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박정희 정권에 맞서 싸우다 강제해직된 조선일보·동아일보 해직기자들이 옛 회사 앞에 다시 섰다. 해직기자들은 “조선·동아일보는 권력에 투항하고 기자들을 강제해직한 것을 즉시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과 홍준호 조선일보 발행인은 해직기자들이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을 보고 별다른 말 없이 옆을 지나갔다.

1975년 조선·동아일보 기자 100여 명은 정부와 언론에 의해 강제 해직됐다. 기자들이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만들고 공정보도를 하겠다고 나서자 정권이 조선·동아일보를 압박하고, 사측이 정권에 비판적인 기자들을 강제 해직한 사건이다. 조선·동아일보 기자들은 각각 조선투위·동아투위를 결성하고 현재까지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조선·동아의 사주들은 현재까지 공식적인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과 홍준호 조선일보 발행인이 조선투위 기자회견장을 본 후 조선일보 사옥을 빠져나가고 있다. 사진=미디어오늘.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과 홍준호 조선일보 발행인이 조선투위 기자회견장을 본 후 조선일보 사옥을 빠져나가고 있다. 사진=미디어오늘.

조선투위·동아투위 소속 전직 언론인들과 전국언론노동조합, 자유언론실천재단, 새언론포럼 등 언론단체들은 17일 조선일보·동아일보 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측에 사과를 요구했다.

한겨레에서 논설주간을 지낸 성한표 조선투위 위원장은 조선일보 사옥 앞에서 “조선일보 기자들은 언론탄압에 저항해 싸웠지만 신문사는 정권과 타협하고, 정권의 요구대로 기자 32명을 해고시켰다”고 지적했다. 성 위원장은 조선일보 후배들에게 조선투위와 자유언론에 대해 숙고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성 위원장은 “후배기자들에게 간곡하게 이야기한다. 권력이 언론을 탄압하고, 마음대로 부리려 하는 상황에서 굴복하는 건 기자가 아니다”라면서 “올바른 기자의 태도를 가지길 바란다. 선배들의 뒤는 따르지 못하더라도, 현재 상황을 고민해주고 결단해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완기 새언론포럼 회장은 “80세가 넘은 해직기자들이 조선일보·동아일보에 복직시켜달라고 요구하려고 이 자리에 섰겠는가”라면서 “단 한마디의 사죄나 반성도 없는 조선·동아의 문제점을 지적하기 위해서다. 사죄와 용서의 시효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했다. 이 회장은 “조선일보 내부에 있는 기자들은 회사에 소속된 노동자이지만, 회사는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이들이 사죄하고 용서를 빌 때까지 집회를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 

▲방상훈 사장과 홍준호 발행인이 조선투위 기자회견장 옆을 지나가고 있다. 사진=미디어오늘.
▲방상훈 사장과 홍준호 발행인이 조선투위 기자회견장 옆을 지나가고 있다. 사진=미디어오늘.

조선일보 앞에서 기자회견이 이뤄지고 있던 17일 오전 11시 48분경, 방상훈 사장과 홍준호 발행인이 사옥 정문으로 나왔다. 방 사장과 홍 발행인은 현장을 쳐다본 후 수행원과 함께 사옥을 빠져나갔다.

허육 동아투위 위원장은 “동아일보에서 해직된지 만 48년이 지났다”며 “여력이 다할 때까지 자유언론을 위해 투쟁하겠다”고 밝혔다. 동아투위 소속으로 1975년 해직된 이부영 자유언론실천재단 명예 이사장은 “광화문 거리에 다시 서니 만감이 교차한다”면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사주를 향해 “지금 대한민국이 당신들이 꿈꾼 세상인가”라고 비판했다.

▲동아투위 기자들과 전국언론노동조합, 자유언론실천재단, 새언론포럼 등이 동아일보 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있다. 사진=미디어오늘.
▲동아투위 기자들과 전국언론노동조합, 자유언론실천재단, 새언론포럼 등이 동아일보 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있다. 사진=미디어오늘.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한국일보 소속으로 현장 취재를 한 조성호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은 “많은 세월이 지났는데 동아일보는 집단 해고의 당사자들에게 원상회복은커녕 반성과 사과도 없이 침묵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동아투위의 투쟁은 우리 모두의 삶을 위한 투쟁이었다”고 평가했다.

윤창현 언론노조 위원장은 “조선·동아 선배들이 아니면 우리가 어떤 희망을 보고 버틸 수 있었겠는가”라며 “48년 전 자유언론의 가치를 외친 언론인들을 거리로 내쫓고, 독재 권력과 야합한 동아일보의 정신이 48년이 지난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개탄스럽다”고 했다. 윤 위원장은 “선배들이 버텨주신다면 젊은 언론인이 못 할 일이 뭐가 있겠나”라며 자유언론을 위한 투쟁에 앞으로도 함께 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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