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8월 한가위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전국언론노조 신문민실위는 때가 때인지라 지난 20일 열린 회의에서 추석을 앞두고 언론사와 취재원 사이에 오고가는 ‘명절 선물’에 대해 다시 한번 언론인들의 마음가짐을 다져보기로 결정했다.

일부에서는 국내 경제사정 악화에 따라 각 언론사들의 상여금 봉투도 얇아진 시점에서 굳이 그런 문제를 상기할 필요가 있느냐는 물음도 있었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그렇게 넘어가기에는 최근 알려진 한 사건이 못내 마음 한구석을 짓누르고 있다.

언론계는 지난 14일 한겨레신문과 한국일보 등에 각각 실린 <굴비, 로비선물 대명사> <로비용 굴비가 ‘짭짤’, 다이아박힌 골프채 ‘깜짝’> 기사를 보고 혀를 찼다. 경제사정이 어렵더라도 힘 있고, 돈 있는 이들의 잘못된 관행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기사에는 언론인들의 눈길을 끄는 대목이 하나 더 포함돼 있었다. 한 건설업체 대표의 로비대상자 명단에 들어있었던 유력 중앙일간지 간부 1명이 누구냐는 것이었다. 애초 이를 단독보도 했던 연합뉴스의 13일자 기사에는 없었던 내용이어서 궁금증은 더욱 컸다.

확인된 바에 따르면, 30만원짜리 굴비 선물을 받은 유력 중앙일간지 간부는 조선일보의 L모 국장이라고 한다. 그는 미디어오늘 15일자에서 “후배와 함께 저녁 자리에서 몇 번 만났는데 설에 굴비를 보내와 차마 돌려주지 못하고 받은 것”이라면서 “당시 신문 만드는 것과 관계없는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금품 로비사건과는 관련이 없다”고 해명했다.

그의 말은 분명 사실일 것이다. 그것을 받았다고 해서 당시 방상훈 사장의 최측근에 있었던 그가 후배기자들에게 “어디어디를 좀 잘 써주라”고 지시했을리 만무하다. 그러나 민실위가 이 사건을 주목하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다.

조선일보를 비롯해 대부분의 언론사들은 15일 농림부 차관이 추석을 앞두고 고교 후배에게 1백만원의 ‘떡값’을 받았다가 사표를 쓰고야 만 사건을 비중 있게 보도했다. 그만큼 사회는 변했다. 그렇다면 금품 로비 사건 때마다 빠지지 않았던 언론계는 어떠한가. 앞서 ‘굴비로비’를 단독 보도했던 연합뉴스는 유독 이 국장의 이름만을 지운 채 서울중앙지검 기자실에 굴비 리스트에 들어있는 24명의 명단을 공개했다. 어디 그뿐인가. 이 사건을 접한 많은 수의 언론사들은 “그 정도쯤이야”라는 생각에 아예 보도자체를 꺼려했다고 한다. 거기에는 진보적인 인터넷신문들도 동참했다.

그나마 앞뒤 내막을 보도했던 미디어오늘도 산뜻하지는 못했다. 명예훼손을 우려한 탓이겠지만 역시 익명의 뒤에 당사자를 철저히 가린 탓에 ‘교훈’의 사례가 되지 못하고 있다. 민실위는 언제까지 언론계가 “'떡값'문제에 있어 자유로운 사람이 있으면 나와 보라”는 말에 기가 눌려 구태행위의 ‘공범자’로 남을지 걱정스러울 따름이다. 언론이 변해야 세상도 변한다는 말의 당위성은 이래서 나온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민주언론실천위원회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