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이 TV수신료 온라인 설문으로 공영방송에 부정적인 여론을 끌어올린 이래 학계에선 지금이야말로 공적재원 제도를 깊이 논의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공정성’을 볼모 삼는 정치권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공영방송이 선제적으로 뼈아픈 혁신안을 내놔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언론정보학회는 ‘공영방송 재원구조의 정치적 독립성: 수신료 징수 효율성을 중심으로’ 주제의 KBS 후원 특별세미나를 3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진행했다. 앞서 대통령실은 3월9일부터 한 달간 국민제안 홈페이지(국민참여토론)에서 현재 전기요금에 통합해 징수되는 수신료를 분리징수하는 방안에 대한 의견을 모았고, 조만간 정책 제안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김동준 공공미디어연구소장은 이날 발제에서 “수신료 분리징수가 현 정부 미디어 정책의 연장선상에서 등장했다고 보기 어렵기에 급작스러운 측면이 있다”며 “이례적으로 국회가 아닌 대통령실에서 직접 이 문제를 들고 나왔다는 점에서 정치적 목적이라는 비판적 시각이 제기된다”고 했다.

▲5월3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내셔널프레스클럽에서 한국언론정보학회의 KBS 후원 특별세미나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KBS
▲5월3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내셔널프레스클럽에서 한국언론정보학회의 KBS 후원 특별세미나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KBS

현재 KBS와 EBS는 공영방송이라기엔 재원에서의 수신료 비중이 너무 낮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KBS 총수입대비 수신료 비중은 2015년 39.3%에서 2022년 45.3%까지 근소한 증가세를 보여왔지만 이는 광고매출 하락의 영향이라는 분석이다. 수신료 3%를 받는 EBS의 경우 기타사업, 기타방송사업 비중이 높아 지난해 총수입 대비 수신료 비중도 6.8%에 그치고 있다. 김 소장은 “광고 수익 등 상업적 자금은 편성 상업성을 강화시키고 경제 상황에 따라 안정적 수익이 보장되기 어렵다”며 “수신료는 대중에 의해 지원 및 통제되고 정치나 자본권력 소유가 아니기에 이런 간섭이나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고 했다.

다만 한국 공영방송은 집권세력이 바뀌면 여권 우위로 지배구조가 재편되고 수신료 결정권을 국회가 쥐고 있어 재원의 안정성·예측가능성, 정치적 독립성 등 한계가 있다. 이에 윤석열 대통령도 대선 후보 시절 ‘공영방송의 정치적 중립성과 신뢰성 보장’ 등을 공약한 바 있다. 그러나 윤 대통령 취임 이후 공영방송에 대해선 공공성 강화 정책이 아닌 감사와 수사, 수신료 분리징수 등 압박이 두드러지고 있다.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미디어영상홍보학과 겸임교수는 수신료 관련 독립적 기구 설립을 포함한 제도개선 방안과 징수방식 개선, 수신료 재원의 배분 등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했다. 수신료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소극적으로 대응해선 ‘정책퇴화를 담보해서라도 외과적 수술로 제도를 교정’하려는 행정적·물리적 압박에 견딜 수 없다며, “공영방송 스스로 뭘 할지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토론에 나선 학자들은 ‘수신료 분리징수’ 의제화 자체를 받아들여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논의할 가치도 없는 것을 논의하는 상황이 답답하다는 생각이 든다”며 “전문가 중심 위원회를 구성해 수신료가 아닌 공영방송 공적 재원 문제에 관한 종합적 논의가 필요하다. KBS가 제안하고 국회가 결정하는 방식이 아닌 수신료 제도의 사회화가 필요하지 않나. 분리징수 찬반에 매몰돼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5월3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내셔널프레스클럽에서 한국언론정보학회의 KBS 후원 특별세미나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KBS
▲5월3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내셔널프레스클럽에서 한국언론정보학회의 KBS 후원 특별세미나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KBS

정준희 한양대 언론정보대학원 겸임교수는 “(여당의) ‘강제징수 폐지’ 현수막이 전국에 깔린 걸 볼 때, 윤 대통령이 ‘여가부 폐지’라고 페이스북에 한 줄 쓴 것을 본 여성학자·사회학자들이 느꼈을 자괴감 이상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KBS가 편향적이어서 기계적 균형을 맞추면 이런 문제가 없어질까, 아니다”라며 “양질의 저널리즘으로 누구도 압도할 탁월함을 만드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하다. 저널리즘 외부에서 존재감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그러려면 상당 부분 ‘경량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KBS 조직은 더 이상 이렇게 굴러갈 수 없다. 어떤 부분에서 살을 빼고 두텁게 만들지 어젠다를 띄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홍종윤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BK교수도 “저널리즘 관점에서의 해결책은 없다고 본다. 하지만 해야 할 건 있다고 본다”며 투명성과 설명책임을 강조했다. 홍 교수는 “보도 공정성을 문제 삼는 발언을 하나도 허투루 보면 안 되고 설명책임을 강력하게 져야 한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반드시 공격하면 KBS 스스로 국민들에게 설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5월3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내셔널프레스클럽에서 한국언론정보학회의 KBS 후원 특별세미나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KBS
▲5월3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내셔널프레스클럽에서 한국언론정보학회의 KBS 후원 특별세미나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KBS

김희경 미디어미래연구소 박사는 “KBS는 굉장히 다양한 절차로 책무를 수행하게끔 돼 있다. 유기적으로 피드백이 제작, 경영에 전달돼 내부 시스템으로 돌고 있나, 외부 재허가 평가제도가 타당하게 공영방송에 적용되고 있느냐”고 말한 뒤 “공영방송이 B2C 온라인플랫폼으로 어떻게 시청자들에게 깊숙이 다가갈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정두남 코바코(KOBACO) 연구위원은 “분리징수 얘기는 전체적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며 “한류가 인기를 끌다 보니 대한민국 정부가 문화산업정책을 의도적으로 추진해 성공했다는 소리가 나오는데, ‘한류외전’이란 책에서는 한류콘텐츠 성공열쇠로 ‘지원하되 개입하지 말라’는 김대중 정부 원칙이 주효했다고 해석하고 있다”고 했다.

토론에 참석한 엄경철 KBS공영미디어연구소장은 대통령직인수위의 110대 국정과제 등 어느 곳에도 ‘수신료 분리 징수’는 없었다며, 지난 2월 정순신 국가수사본부장 지명자의 자녀 학교폭력 관여 의혹을 제기한 KBS 보도 이후 분리징수 이슈가 불거진 점에 주목했다. “일련의 KBS 보도 여파가 아니면, 정부에 대한 비판 보도를 제약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수신료 분리징수 국민제안이 나온 배경을 설명할 근거를 찾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엄 소장은 분리징수로 수신료 재원이 줄면 대외 방송, 국제 방송, 장애인 방송, 특정 장르 방송 등이 위축될 수 있고 EBS에 대한 KBS 지원금 194억 원에도 영향을 미쳐 교육방송 기능이 약화될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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