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계 대지 말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러면 과로사한 분은 다른 세대였나요?” 

오세윤 네이버 노조 지회장(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IT위원장)이 젊은 세대가 ‘몰아서 일하고 몰아서 쉬는’ 노동을 선호한다는 여권의 입장에 대한 견해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김한울 IT노조(한국정보통신산업노동조합) 사무국장도 “MZ세대 얘기를 자꾸 하는데, 기존 노조에는 MZ세대가 없는 것처럼 얘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언론이 MZ노조로 부각하는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도 “연장근로 관리단위 확대를 반대한다”고 밝혔다. 

정부가 지난 6일 현행 ‘주 52시간제’를 주당 최대 69시간까지 유연화하는 개편안을 발표하자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구성된 IT·게임업계 노조는 물론이고 ‘MZ세대’를 표방하는 노조도 반발하고 있다. 

52시간제로 개선된 노동환경, 다시 악화 우려

7일 고용노동부는 주 52시간제 관리 단위를 현행 ‘1주일’에서 노사간 합의할 경우 ‘1개월·3개월·6개월·1년’ 단위로 늘리는 방안을 발표했다. 관리단위가 바뀌면서 노동자는 주 최대 69시간까지 일할 수 있어 ‘과잉 노동’ 지적이 잇따랐다.

▲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6일 정부서울종합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노동시간 개편방안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고용노동부
▲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6일 정부서울종합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노동시간 개편방안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고용노동부

논란이 일자 정부는 무리한 노동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고용노동부는 9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주 최대 근로시간이 69시간으로 늘어날 수 있는 건 맞지만, 특정 주에 일하면 다른 주에 휴식을 보장 받을 수 있어 전체 노동시간이 늘어나지는 않는다고 해명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11시간 휴게시간’을 부여해 최대 60시간 일할 경우 출퇴근 사이의 11시간 휴게 시간을 보장한다. 4시간마다 30분의 휴게시간도 부여한다. 

‘몰아서 일하고 몰아서 쉰다’는 점에 관해 오세윤 네이버 노조 지회장은 “단기간에 몰아서 근무하는 게 결국 크런치모드이고, 어떤 사람이건 다 무리가 간다”며 “특정 기간 몰아서 일하고 추후에 충분히 휴식한다고 해서 몸이 회복되지는 않는다”고 반박했다. 추후 휴가를 부여한다고 해서 과로 문제가 해소될 순 없다는 지적이다.

특히 게임·IT 업계는 과거 무리한 장시간 노동 관행으로 과로사 문제가 발생해온 상황이 재현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하고 있다. 이들 업계에선 서비스나 제품 개발 시기가 임박해 장시간 노동을 하는 크런치모드가 사회적 문제가 된 바 있다. 게임 업체 사무실에는 밤에도 불이 꺼지지 않아 ‘판교의 등대’ ‘구로의 등대’ 같은 별칭이 붙었고 과로사 사망 사고도 끊이지 않았다.

▲ 사진=GettyImagesBank
▲ 사진=GettyImagesBank

김한울 IT노조 사무국장은 “게임 업체가 특히 심각했고 다른 IT업체들도 새로운 솔루션이나 상품을 출시하거나 프로젝트 마감이 임박할 때 크런치모드가 일반화돼 있었는데, 그나마 52시간제 덕에 완화됐다”며 “IT업계의 과로사 문제가 이전에는 비일비재했는데 52시간제 이후로는 거의 파악되지 않고 있다. 사람들의 목숨을 지킨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게임산업 종사자 노동환경 실태조사’에 따르면 게임업계 종사자 중 ‘크런치모드가 있었다’라고 답변한 비중은 2019년 60.6%에 달했으나 2021년엔 15.4%로 크게 줄었다. 

정부는 휴게시간 보장을 강조하지만 실제 현실에선 적용되기 어렵다는 반론도 있다. 한 IT업계 관계자는 “출시가 임박한 시기가 되면 크고 작은 오류를 검증하느라 퇴근 이후에도 수시로 상황에 따른 피드백을 주고 받을 수밖에 없다”며 “결국 퇴근 후에도 계속 업무 연락을 주고 받아야 하는데 11시간 휴게 시간이 실제로 보장될지 의문”이라고 했다.

연장 필요한 때 있지 않나? 
이미 ‘선택근로’ ‘주 12시간 연장’ 가능해

정부와 산업계는 그간 업종이나 상황에 따라 탄력적인 노동이 필요하다는 취지를 강조해왔다. 제품 출시가 임박해 업무가 몰리는 게임·IT 업계의 경우 집중적으로 업무를 할 필요성이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현재도 연장 근무와 탄력적 노동이 가능한 상황인 점은 부각하지 않고 있다.

오세윤 지회장은 “현재도 선택시간 근로제가 가능하고, 이를 적용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현행법상 노사 합의가 있으면 총 근로시간만 정해두고 기준 내에서 초과 근무해도 연장근로로 보지 않는 ‘선택근로제’가 있다. 현재 ‘선택근로제’는 전 업종 연 1개월, 연구·개발 업종은 3개월 이내로 운영할 수 있다. 

오세윤 지회장은 “현재도 이 정도 수준에서 충분히 자유롭게 할 수 있다”며 “오히려 현행 제도를 악용해 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 지금은 ‘장시간 노동이 가능하다’는 시그널을 줄 때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김한울 사무국장은 “52시간제라고 부르지만 원래 근무시간은 주 40시간이고 12시간을 연장하게 해준 것인데 이마저도 늘리려는 건 과도하다”며 “현재도 더 일할 수 있는 예외조항이 있고, 이를 없애야 하는 상황에서 69시간으로 늘리는 건 합리화하기 어려운 개악”이라고 했다.

소프트웨어산업 노동자 포괄임금 63.5%
“사각지대부터 해소해야”

오세윤 지회장은 “그나마 노조가 있는 기업들은 52시간제 시행 이후 포괄임금제를 폐지하고 노동시간이 많이 줄었는데 노조가 없는 사업장은 여전히 포괄임금제를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네이버, 카카오, 스마일게이트, 넥슨 등 기업은 포괄임금제를 폐지했다. 이들은 모두 ‘노조’가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포괄임금제는 노동시간을 산정하기 어려운 경우 포괄적으로 임금을 적용하는 제도로 사실상 무임금 노동을 시키는 문제가 있었다. 넥슨 노조에 따르면 넥슨은 포괄임금제 폐지 이후 평균 근로 시간이 감소했다.

오세윤 지회장은 “포괄임금제를 적용하면 연장 근로 수당을 줄 의무도 없어 업계에선 여전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포괄임금제를 폐지해 장시간 노동을 막는 게 일의 순서이지, 더 열어주는 논의는 부적절하다”고 했다. 

▲
▲ 2019년 3월6일 네이버 사원노조 ‘공동성명’이 경기 성남시 분당구 네이버 본사 그린팩토리 사옥 1층 로비에서 노사 단체교섭 결렬 후 2차 단체행동에 나섰다. 사진=공동성명 제공

노조 설립률이 낮은 IT업계에선 포괄임금제를 적용한 비율이 높다.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에 따르면 소프트웨어산업 노동자의 포괄임금 계약이 63.5%에 달한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게임산업 종사자 노동환경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1년 기준 300인 이상의 개발사에선 0.5%만 크런치 모드를 경험했지만 5인 미만의 개발사의 경우 절반에 가까운 48.3%가 크런치모드를 경험했다.

김한울 사무국장은 “노조가 없는 사업장은 노동자의 기본적인 권리를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그래서 현재도 사업주들은 이를 악용해 마치 법이 없는 것처럼 운용하고 있다. 주 52시간제라고 하지만 더 시키기도 하고, 예외가 적용되는 경우가 아닌데 예외가 되는 것처럼 얘기하는 등 무법지대나 마찬가지인 경우도 있다”고 했다. 

김한울 사무국장은 “노동시간을 늘리는 논의를 하기에 앞서 현재도 법을 지키지 않는 기업들에 대한 근로감독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52시간제를 지키지 않는 사업주들에 불이익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른바 MZ노조로 언론이 띄우는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 역시 9일 입장문을 통해 “연장근로 관리단위 확대는 장시간 노동과 과로 탈피를 위한 국가의 제도적인 기반 마련이 제대로 효과를 보지 못한 상황에서 도입하기에는 시기상조”라고 지적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