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가 위기라는 말이 다시 조금씩 등장하고 있다. 코로나-19의 열기가 맹렬하게 번질 무렵, 많은 영화인이나 영화 산업 관계자들은 어떻게든 코로나-19가 사라지기만을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때가 오기를’ 기다리며 버틴 시도들도 수두룩했다. 본래 개봉을 앞두고 있던, 2011 ‘파수꾼’으로 장편 데뷔작을 발표한 이후 오랜 시간 신작이 없던 윤성현의 ‘사냥의 시간’을 시작으로 ‘승리호’나 ‘차인표’, ‘서복’ 같이 OTT로 공개의 무대를 옮긴 작품이 등장했다. 한국영화감독조합과 MBC의 합작으로 2020년에 방송한 ‘SF8’ 같이, 이미 방송과 영화, 그리고 온라인 플랫폼의 경계가 흐려진 상황에서 경계의 넘나들기를 시도한 작품도 존재했다.

그렇게 많은 이들이 ‘코로나-19의 위협이 잦아들 때’를 기다렸다. 그리고 정말로 그때가 다가오고 있다. 완벽하게 코로나-19가 종식되었다 말하기 힘들지만, 수많은 연구진이 최대한 시급히 개발한 백신과 치료제가 무서운 속도로 번지던 전염병을 1차적으로 제압했다. 뒤이어 후속적으로 등장한 코로나의 변이종은 이전보다 독성이 잦아들며 조금씩 해외에서도 마스크를 벗는 사람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한국도 현재 대중교통 등 사람들이 특히 밀집되기 쉬운 공간을 제외하면 실외는 물론 영화관을 비롯한 실내 공간의 마스크 착용 의무를 해제한 상황이다.

그러나 코로나의 위협도, 코로나가 한창 번지던 시기 영화관에 가해지던 온갖 규제 의무도 모두 해제되었지만 정작 영화계가 기대했던 ‘회복의 효과’는 도무지 드러나지 않고 있다. 물론 개봉한 작품의 수로만 비교하면 분명 전년 대비 작품의 수는 늘어났다. 특히 2022년 1월부터 3월까지 단 한 개의 작품도 극장에 걸지 않았던 CJ ENM이 2023년 초에는 다시 작품을 공개하면서 한때는 작은 기대를 주기도 했다.

그러나 ‘흥행 결과’는 이 기대에 큰 찬물을 끼얹었다. 2023년 3월 현재 한국 상업 영화의 흥행 상황은 코로나가 계속 번지던 중인 2022년과 큰 차이가 없거나 몇몇 작품은 전년 동시기에 개봉한 작품과 더욱 낮은 흥행을 기록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1월까지만 하더라도 상황은 좋아보였다. CJ ENM이 2022년 크리스마스를 맞이해 선보인, 자회사인 JK필름이 제작을 맡고 JK필름의 수장 윤제균이 연출을 맡은 동명 뮤지컬 원작의 ‘영웅’이 빠르게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대형 블록버스터’ 다운 면모를 보였기 때문이다. 흥행의 배턴은 ‘와이키키 브라더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으로 잘 알려진 임순례 감독의 신작 ‘교섭’도 설날 극장가에 적지 않은 관객이 들으며 한국 상업 영화의 부활을 기대하게 했다.

그러나 ‘영웅’과 ‘교섭’의 흥행과는 별개로 1월 극장가의 중심은 그다지 이 두 영화에 가지 않았었다. ‘영웅’보다 1주일 앞서 개봉한 제임스 카메론이 긴 침묵을 깨고 내놓은 신작이자 후속작인 ‘아바타 : 물의 길’, 그리고 누구도 그 당시 이토록 오래 흥행을 하리라고 생각하지 못한 이노우에 다케히코 원작 및 연출의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있었다. 두 영화는 1월 한 달 동안 각각 309만, 198만 관객을 모으며 월간 관객 순위의 1위와 2위를 장식했다. 심지어는 11월 말 개봉하여 장기 흥행 중에 있던, 최종적으로는 한국에서 개봉한 일본 실사 영화 중에서 최고 기록을 달성한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와 권상우, 오정세 주연의 코미디 영화 ‘스위치’의 1월 관객은 각각 35만 명과 39만 명으로 정말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2022년 1월에 비하면 관객은 많이 들었지만, 그 관객은 한국 상업 영화로는 별로 흐르지 않은 것이다.

▲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300만 관객을 돌파한 2월16일 서울 시내 한 영화관을 찾은 시민이 슬램덩크 홍보 영상을 관람하고 있다. 배급사 NEW에 따르면 지난달 4일 스크린에 오른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이날 오후 2시 25분 기준으로 누적 관객 수가 300만81명을 기록했다. ⓒ 연합뉴스
▲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300만 관객을 돌파한 2월16일 서울 시내 한 영화관을 찾은 시민이 슬램덩크 홍보 영상을 관람하고 있다. 배급사 NEW에 따르면 지난달 4일 스크린에 오른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이날 오후 2시 25분 기준으로 누적 관객 수가 300만81명을 기록했다. ⓒ 연합뉴스

이후 2월부터 상황은 더욱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한국 상업 영화가 딱 1편 개봉했던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2022년 동시기보다는 개봉작이 늘어났지만 3월9일 현재 CJ ENM이 투자 배급한 진선규 주연의 ‘카운트’는 37만, CJ CGV와 KT알파가 공동 배급한 ‘마루이 비디오’는 15만 관객이 머무르며 무척이나 저조한 흥행을 보였다. 독립 영화와 가까운 형태로 제작되었지만 최대한 배급력을 모아 대규모 개봉을 시도했던, 2017년 LG유플러스 전주 콜센터 해지방어팀에서 근무하다 정신적 산재를 입고 세상을 떠난 고등학교 현장실습생의 이야기를 다룬 ‘다음 소희’ 또한 3월9일 기준 9만 7천명의 관객을 기록하며 저조한 흥행에 놓였다. 이렇게 한국 영화 대규모 개봉작들이 모두 침체에 빠진 사이,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1월에 이어 2월에도 지속적인 관객몰이를 보이는 가운데 마블 히어로 영화의 신작 ‘앤트맨과 와스프 : 퀀텀매니아’, 그리고 개봉 25주년을 맞이하며 전세계에서 재개봉한 ‘타이타닉’이 관객을 모았다.

심지어는 올해 3월의 영화 흥행 상황도 그다지 별다른 터닝포인트는 보이지 않는다. 아직 한 달에 채 지나지 않은 상황이지만, 여전히 한국 영화는 흥행의 중심에 쉽게 오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양한 작품에서 꾸준하게 좋은 연기를 펼친 조진웅과 이성민, 김무열을 필두로 노태우 정권에서 김영삼 정권으로 교체를 맞이하던 시기의 정치 상황을 소재로 한 ‘대외비’가 3월9일 현재 59만 관객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이후 개봉한 TV 에피소드의 모음집 겸 선공개 목적의 특별상영인 ‘귀멸의 칼날 : 상현집결, 그리고 도공 마을로’와 ‘너의 이름은.’, ‘날씨의 아이’로 한국에서도 사랑받은 신카이 마코토의 신작 애니메이션 ‘스즈메의 문단속’이 사람들의 이목을 빠르게 가져간 상황이다. 심지어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개봉 3달째를 맞이하는 와중임에도 여전히 박스오피스의 상위권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는 마당이다.

쉽게 회복되지 않는 한국 상업 영화, 다시 ‘위기론’이 거론되다

물론 극장가에서 3월은 전통적인 비수기 시즌이다. 크리스마스와 설날, 구정 연휴가 모두 지나간 뒤 개학을 맞이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새 학년, 새 학교, 또는 대학 졸업 이후 새 출발을 준비하는 상황에서 영화 감상 같은 여가 행위는 우선 순위가 많이 밀릴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한국 상업 영화는 구정 연휴에도 생각보다 많은 흥행을 거두지 못했다. 전통의 한국 영화 강자 CJ ENM이 CJ CGV와 함께 연이어 신작을 가지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흥행의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분명 코로나-19의 위협이 잦아들며 이전보다 많은 관객이 영화관을 찾았으나 이들 다수는 일본 영화, 또는 대형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집중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관객이나 언론의 주목을 받는 한국 영상물은 영화관도, TV도 아닌 OTT에 더욱 집중되고 있다. 넷플릭스는 시리즈 드라마에서는 ‘파리의 연인’부터 시작해 근래도 ‘태양의 후예’, ‘도깨비’, ‘미스터 션샤인’, ‘더 킹 : 영원의 군주’ 등으로 꾸준히 흥행에 성공하는 드라마 극본가 김은숙의 신작 ‘더 글로리’, 영화에서는 동명 일본 영화를 원작으로 한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예능에서는 ‘피지컬 100’, 심지어는 최근에는 다큐멘터리에서도 ‘나는 신이다’를 통해 완벽하게 주목도를 챙긴지 오래다. (공교롭게도 이들 네 작품은 각각 CJ ENM 계열 회사들과 MBC가 제작을 주도했다.) 넷플릭스보다는 아직 한국 내에서는 경쟁도가 밀리지만, 디즈니플러스도 시리즈 드라마 ‘카지노’로 주목을 모으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결국 관게자의 입을 통해 위기감이 직접적으로 표출이 되고 말았다. 한국영화감독조합이 주최하는 영화 시상식인 ‘디렉터스 컷 어워즈’의 토크 프로그램에서 한국 영화에서 인지도가 높은 두 감독인 최동훈과 윤제균이 직접적으로 한국 영화가 위기임을 말하며 본격적인 대책이 필요함을 언급하게 된 것이다. 최동훈은 해당 토크 프로그램에서 직설적으로 “일단 극장비를 좀 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중국이 올해부터 영화관 가격을 약 500원 낮춘 것을 언급하며, 코로나-19로 관객이 빠르게 급갑한 상황에서 최대한 수익을 거두기 위한 수단으로 한동안은 영화 티켓의 가격을 올렸지만 그 결과 이전부터 영화관이 ‘여가 장소’로서 경쟁하던 다른 공간들과 대비하여 매력이 낮아졌다는 점이 그 이유였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많은 논란을 낳은 것은 윤제균의 언급이었다. 한국 상업 영화의 평균 관객이 지속적으로 급감하며 “올해부터 한국 영화에 투자를 하는 투자자들이 거의 없다”고 이미 위기에 놓인지 오래라는 이야기를 꺼냈기 때문이다. 그간은 영화진흥위원회들이 매개하는 ‘모태펀드’ 등을 통해 금융계 자금이나 창투사 자금이 전체 제작비의 70-80%를 담당하고, CJ ENM이나 롯데컬쳐웍스 같은 메인 투자배급사가 나머지 자금의 투자를 담당하는 구조였지만 한국 영화의 흥행이 계속 저조하자 금융권 자금이 지속적으로 이탈하며 그럴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는 뜻이었다.

말 자체는 분명 코로나-19가 한창 유행하던 시기는 물론 어느 정도 잦아든 2023년이 되어서도 한국 영화에 관객이 돌아오지 않고 있으며, 기존에 정착되었던 한국 영화의 제작비 수급 구조가 큰 타격을 받고 있는 것을 상당히 우려하는 표현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 발언을 꺼낸 감독아 최소한 영화의 질적 차원에서는 결코 좋은 평판을 가지지 못하고 있었던 윤제균이 한 말이라는 점이었다. 동시에 윤제균은 2022년부터 CJ ENM이 보유한 제작사들을 관리하기 위하여 설립된 ‘CJ ENM 스튜디오스’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인터넷 일각에서는 CJ와 손을 잡고 한국 영화의 질적인 수준을 낮춘 장본인이 정작 한국 영화에 자금이 말라가는 원인으로 관객의 핑계를 들고 있다며 무수한 비판이 일게 되었다.

위기를 ‘위기론’의 상투적인 방식으로 넘길 수 있는가

물론 영화를 질적으로 잘 만드는 사람만이 영화계에 대한 걱정을 남길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윤제균을 비롯해 최동훈의 발언이 나온 곳이 영화 감독들이 모인 이익단체인 ‘한국영화감독조합’에서 주최한 행사장에서 나왔다는 이야기임을 생각하면, 한국에서 영화를 연출하는 이들은 이미 영화 제작 현장에서 한국 영화의 위기를 표면으로 인식하고 있기에 이 말을 남겼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윤제균은 JK필름을 비롯하여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2010년대 이후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대표하는 회사가 된 CJ ENM 산하 제작사를 총괄하는 ‘CJ ENM 스튜디오스’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CJ ENM이 근래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들어가는 등 분명 CJ ENM의 상황이 녹록치 않은 것을 보았기에 이런 말을 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말들이 나온 맥락을 이해하는 것과 별개로, 결국 문제의 해결 방식은 여전히 ‘산업적’인 방식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최동훈의 언급대로 분명 영화 관람에 필요한 기본료가 오른 것이 한국 영화가 침체에 놓인 하나의 원인이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한국 영화에서 근 10년간 대표 주자가 되었던 CJ는 CJ CGV 산하에 ‘ICECON’(아이스콘) 브랜드나 ‘4DX’ 브랜드를 활용하여 방탄소년단(BTS), 임영웅 등 인기 팬덤의 콘서트 실황을 적극적으로 가져오면서 티켓의 가격이 오른 상황을 매우 적극적으로 팬덤과 연계짓는 방식으로 해결을 시도하고 있다. 게다가 동시에 CJ는 모두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공급된 ‘더 글로리’나 ‘스마트폰이 떨어졌을 뿐인데’의 제작에 관여하며 역설적으로 기존에 자신들이 쌓아놓았던 지위를 새롭게 대두되는 영역에 옮기는 식으로 생존을 꾀하는 마당이다.

▲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 포스터.
▲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 포스터.

그러한 상황에서 어떤 점에서는 ‘영상 산업’ 자체가 위기에 놓였다고 말하기 보다는, ‘영화를 영화관에서 관람하는 행위’ 자체가 코로나-19에서 발생한 시대상과 겹쳐지며 지각변동을 맞이하고 있다는 것이 좀 더 걸맞을 수 있다. 그것도 CJ 뿐만 아니라 MBC와 같은 지상파 공영방송도 함께 이러한 변화에 발맞춰 움직이고 있다. 기존의 영상 유통과 전파, 수익의 모델이 위기에 놓인 상황에서 영상의 제작과 투자, 공급에 관여하던 이들은 각각의 현장에 맞춰 영상을 제작하던 이들을 내버려두고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필사적으로 달음박질하고 있다.

그 안에서 피해를 입는 것은 이번 발언으로 비난을 받은 윤제균 등의 ‘상투적인 영화’에만 그치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지난 2월에 개봉한 ‘다음 소희’가 비슷한 시기 개봉한 국내외 영화와 견주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완성도나 시의성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개봉까지 시도했지만 여전히 10만 관객을 돌파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한국 영화의 위기가 독립/예술영화나 소규모 영화 등 비주류의 영역에 더욱 가혹하게 미치고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단면이다. CJ나 MBC처럼 대형 자본은 상대적으로 발빠르게 전략이나 작품의 공개처를 바꿀 수 있지만, 결국 어떤 영화들은 여전히 OTT보다는 영화관에서 작품을 더욱 주목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몇몇 비주류 작품들은 OTT를 통해 선공개하거나 독점공개하는 전략을 세우기도 했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OTT라는 영역이 모든 영화에게 꼭 동등하게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님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분명 한국 영화에 위기가 찾아왔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위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을 피상적으로,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것은 과연 얼마나 한국 영화의 생태계 구축에 도움이 될 것인가. 지금의 순간처럼 분명하게 많은 이들이 위기로 간주했던 IMF 직후와 ‘쉬리’ 등으로 일었던 붐이 얼마 지나지 않아 빠져 다시 침체에 돌아왔던 2000년대 초반, 그리고 2007년부터 2009년 사이의 시기에 한국 상업 영화는 더욱 금융 자본과 강한 연결고리를 맺는 것으로 대응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몇 차례에 걸쳐 다양한 펀드, 창투사를 중개하는 ‘모태펀드’를 구축해 실질적으로는 정부가 투자의 안정성을 보장해주는 영화 자본과 금융 자본의 매칭 시스템이 이런 위기를 거치며 형성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이는 일각에서 정부가 비주류적인 차원이 아닌 명백한 주류 영화에 까지, 산업 육성을 이유로 조직의 역량을 투여한다는 점에서 지속적으로 비판이나 문제 의식을 가지는 대응이기도 했다.

그러한 움직임처럼 지금의 위기 국면에서도 영화 자본은 적극적으로 새롭게 돈이 될 수 있는 영역을 향해서 빠르게 목표점을 바꾸고 있다. 그러나 이 변화는 그렇지 못하는 영화들, 또는 지금의 영화 제작 시스템에 익숙하게 움직였던 배우나 스태프 등 노동자는 생각하지 않은 ‘자기만의 생존’을 모색하는 변화기도 하다. 물론 이러한 일도 갑자기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미 영화계는 오랜 시간 구조적인 변화를 모색하기 보다는, 일단 자신들이 생각하기에 문제라고 보이는 영역이 가장 시급함을 지적하며 전체적인 변화를 도모하지 않은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2005년 당시 한국 영화에서 쉽게 무시할 수 없는 이름이었던 감독 강우석이 “일부 배우의 거액 출연료가 한국 영화의 위기를 가져온다”는 주장으로 큰 논란을 만들었던 것처럼 말이다.

해답의 실마리가 결코 나오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지난 2022년 7월, 영화진흥위원회가 주최한 ‘한국영화산업 위기 극복 방안 토론회’에서 노철환 인하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 등이 지적했던 이야기대로 한국 영화의 정책이나 어젠다는 그간 ‘산업 육성’에만 초점이 맞춰졌을 뿐, 영화를 관람하는 ‘문화’적 상황에는 거의 없거나 지극히 적은 관심을 보여왔던 것이 컸다. 모든 산업이 그렇듯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같은 체급의 차이를 피할 수는 없지만, 마치 대기업 위주의 산업 정책처럼 한국 문화 산업 역시 전체적인 크기를 키우기 위해 ‘일단 잘 될 것들’에 집중하는 경향‘이 강했다. 그런 상황에서 산업의 틀도 그에 맞게, 작품을 보는 시민의 시각도 그 산업적 일변도에 맞게 굳어졌다. 위기가 찾아오자 누군가는 다시 ’위기론‘을 말하며 변화를 말하지만, 그 변화의 방식이 역설적으로 지금의 위기를 초래한 방법론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더욱 구조적 위기의 가능성을 높일 뿐이다. 단순한 ’위기론‘의 제기가 아니라, 지금까지 놓인 길을 차근차근 점검하며 ’위기의 근원‘을 사고하는 움직임. 그것이 진정으로 이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는 방안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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