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가 뜨니 정부는 한국형 챗GPT를 만든다고 한다. 많은 언론도 이를 신성장4.0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소개하고 있다. 

▲ 챗GPT 관련 온라인 기사 갈무리.
▲ 챗GPT 관련 온라인 기사 갈무리.

“인공지능 언어 모델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자연어 처리(NLP), 기계 학습, 딥러닝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 지식이 필요하다. 한국은 강력한 기술 인프라와 숙련된 인력을 보유하고 있어 이러한 모델을 개발할 수 있는 역량이 있다. 그러나 인공지능 언어 모델 개발은 비용이 많이 드는 프로세스이며, 편견, 개인 정보 보호, 데이터 보안 등의 윤리적 및 사회적 영향을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혹시 지금 위에 이 문장에서 어색함을 느낀 독자가 있을까? 위의 기사 중 따옴표 안의 문장은 챗GPT가 쓴 문장이다. 주식 시황 같은 단순한 기사 정도는 인공지능이 잘 쓴다고는 알고 있었다. 이제는 패턴이 정해지지 않은 창의적인 기사도 술술 쓰는 시대가 되었다. 사실 기사 쓰기가 그리 창의적인 행위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창의성이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다. 기존에 존재하는 패턴을 인식하고 이를 섬세하게 해체하고 재조립하는 행위가 창의성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는 AI가 가장 잘하는 분야다. 

실제로 챗GPT는 창의적인 스토리텔링은 꽤 잘한다. 그러나 팩트 검증이나 과거의 자료를 중요한 순서대로 꼼꼼하게 정돈하는 일은 대단히 취약하다. 모르는 일도 그럴듯한 말빨로 잘 꾸며낸다. 기사도 마찬가지다. 보도자료를 해체하고 재조립하여 썰을 푸는 것은 조금만 훈련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일이다. 확실치 않은 일도 두리뭉실 꾸며내기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과거의 일을 꼼꼼하게 분석하고 정리하는 것이 의외로 어려운 일이다.

▲ 사진=gettyimagesbank
▲ 사진=gettyimagesbank

그런데 신성장 3.0이나 1.0은 무엇일까? 언론에서는 찾아보기는 어렵지만 정부 보도자료를 보니 성장 1.0은 농업 중심 성장 전략이라고 한다. 우리나라가 언제 농업 중심 성장 전략을 택했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신성장 4.0은 2023년부터 시작하는 미래산업 중심 성장 전략이라고 한다. 대한민국의 성장전략은 2023년부터 기존의 구 성장 전략을 탈피하고 드디어 미래를 대비하는 신성장 전략으로 시프팅했다니 가슴이 웅장해진다. 그러나 확실치 않은 미래 일을 멋지게 포장하는 것은 챗GPT도 잘하는 일이다. 챗GPT가 잘 못하는 과거의 일을 한번 정리해보자.

2023년 인공지능 관련 중앙정부 지출액은 8998억 원이다. 2022년 1조 2000억 원에서 무려 34% 감소한 금액이다. 이전 정부의 디지털 뉴딜의 핵심사업인 ‘인공지능 학습용 데이터 구축’ 예산은 절반 이상(3000억 원) 삭감되고, ‘데이터기반 산업경쟁력 강화’ 사업도 383억 원 삭감되었다. 대신 관련된 몇 가지 신규 사업이 신설되었다.

나는 인공지능 전문가가 아니어서 지난 정부의 ‘인공지능 학습용 데이터 구축 사업’이 더 좋은 사업인지 이번 정부의 ‘데이터 활용 의료 건강생태계 조성’ 사업이 더 좋은 사업인지 판별할 능력은 없다. 다만, 2022년도보다 인공지능 관련 예산은 무려 3000억 원 넘게 (¼ 이상) 줄어들었다는 사실은 명확하다. 2023년 대한민국이 드디어 신성장 4.0전략이 시행되는 원년이라는 웅장한 마음이 사그러진다.

▲ 2023년 인공지능 관련 사업 증감액 주요사업. (단위: 백만 원)
▲ 2023년 인공지능 관련 사업 증감액 주요사업. (단위: 백만 원)

정부는 항상 지난 정부와 단절하고 새로운 사업을 했다고 홍보하는 것을 꿈꾼다. 항상 올해는 모든 새로운 일이 시작되는 원년이라고 홍보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언론은 이러한 정부의 홍보성 주장을 과거의 데이터를 통해 검증해야 할 책임이 있다. 그냥 정부 홍보 보도자료를 새롭게(새로운 것처럼) 창의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은 이제는 기자가 아니라 챗GPT가 더 잘할 수 있는 일이 되었다. 과거의 자료를 중요한 순서대로 꼼꼼하게 정돈하는 것이 인간 기자의 장점이 되었다.

챗GPT를 처음 쓸 때는 “챗GPT가 나의 ‘일’을 해줄 수 있겠다”고 환호했다. 그런데 점점 쓰다보니  “챗GPT가 나의 ‘일’을 할 수 있겠다”고 우울한 생각이 든다. 첫 번째 일은 나의 업무고 두 번째 일은 나의 기자라는 직업이다. 혼란스러울 때는 더욱 기본이 중요하다. 신입 기자나 할 법한 과거의 자료를 정돈하고 분석하는 기본적인 일을 꼼꼼히 하다 보면, 신성장 4.0 원년을 주장하는 올해 인공지능 예산이 전년보다 크게 줄었다는 특종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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