강요하는 것은 과학이 아니다. 사이비가 아닌 이상 종교단체조차 덮어두고 믿음을 강요하지 않는다”고 지적했습니다. ‘괴담 몰이’에 열중하는 언론과 일부 ‘원전건설 전문가’들이 새겨들어야 할 지점입니다.

- 모니터 대상 : 2023년 7월4~20일 IAEA 후쿠시마 핵폐수 보고서 발표 관련 온라인·지면 기사

-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세계 양대 과학저널 네이쳐·사이언스지의 용어선택에 따라 ‘핵폐수(nuclear wastewater)’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 미디어오늘은 민주언론시민연합의 ‘민언련 모니터 보고서’를 제휴해 게재하고 있습니다. 해당 글은 미디어오늘 보도 내용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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