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 계열사를 동원하는 ‘벌떼 입찰’을 통해 낙찰 받은 공공택지를 총수 자식들에게 몰아줘 대규모 분양이익을 얻게 한 호반건설이 600억 원대 과징금을 물게 된 가운데, 언론계에선 서울신문이 2019년 대주주 검증 차원에서 연속 보도했다가 일괄 삭제했던 호반건설 비리 보도들이 회자되고 있다. 광주·전남 지역을 기반으로 성장한 호반건설은 2021년 9월 서울신문 지분 53%를 인수해 최대 주주가 됐다.

서울신문이 2019년 8월 보도한 <호반, 유령 자회사로 벌떼 입찰 신도시·공공택지 ‘편법 싹쓸이’>, <일감 몰아주기보다 더 악질…호반 세 자녀에 ‘땅 몰아주기’>, <동탄·광명 ‘알짜 땅’ 장남에게 전매…편법 증여에 공공택지 악용> 등 ‘호반건설 그룹 대해부 기획’ 보도가 이번 공정거래위원회의 부당 내부거래 제재 조치로 사실로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 서울신문 2019년 8월5일자 1면.
▲ 서울신문 2019년 8월5일자 1면.

전국언론노조는 16일 성명을 통해 앞서 언급한 서울신문 보도들이 사실로 판명 났다며 “이런 짓으로 택지 분양 매출 5조8575억 원과 이익 1조3587억 원을 챙겼다고 하니 기함할 노릇”이라고 비판한 뒤 “지난 15일 공정위가 ‘과징금 608억 원’으로 (호반건설에) 책임을 물은 까닭”이라고 설명했다.

언론노조는 “지난해 1월 서울신문은 2019년 8월13일자 1면 보도 <호반 ‘3단계 편법 승계’ 재벌 세습 과정 판박이>를 비롯한 김상열 부자 기업 대물림 관련 기사 26건을 인터넷에서 지웠다”며 “호반이 보기에 껄끄러운 기사로는 모두 57건이나 사라졌다. 관련 보도와 기사 삭제 파동의 꼭짓점에 서울신문 회장 김상열이 있었으니 온전히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신문은 2019년 7월 호반건설이 서울신문 지분을 사들여 3대 주주로 올라서자 특별취재팀을 꾸려 ‘주주 검증 작업’에 나섰다. 호반그룹 일가의 경영 승계와 일감 몰아주기 등 각종 비리를 1면에 연속 보도했다. 하지만 지난해 1월 서울신문 편집국장은 부장단 회의에서 관련 기사를 일괄 삭제키로 했고 서울신문 안팎에선 편집권 침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구체적으로 보면, 2019년 7월5일부터 11월25일까지 서울신문에 게재된 호반 관련 보도 65건 가운데 57건이 지워졌다. ‘지면 1면 기사’만 해도 20건이나 사라졌고, 호반그룹 기업 대물림에 얽힌 의혹 보도는 26건이나 삭제된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증폭된 논란에 호반그룹 창업주 김상열 서울신문 회장이 직접 입장을 내어 “반론 기회조차 없이 지속된 일방적 기사들로 인해 호반그룹이 큰 상처를 입었음은 물론 서울신문 또한 대내외적 갈등과 어려움을 겪었다”며 삭제 조치 정당성을 강변하기도 했다.

▲ 서울신문 2019년 7월15일자 1면.
▲ 서울신문 2019년 7월15일자 1면.

언론노조는 이번 성명에서 김 회장을 겨냥해 “서울신문 회장이 지금 져야 할 첫 번째 사회적 책임은 삭제된 기사 57건을 온전히 되살리는 것”이라며 “이 정도의 사회적 물의를 빚고도 알량한 힘자랑으로 자신의 치부를 가리고 편집권 독립에 먹칠을 한 책임을 질 생각이 없다면 이참에 언론계를 스스로 떠나는 게 좋지 않겠는가”라고 비판했다.

공정위는 지난 15일 “호반건설이 동일인(총수) 2세 등 특수관계인 소유의 호반건설주택, 호반산업 등을 부당하게 지원하고 사업 기회를 제공한 부당 내부거래 행위에 대해 시정명령 및 과징금 608억 원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김상열 회장이 지배하는 호반건설이 장남 김대헌 소유의 호반건설주택과 차남 김민성 소유의 호반산업을 지원하는 형태였다.

공정위에 따르면, 호반건설은 계열사 다수를 설립하고 비계열 협력사까지 동원해 추첨 입찰에 참가시키는 소위 ‘벌떼 입찰’을 통해 많은 공공택지를 확보했다. 이처럼 낙찰 받은 23개 공공택지를 2세 회사에 대규모로 양도했다. 23개 공공택지 시행 사업에서 발생한 분양 매출은 5조8575억 원, 분양 이익은 1조3587억 원에 달했다.

공정위는 “호반건설의 지원 행위로 인해 호반건설주택, 호반산업 등 2세 회사들은 급격하게 성장했고, 주거용 부동산 개발 및 공급업 시장, 종합건설업 시장에서의 지위가 크게 강화되는 등 공정한 거래 질서가 저해됐다”며 “이번 조치는 국민 주거 안정 등 공익적 목적으로 설계된 공공택지 공급 제도를 악용해 총수 일가의 편법적 부 이전에 활용한 행위를 적발·제재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평가했다.

▲ 원희룡 국토부장관 16일자 페이스북 화면 갈무리.
▲ 원희룡 국토부장관 16일자 페이스북 화면 갈무리.

원희룡 국토부장관은 16일 “호반건설이 벌떼 입찰로 알짜 공공택지를 대거 낙찰받은 뒤 그걸 두 아들 회사에 양도해, 아들들을 번듯한 회사 사장으로 만들었다”며 “2013~2015년 벌어진 이 건에 공정위에서 과징금 608억 원을 부과했지만 호반건설의 두 아들이 운영하는 회사들은 분양 이익만 1조3000억 원 이상을 벌었다. 불공정도 이런 불공정이 없다”고 비판했다.

원 장관은 “국토부는 먼저 해당 시기 등록 기준 충족 여부를 조사하고, 더 자세한 불법성 여부는 경찰, 검찰 수사로 밝혀질 수 있도록 하겠다”며 “현재 호반건설의 2019~2021년도 벌떼 입찰 건도 국토부가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 제도적 보완을 통해 벌떼 입찰을 원천봉쇄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호반건설 측은 “공정위 결정과 관련해 조사 과정에서 충분히 소명했는데도 당사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점 안타깝게 생각한다. 공정위 의결서 접수 후 이를 검토해 향후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라며 “결과를 떠나 고객 및 협력사, 회사 구성원 등 많은 분들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앞으로 더 엄격한 준법 경영 기준을 마련하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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