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가 우체국 택배노조 파업을 ‘구태’라고 주장하는 우정사업본부의 기고를 실은 뒤 택배노조의 반론 기고 게재 요청을 거절했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택배노동조합에 따르면 파이낸셜뉴스는 지난 26일 ‘택배노조 구태 이제는 버리자’라는 제목의 외부 특별기고를 실었다. 전국 우체국을 총괄하는 본사 격인 우정사업본부의 김홍재 우편사업단장이 이름을 올렸다.

김홍재 단장은 우체국 택배노동자들의 파업을 두고 “게릴라식 무기한 파업”이라며 “왜곡된 사실을 국민과 조합원에게 호도하고 있다”고 했다. 김 단장은 우정본부가 우체국택배노조와 단체협약 체결 과정에서 ‘개인당 일평균 190건 물량’을 부여하기로 한 단협 조항을 지역별로 유연 적용하고 배달 구역을 조정(확대)하자는 합리적 개정을 요구했지만, 노조가 대화 대신 파업을 택했다고 밝혔다.

▲지난 26일 파이낸셜뉴스 외부 특별기고 ‘택배노조 구태 이제는 버리자’
▲지난 26일 파이낸셜뉴스 외부 특별기고 ‘택배노조 구태 이제는 버리자’

 

김홍재 단장은 “우체국 택배노조는 2021년에도 단체행동에 돌입해 국민 불편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았다”며 “우체국을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비현실적 요구와 주장에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할 방침”이라고 했다. 김 단장은 우정사업본부가 택배 위탁수수료 조정(삭감)과 초소형 소포 배정 제외 안을 철회했는데도 노조가 현재까지 쟁점화하고 있다고도 했다.

 

우체국 위탁택배노동자들은 우정사업본부와 2년마다 업무위탁계약을 새로 쓰며 일하는 특수고용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일정 구역과 물량을 배정받아 건당 수수료를 받고 일한다. 물량 축소가 곧 임금삭감이란 뜻이다. 우정사업본부는 택배 물량이 많아지자 2002년 기존 정규직 집배원 외에 위탁택배를 도입했다. 이용자들은 모두 ‘우체국택배’란 이름으로 배달 받지만, 1kg 이하 소포는 집배원이, 고중량 택배는 위탁택배원이 주로 배달한다.

우체국 택배노조는 노동위원회 쟁의조정과 찬반투표를 거쳐 14일부터 부분파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들은 25일엔 하루 전면파업을 진행했다. 우정사업본부가 요구한 △기준 물량을 축소 △위탁 수수료를 1200원에서 850원 선으로 삭감 △구역 조정이 임금 대폭 삭감과 노동강도 강화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진경호 택배노조위원장은 “위탁배달원의 물량을 제한해 남는 택배는 월급제인 집배원들에게 공짜로 떠넘기게 된다”며 “우정사업본부 주장대로면 위탁택배원의 월 매출액은 130여만원 준다. 부가세와 지입료, 기름값 빼면 최저임금에도 미달한다”고 했다.

우정사업본부는 이들 안을 철회했다고 밝혔지만 노동자들은 “말뿐”이라고 말한다. 우정사업본부가 철회한 안과 관련해 ‘용역연구’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는데, 노조는 연구가 사측 요구를 관철하기 위한 요식행위라 보고 있다. 이들은 “실제 우정본부는 지난 과로사로 인한 사회적합의 시기 연구용역을 구실로 수수료를 대폭 삭감하고, 연구용역이 제시한 물가인상 보전안마저 무시한 바 있다”고 했다. 우정사업본부가 최근 발표한 ‘실적 공무직집배원’ 시범사업 계획에도 철회한 수수료·물량이 그대로 반영돼 있다.

▲전국택배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열린 우체국택배노조 하루 전면파업 택배노동자 총력 결의대회에서 일방적 물량 감축, 강제적 구역 조정 등을 규탄하며 임금삭감 결사 저지 우정사업본부 규탄 구호를 외치고 있다. ⓒ민중의소리
▲전국택배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열린 우체국택배노조 하루 전면파업 택배노동자 총력 결의대회에서 일방적 물량 감축, 강제적 구역 조정 등을 규탄하며 임금삭감 결사 저지 우정사업본부 규탄 구호를 외치고 있다. ⓒ민중의소리

 

기고는 전면파업 다음날 게재됐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택배노동조합과 파이낸셜뉴스 측에 따르면 택배노조는 이를 확인한 뒤 지난 28일 파이낸셜뉴스에 반론 기고를 게재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거부됐다.

한선범 택배노조 정책국장은 통화에서 “우정본부의 우편사업담당자가 경제지에 기고를 통해 노조를 일방 비난한 적은 없었다. 매우 이례적인 대응이었다”며 “사실을 바로잡으려 반론 기고 게재를 요청했지만 ‘어렵다’는 답을 받았다”고 했다.

한 국장은 “(파이낸셜뉴스 측 구성원으로부터) ‘아무래도 경제지니까 난처하다’는 답을 받았다. 마치 경제지는 노조 반론을 받으면 안 된다는 듯한 표현”이라며 “경제지들의 반노조 보도 폐해가 심각한 상황에서 반론 기고마저 거부하는 건 기본적으로 노조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한 국장은 우정사업본부 측 기고에 대해선 “임금 30% 삭감안을 반드시 강행하겠다는 의지가 읽힌다”며 “그 근본에는 윤석열 정부의 공공기관 예산삭감 방침에 따라 비정규직만 희생과 고통을 전가하는 전략으로 보인다”고 했다.

양형욱 파이낸셜뉴스 편집국장은 31일 통화에서 “보고를 못 받았다. 알아봐야 한다”며 “다음주 초 연락 달라”고 말했다. 편집 원칙상 택배노조 측 기고 게재 의사를 묻는 질문엔 “내부 논의를 해보고 그 다음에 생각해봐야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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