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신3사 대리점. © 연합뉴스
▲ 통신3사 대리점. © 연합뉴스

앞으로 케이블SO는 지역채널 심의위원회를 운영하지 않아도 된다. 유료방송 시청자위원회 계획수립과 제료제출 의무도 사라진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유료방송 허가 관련 규제 완화에 나섰는데, 스스로 필요에 의해 만든 정책을 ‘불필요한 규제’로 취급하며 폐기하는 모양새다. 사업자들은 환영 입장을 냈지만 미디어의 공적 책임이 약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이같은 정책 기조는 방통위 소관인 지상파, 종합편성채널의 허가·승인 규제완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지역성 구현·협력업체 상생 규정 등 대거 ‘폐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 23일 유료방송사업 허가조건 및 이행점검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유료방송은 IPTV, 케이블SO, 위성방송 등 방송 플랫폼을 말한다. 과기정통부는 이들 사업자의 허가 심사 및 이행 점검 역할을 맡고 있는데 사업자 의견수렴을 거쳐 관련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개선방안은 △재허가 조건 최소범위에 한정해 부과 △방송사 자체심의기구와 중복된 케이블SO 지역채널 심의위원회 구성 및 운영 의무 폐지 △지역채널 운영계획 제출의무 폐지 △시청자위원회 운영계획 수립 및 제출 의무 폐지 △ 협력업체 상생방안 이행계획 제출 의무 폐지 △지역채널 운영계획 제출 의무 폐지 △경영투명성 확보계획 제출 의무 폐지  △재허가 후 이행점검 주기 1년에서 3년으로 완화 등이다.  대신 과기정통부는 투자 관련 계획, 협력업체 상생방안 등 중요 사항을 특정해 조건을 부과하고 집중 점검할 방침이다.

▲ 과기정통부의 유료방송 규제완화 정책. 과기정통부 자료 재가공
▲ 과기정통부의 유료방송 규제완화 정책. 과기정통부 자료 재가공

과기정통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유료방송 재허가 과정에서 관성적으로 부과됐거나 중복된 조건을 완화·폐지하고 현 시점에서 불필요한 내용을 개선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업계는 ‘환영’ 입장을 냈다. 한국IPTV방송협회는 “사업자들의 자율성을 확대하고 서비스 혁신을 통한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것”이라며 “시기적절한 규제 개선을 크게 환영하며 국내 미디어생태계의 성장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역시 “적극 행정을 진심으로 환영한다”고 밝혔다.

고심 끝에 만든 정책, 스스로 ‘불필요한 규제’ 취급

사업자 입장에서 불필요한 규제를 완화하는 데 방점을 찍었지만 정작 시청자 권익, 미디어 공공성, 노동자 권리 보장 등 측면에서 후퇴가 우려된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유료방송 규제 체계에 변화가 필요한 건 사실이고, 간소화하는 방향도 맞다고 본다”며 “이 과정에서 필수적인 규제를 잘 선별해 남기고, 규제하지 않는 항목은 자율규제로 조정이 이뤄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점이 문제”라고 평가했다. 

특히 과기정통부가 과거 정부에서 필요하다고 판단해 도입한 지역성 구현 정책을 ‘중복 규제’ ‘불필요한 규제’로 제시한 점은 모순적이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 미래창조과학부(현 과기정통부)는 이해관계자 의견수렴 및 전문가 논의 등을 거쳐 ‘유료방송 발전계획’을 마련했다. 그 일환으로 ‘학계, 지자체, 시민단체 등 외부에서 참여하는 지역채널 심의위원회 구성’ ‘지역채널 투자내역·수준, 운용 현황 등 구체적 계획과 이행실적을 중점 심사’ 등 정책이 시행됐는데 윤석열 정부에서 돌연 폐지한 것이다.

▲ 유료방송 점유율 추이. 통신3사를 중심으로 SO를 대거 인수합병하면서 유료방송 시장은 통신3사 중심 체제가 됐다.
▲ 유료방송 점유율 추이. 통신3사를 중심으로 SO를 대거 인수합병하면서 유료방송 시장은 통신3사 중심 체제가 됐다.

김동찬 정책위원장은 “지역성 약화라는 사회적 우려에 대응하기 위해 특별히 부과했던 조건들인데 관성적인 규제를 없애는 것처럼 밝히고 있다”며 “지역채널 심의위는 지역채널을 제대로 운영하는지, 법령을 위반하지는 않는지, 편성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등을 평가하기 위해 만든 외부인사 참여 기구다. 과기정통부의 설명과 달리 방송사 자체 심의실과 역할이 중복되지 않는다”고 했다.

김동원 전국언론노동조합 정책협력실장은 “지역채널 심의위를 폐지하고 내부 심의기구로 대체하는 것은 사실상 지역채널 보도 등 콘텐츠에 대한 어떤 평가도 받지 않겠다는 의미”라며 “지역채널 운영계획 제출과 승인을 폐지하고 투자와 본방비율이라는 최소한의 조건만을 부여한 것은 사실상 편성규제를 하지 않겠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그는 “시청자위원회의 구성 및 운영계획 수립과 제출을 삭제한 것 또한 시청자 권리 침해로 볼 수 있다”고 했다. 

노동 환경이 악화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통신3사의 IPTV를 중심으로 유료방송 인수합병이 이어지며 협력업체 소속 설치수리, 콜센터 노동자의 고용승계 등 처우 문제가 지속적으로 불거졌다. 이에 따라 문재인 정부 과기정통부는 ‘협력업체 상생방안’ 제출 의무 조항을 마련해 협력업체 상생방안을 평가했는데 돌연 폐지된 것이다. 현재도 노동계에선 유료방송과 관련한 정부의 개입이 소극적이라고 보고 있는데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과기정통부는 필요한 경우 별도로 협력업체 상생방안 등을 규율하겠다는 입장이지만 현 정부의 사업자 중심 규제완화 및 반노동적 정책기조를 감안하면 이마저도 소극적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유료방송 사업자를 검증할 수 있는 자료제출 간소화에 따른 우려도 있다. 김동원 실장은 “IPTV 사업자는 이제 미디어 시장에서 방송사업자가 아니라 네트워크 사업자로 보아야 할 정도로 부가서비스를 통한 수익을 다각화하고 있다”며 “달라진 수익구조에 따른 기본적인 경영 투명성 정보는 공개되어야 함에도 이번 개선안은 도리어 후퇴한 규제완화”라고 지적했다. 

과기정통부의 규제완화 기조는 방통위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유료방송의 경우 방통위도 심사에 참여하고 있기에 과기정통부는 방통위와 협의를 거쳐 논의를 이어가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특히 윤석열 정부 체제의 방통위가 구성되면 방통위 소관인 지상파, 종합편성채널, 보도전문채널 허가·승인 관련 규제 완화가 추진될 수 있다.

[용어설명]

△ 유료방송= 돈을 내고 보는 방송 플랫폼을 뜻하는 표현. 방송사업자들의 채널을 모아 틀어주기 때문에 플랫폼 사업자라고도 한다. 유료방송에는 IPTV(인터넷), 케이블 SO(유선), 위성방송(위성) 등이 있다. 인터넷 기반 IPTV가 시장을 주도하고 있고 케이블 SO는 사양 산업이 됐다.

△ SO(System Operator)=종합유선방송사업자 계약된 방송 채널을 편성해 유선 방식으로 가정에 공급하는 케이블TV사업자. 권역별 독점 구조인 대신 지역성 구현 책무를 갖고 있다.  플랫폼 운영 뿐 아니라 직접 운영하는 지역채널인 직사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 주요SO는 통신3사에 의해 인수합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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