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중징계 처분을 받은 존 리(John Lee) 전 메리츠자산운용 대표가 한국일보 기자들을 상대로 거액의 소송을 진행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일보는 지난해 6월 존 리 대표가 자신의 아내 이름으로 투자한 친구의 회사에 메리츠자산운용의 펀드를 투자했다는 취지로 불법 투자 의혹을 제기했고, 보도 열흘 만에 존 리 대표는 사의를 표명했다.

2014년 메리츠자산운용 대표에 취임한 존 리 전 대표는 ‘가치 투자 전도사’로 유명했다. 코로나19 국면에서 화제 인물로 떠오른 그는 “커피값 아껴 주식 투자하라”, “부동산에 집착하지 말라”며 장기 주식 투자를 강조한 인물이다.

그런 그에게 ‘친구가 세운 부동산 관련 온라인투자연계금융(P2P)업체에 아내 명의로 투자했다’는 의혹은 치명적이었다. 대중들에게는 주식 투자를 권유하면서 정작 자신은 부동산에 투자한 것은 이율배반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존 리 전 대표의 불법 투자 의혹을 제기한 <‘동학개미운동’ 존리 불법투자 조사>라는 제하의 한국일보 보도(2022년 6월18일자 1면)는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 2016년 1월7일 당시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가 서울 북촌 사옥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2016년 1월7일 당시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가 서울 북촌 사옥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25일 제재심의위원회(제재심)를 열고 존 리 전 대표의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위반 혐의에 직무정지와 약 10억 원의 과징금, 과태료 부과를 결정했다. 그가 이해상충 관리 의무, 전문인력 유지 의무, 금융상품 광고 관련 준수 의무 등을 위반했다는 이유다. 금감원은 메리츠자산운용에는 기관경고 조치를 내렸다. 금융사 임원에 대한 제재는 주의, 주의적 경고, 문책 경고, 직무 정지, 해임 권고 등 5단계로 나뉘는데 문책 경고 이상은 중징계로 분류된다.

당초 제기된 차명 투자 의혹에 대해선 징계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 금감원은 존 리 전 대표 아내가 투자한 P2P 업체는 비상장회사이기 때문에 투자 신고 의무가 없다는 설명을 내놨다. 다만 메리츠자산운용 펀드가 해당 P2P 업체의 금융상품에 투자한 것에 관해서는 이해상충 관리에 소홀한 점이 있다고 판단, 존 리 전 대표에게 주의적 경고 조치를 내렸다.

존 리 전 대표는 금감원 중징계 직후 “이번 제재심에서 차명·불법 투자에 대한 혐의는 없는 것이 공식적으로 확인됐다”며 “이해상충은 없었으며 이해상충 발생 가능성에 대한 관리 소홀이 제재심의 주 내용”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금감원 제재심 조치의 인과관계를 왜곡, 과장, 허위 보도 하는 건들에 대해 강력한 법적 조치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실제 “존 리 전 대표가 차명 투자 의혹으로 금융감독원에서 중징계 처분을 받았다”는 취지로 차명 투자 의혹과 금감원 중징계를 연관 지은 언론들은 잇달아 정정보도문을 게시하고 있다. 존 리 전 대표 측이 언론중재위에 조정 신청을 제기한 것이다. 이를 테면, 언론들은 정정보도문을 통해 “존 리 전 대표의 징계 사항에서 차명 투자 의혹은 제외됐기 때문에 이를 바로잡는다”고 했다.

첫 보도한 한국일보 기자들은 피소된 상태다. 지난해 12월 존 리 전 대표는 한국일보와 기자 3명을 상대로 기사 삭제 및 10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으며 기자들을 형사 고소하기도 했다.

존 리 전 대표는 19일 통화에서 “한국일보는 기사로 나를 너무 괴롭혔다. 존재하지도 않는 차명계좌에 관해 처음에는 의혹을 제기했고 나중에는 기정사실화했다”며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줄 알았는데 그 뒤로도 다섯 번이나 보도가 이어졌다. 그 과정에 나에 대한 취재 노력은 없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번 금감원 제재 사유는 차명계좌와는 무관한 것”이라며 자신의 행위는 “법적으로 문제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의혹 제기 기사에 거액의 민사소송과 형사고소로 대응하는 건 언론 자유 측면에서 부적절하다’는 일각의 지적에 그는 “만약 미국이었다면 언론사가 망했을 것”이라며 “한국일보 보도는 날 죽인, 내 인생을 끝낸 보도다. 그 보도로 난 회사에서 쫓겨났다. 나와 5~6분 통화한 게 전부인데 한국일보가 취재에 노력을 들였다고 말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기자들을 상대로 한 법적 대응은 “나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권리 주장”이라며 “난 언론에 의해 무참히 도륙됐다. 미디어가 이렇게 공포스러운 것인지 모국인 한국에 와서 경험하게 됐다”고 했다.

다만 존 리 전 대표는 한국일보 보도가 다룬 사실관계 등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다툴 문제”라며 말을 아꼈다.

▲ 2022년 6월18일자 한국일보 1면 보도. 한국일보 보도는 존 리 전 대표의 불법 투자 의혹을 제기했다.
▲ 2022년 6월18일자 한국일보 1면 보도. 한국일보 보도는 존 리 전 대표의 불법 투자 의혹을 제기했다.

존 리 전 대표의 불법 투자 의혹을 제기한 이대혁 한국일보 기자는 “존 리 대표가 소송을 걸어온 만큼 소송에 충실히 임할 것”이라며 “존 리는 이해상충이 없었다는 식으로 주장하는데 금감원은 존 리 아내가 지분을 가지고 있는 업체에 메리츠자산운용이 펀드 투자한 것에 주의적 경고를 내렸다. 그가 왜 이해상충이 없다는 취지로 주장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 기자는 “금감원은 메리츠자산운용에 대해 기관경고 조치를 내리기도 했는데, 아직 그 사유를 공개하진 않았다. 이를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기관경고는 영업정지 다음으로 무거운 징계다. 존 리 전 대표 책임이 작지 않다. 본인이 대표로 있던 시절의 직무에 위법이 있었다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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