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교식 중이던 학교에 무장괴한들이 들이닥쳐 학교를 점거하고 1000여명이 인질로 붙들렸다가 사상자가 된 사건이 발생했다. 인질극이 발생한 러시아는 국제사회의 주목을 꺼려 인질의 안전은 무시한 채 무력진압을 강행했고 국내외 여론은 지금 이를 비난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 잔혹한 역사의 순간을 우리 언론은 어떤 이미지를 선택해 보여주고 있을까. 슬금슬금 궁금증이 손끝을 빠져나와 신문을 향했다.

   
▲ 9월2일자 경향신문 [사진1]
인질극이 벌어진 3일간 각 신문사에 게재되었던 사진들을 정리해보았다. 보도 첫날과 둘째날엔 대략 한 두 장의 사진이 게재되었고 사태가 마무리된 4일에는 적어도 네다섯 장 정도의 사진이 실렸다. 모두 통신사의 사진이었으며 그 중에는 동영상을 캡쳐한 사진도 꽤 있었다.

   
▲ 9월2일자 중앙일보 [사진 2]
[사진1]은 9월 2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한겨레에 개재된 사진이고 [사진2]는 중앙일보 1면에 게시된 동영상 캡쳐 사진이다. 예측할 수 없었던 사건이었기에 이번 사건 보도사진은 동영상 캡쳐 사진이 필요했다는 것을 인정한다. 동영상은 순간에 일어난 사건의 현장성을 긴박하게 전달하는 효과를 가진다. 캡쳐 사진 역시 사건의 현장감과 참혹감을 전달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나치게 크로핑(화면의 불필요한 부분을 조정하는 것)해서 특정부분만을 확대해 선명도가 떨어진 캡쳐사 진은 현장감과 생동감을 담아내기 힘들다. 오히려 독자들의 시각적인 불쾌감과 일차적인 감정차원에서 분노만을 자극할 수도 있다. 캡쳐사진 자체가 사건의 본질적인 의미를 축소하거나 제한할 수도 있다.

   지나친 크로핑은 사건의 본질적 의미 축소시킬수도

예를 들어 진압요원들이 인질극 현장인 학교로부터 한 어린이를 급히 대피시키고 있는 장면을 전달함에 있어 중앙일보의 사진은 군인과 어린이를 부각시키기 위해 사진을 확대하고 주변을 크로핑함으로써 더욱 흐릿한 사진을 게재한 셈이다.

   
▲ 9월4일자 한겨레신문 [사진3]
인질극이 무력진압으로 인해 유혈참극으로 막을 내린 4일자 신문에는 주로 구출된 인질들의 사진이 게재되었다. [사진3]은 9월4일자 한겨레에 게재된 것이다. 갈증을 풀고 있는 인질들의 모습을 먼 거리에서 찍은 이 동영상 캡쳐 사진은 대부분의 신문사에 개재되었다. 3일간 체육관 한 구석에서 더위 때문에 속옷차림으로 이를 견뎠다는 인질들이 풀려나자마자 갈증을 풀고 있는 모습은 안쓰럽기도 하지만 자극적이다. 진압작전 이후의 현장 사진으로 게재된 사진은 이처럼 속옷차림의 소년·소녀들을 등장시켜 참극에 선정적인 느낌을 더하고 있었다.

   클로즈업 사진 어린 인질들만의 고통으로 제한

   
▲ 9월4일자 조선일보 [사진4]
[사진4]는 4일자 조선일보에 게재된 피범벅이 된 나체의 어린 소년이 구조되는 사진이다. 지옥 같았을 구출 현장을 각 신문사들 대부분이 부상당한 어린 소년·소녀의 모습으로 또는 오열하는 사람들을 클로즈업한 사진으로 보여주었다. 이러한 사진을 보는 독자 어느 한 사람의 마음도 편치 않았을 것이다. 인물을 둘러싼 상황과 배경을 비가시적인 것으로 만들고, 보는 이로 하여금 감정의 상태에 머물게 한다는 들뢰즈가 제시한 ‘클로즈업’의 효과가 여기서 발견된다. 피범벅에, 붕대를 감은, 두려움에 울먹이는 어린 인질들 위주의 사진을 통해 사건의 의미를 이들의 고통만으로 제한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아야겠다.

이러한 일차원적인 시선에서 선정적인 크로핑을 해대는 국내 신문들과는 대조적으로 뉴욕타임즈(9월2일자 6면)는 어린이가 구출되는 캡쳐사진, 인질극으로 잡힌 아이들의 어머니와 주민들의 참혹한 고통을 담은 사진과 구출에 힘쓰는 군인들을 담은 보도사진을 게재했다. 그리고 뉴욕타임즈(9월3일자 8면)는 공포스러워 하면서도 걱정하고 있는 여성들과 군인들이 대기하고 있는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는 사진과 아버지와 어머니인 듯한 사람들이 좌절하고 있는 모습의 아이를 안고 고통스러워하는 엄마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동시에 게재하고 있다.

각각 신문들이 3장의 보도사진을 동시에 게재함으로써 체첸 반군의 어린이 인질사건이 얼마나 비인간적이고 비윤리적인가를 냉철히 생각하게 하고 사건의 긴박감에 대한 이야기를 구성할 수 있도록 해주는 사진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고통을 직접 제시하기보다 여백이 있는 사진 있었다면

   
▲ 9월4일자 아사히 신문 [사진5]
이번 사건의 경우, 체첸의 독립을 요구하는 체첸 반군이 인질범이었고 이 사실이 세상의 이목을 끌까 무력으로 진압한 러시아 정부로 인해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국제사회는 러시아 정부의 이러한 대응에 비난의 목소리를 높여가고 있다. 인질들의 고통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고 폭발로 무너진 학교 건물 어디 즈음을 사진에 담았어도 충분히 상황의 참담함을 독자는 보았을 것이다. 그런 예로써 비교가 되는 사진이 4일 아사히신문 조간에 게재된 [사진5]다. 이번 사건 관련 사진을 정리하면서 고통을 직접적으로 제시하기보다 이를 상상해 볼 여백을 가진 사진이 부족하단 사실이 아쉬웠다. [사진5]와 같은 사진이 좀 더 많았더라면, 유혈진압의 결과에 가슴아파할 뿐만 아니라 유혈진압 자체에 대한 정당성을 의심해보고 이 사건의 본질을 짚어볼 객관적 입장을 독자들이 견지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아마도 사진적 힘의 위력일 것이다.                    

 정리/옥미애 회원 민언련 매체사진비평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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