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국가보안법 위반 게시물 심의 관행이 깨졌다. 그동안 국가정보원과 경찰의 요청대로 국가보안법 위반 게시물 심의가 이뤄졌으나 최근 윤성옥 심의위원이 지속적으로 소수의견을 내고 있다. 윤성옥 위원(더불어민주당 추천)은 북한을 단순히 소개하거나 언론에 보도된 것과 같은 내용의 게시물까지 차단하는 건 과도하다는 입장이다.

19일 통신심의소위원회 회의와 6월 회의록을 확인한 결과 윤성옥 위원은 이달 열린 국가보안법 위반 게시물을 다룬 회의 세차례 모두 일부 안건에 소수의견으로 ‘해당없음’ 입장을 냈다. 방통심의위의 통신소위는 인터넷 게시글과 영상 등을 심의한다. 

통신소위는 19일 회의를 열고 89건의 국가보안법 위반 게시물의 시정요구(삭제 또는 차단)를 결정했다. 이 가운데 6건은 윤성옥 위원만 소수 의견으로 ‘해당 없음’ 의견을 냈다.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사이트 차단 화면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사이트 차단 화면

이날 방통심의위 사무처는 국가보안법 위반 심의 요청 게시물에 관해 “요청기관에선 해당 정보들이 반국가단체인 북한의 대남선전매체에서 제공하는 성명, 보도 등을 게재하거나 북한의 체제 이념 등에 적극 동조하는 내용으로 본다”며 “선군 정치를 선전, 지지하거나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3대를 찬양하는 내용 등을 게시하고 있다고 지적해 심의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윤성옥 위원은 이 가운데 9건의 차단이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특히 쟁점이 된 게시물 내용 중 3건은 ‘조선노동당 제8차 대회 김정은 위원장 개회사 전문’ 등을 담은 내용이다. 

윤성옥 위원은 “유튜브에 검색을 해봤더니 한 채널에 전체 영상이 게시돼 있고 네이버에서 검색했더니 언론사 뉴스핌이 전문을 게재했다”며 “이 사이트에서만 삭제하는 게 의미가 없다고 본다. 북한 보도나 매체에서 나온 정보를 무조건 삭제하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고 형평에 맞지도 않기에 해당 없음 의견 드린다”고 했다.

정민영 위원(더불어민주당 추천)은 사무처 의견을 존중한다고 밝히면서도 “고민되는 부분들이 좀 있다”며 “지금까지 심의를 통해 결정해온 기준에 비춰보면 접속 차단을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느 정도 선까지 그렇게 해야 하는지 고민스럽다. 빠른 시일 내에 의견을 정해 말씀드리겠다”고 했다. 

▲ 북한 선전 유튜브 영상 갈무리
▲ 북한 선전 유튜브 영상 갈무리

윤성옥 위원은 앞선 회의에서도 같은 문제를 지적했다. 지난 12일 회의에서 윤성옥 위원은 406건의 국가보안법 위반 심의 요청 게시물 가운데 18건에 ‘해당 없음’ 의견을 냈다.

이날 윤성옥 위원은 “전반적으로 살펴보니 북한 인물 다큐도 있고, 북한 공연물, 노래 이런 것들이 포함돼 있다”며 “지금 우리 위원회가 적용하는 기준은 북한 관련 영상은 다 금지하는 건지, 기준이 뭔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인터넷에선 북한가요나 노래 금지를 결정했는데 만약 같은 내용을 방송에서, 통일 관련 프로그램에서 소개하면 규제형평이 맞지 않는다. 그런 것들이 정립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지난 5일엔 북한에서 선전용으로 만든 유튜브 영상 3건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차단하는 것이 적절한지가 논쟁이 됐다. 

해당 영상은 북한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등장해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거나 식당을 방문하는 등 일상을 담은 내용이다. 북한에서 대외 선전용으로 만든 것으로 보인다. 심의에 앞서 자문기구인 통신자문특별위원회는 ‘해당없음’ 6인, ‘시정요구’ 3인 의견으로 제재 대상이 아니라고 보는 의견이 많았다. 이날 회의에선 5명의 위원 가운데 윤성옥, 정민영 위원만 해당 없음 의견을 냈다.

국가정보원은 해당 영상이 연출된 것임을 지적하며 “전체적인 내용이 북한에 대한 긍정 편향을 유발해 선전·선동에 취약한 청소년 등에게 북한에 대한 동경을 갖게끔 만들 수 있는 등 위험성이 있다”며 심의를 요청했다.

윤성옥 위원은 “국가보안법을 적용할 정도로 국가 존립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국정원에서는 선전 효과를 우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국가보안법만으로 적용해 제재하기엔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 만약 국정원이 우려하는 부분이 있다면 별도의 입법 노력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본다”고 했다. 

정민영 위원 역시 “이전 시정요구를 했던 게시물들과는 달리 북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일상을 그리는 게 주된 내용”이라며 “북한 체제에 대한 약간 긍정적인 묘사가 있지만 이 정도를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하는 정도라고 볼 수 있을지 굉장히 의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다른 위원들이 시정요구를 결정해 3(시정요구)대 2(해당없음)로 시정요구로 의결됐다.

그동안 국가보안법 위반 게시물 심의에선 국가정보원과 경찰의 심의 요청을 방통심의위 사무처가 대부분 수용하고, 심의위원들도 이견을 보이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러나 실제 위원들이 안건을 면밀히 살펴보지 못한 채 심의하는 문제가 있다. 일례로 4월24일 방통심의위 통신심의 회의록을 보면 3000여건의 게시물을 심의했는데 회의는 26분 만에 끝났다. 복수의 전 심의위원들에 따르면 통신심의의 경우 안건이 많아 위원들이 내용을 파악하지 않고 회의에 참석하는 경우가 있다.

국가보안법 관련 졸속·과잉 심의로 재판에서 패소한 사례도 있다. 2016년 박근혜 정부 방통심의위는 영국인이 운영하는 북한IT사이트 노스코리아테크에 차단을 결정했다. 노스코리아테크는 오픈넷과 함께 소송을 제기했고 2심 법원은 사이트가 북한을 찬양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제재 취소 판결을 해 확정됐다. 프리덤하우스는 2017년 한국을 인터넷 부분자유국으로 분류하며 노스코리아테크 사례를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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