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는 서열을 전제한다. 상대와 나의 위치를 파악해 높임말과 낮춤말을 적절히 골라야 한다. 비민주적인 표현도 많다. 군사정권이 막을 내린 지 한 세대밖에 지나지 않아 여전히 독재의 유산이 언어를 통해 계승되고 있다. 언어에도 신분이 있다. 표준어는 나머지 지역어(방언)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다. 언론은 그동안 이러한 한국어의 특징을 비판적으로 해석하지 못했고 오히려 널리 유포해온 책임이 있다. 미디어오늘은 저널리즘에서 사용하는 언어가 2023년 한국 사회에 어울리는지 살펴보고, 저널리즘은 언어 문제를 어떤 시각에서 어떻게 다루는지 ‘언어 저널리즘’에 대해 다룰 예정이다. - 편집자주 

표준어 : 교양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 정함 (문화체육관광부 고시 표준어규정 제1장 제1항)

국가가 ‘표준’을 독점했다. 서울말은 표준어가 됐고, 표준어를 쓰는 사람은 교양있는 사람으로 비치기 시작했다. 이는 적절한가? 표준어는 과연 ①교양있는 사람들이 ②두루 쓰는 ③현대 서울말에 해당할까? 

① 표준어를 쓰면 교양있는 사람?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서 서울말을 쓰는 칠봉이(유연석 분)는 야구부 투수인데 실력이 출중한 야구천재에다 자기 관리 능력까지 뛰어난 따뜻한 도시 남자 캐릭터다. 반면 사투리를 쓰는 김재준(정우 분)은 며칠간 옷을 갈아입지 않고 무얼 먹을 때도 깔끔하지 않다. 심지어 극중 별명이 ‘쓰레기’다. 삼천포(김성균 분)는 융통성이 없고, 해태(손호준 분)는 ‘촌스러운’ 머리 스타일을 하고 나오는 등 칠봉이를 제외한 다른 등장인물에겐 어설픈 모습이 있다. 지방에서 상경한 이들의 순수한 모습을 강조하기도 한다. 빙그레(차선우 분)는 수줍음이 많고, 성나정(고아라 분)은 정이 많다. 표준어와 사투리(지역어)에 대한 편견을 잘 담은 작품이다. 

▲ 드라마 응답하라 1994 등장인물. 위 사진은 사투리를 쓰는 등장인물 해태(왼쪽)와 삼천포. 아래는 서울말을 쓰는 칠봉이. 사진=tvN
▲ 드라마 응답하라 1994 등장인물. 위 사진은 사투리를 쓰는 등장인물 해태(왼쪽)와 삼천포. 아래는 서울말을 쓰는 칠봉이. 사진=tvN

도도한 이미지의 연예인이 사투리를 써서 눈길을 끈다거나 사투리를 썼을 뿐인데 갑자기 친근한 이미지를 보여줬다고 다루는 미디어도 문제다. 표준어가 더 세련됐다는 고정관념에 따른다. 다수 예능프로그램에서 사투리 맞추기 게임을 진행하는데 자칫 사투리를 희화화할 소지가 있다. 

서울의 한 대학에서는 지난 2019년 과대표가 부산 출신 학생에게 “사투리가 듣기 힘드니 자제해달라”고 얘기했다 논란이 됐다. 사투리를 쓰면 주변에서 과도하게 쳐다본다거나 지방출신인 사실이 알려지면 첫 대면부터 동물원의 동물 보듯 ‘사투리를 써보라’라고 요구받은 경험담도 쉽게 들을 수 있다. 동향사람과 사적 대화에서만 사투리를 사용해야 한다고 느끼게 되는 요인이다. 

이에 사투리 사용자들은 이를 교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난 2018년 취업포털 커리어가 구직자 493명을 대상으로 사투리를 교정해야 하는지 물었더니 응답자의 58.6%가 취업 준비 과정에서 사투리 교정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사회생활을 하려면 표준어가 도움이 된다’는 응답이 67.1%로 가장 많았다. 취업 관련 사이트에선 사투리 교정을 고민하는 글이 꾸준히 올라온다. 자신의 언어가 잘못됐다는 생각을 하지 않지만 다양한 현실적 이유로 고치는 게 속편해서다. 

한남대 교수 강정희는 “(한국 사회가) 서울 문화로 ‘단일화’하는 특성을 보이고 있다”며 “특히 TV는 지역방언을 표준어로 단일화하는데 큰 몫을 담당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역 사람들, 특히 청소년이나 젊은 층은 자신이 누리는 문화보다 상대적으로 대도시 문화를 동경하거나 모방하게 된다”며 “그 결과 서울말씨는 ‘아름답고, 신분 상승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학습하게 되고 방언은 ‘투박하고, 유치하고, 촌스럽다’는 인식에서 방언 사용을 거부하게 된다”고 분석했다. 유튜브에서 ‘사투리’를 검색하면 사투리를 교정하는 방법에 대한 콘텐츠를 쉽게 찾을 수 있다. 

국립국어원이 지난 2015년 발표한 ‘국민 언어의식 조사 보고서’를 보면 자녀가 지역어와 표준어를 모두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일 경우 둘다 사용하길 바라는 비율은 2010년 44.2%에서, 2015년 39.3%로 줄었다. 반면 ‘표준어만 사용하기 바란다’는 응답은 2010년 30.3%에서 2015년 36.1%로 늘었다. ‘지역방언만 사용하기를 바란다’는 답변은 2010년 3.1%에서 2015년 1.2%로 줄었다. 이 조사는 5년마다 하는데 2020년에는 해당 내용을 조사하지 않았다. 

▲ 한글 자음. 사진=pixabay
▲ 한글 자음. 사진=pixabay

② 표준어는 ‘두루 쓰는’ 말인가?

‘겨땀’은 별다른 설명 없어도 ‘겨드랑이에 난 땀’이라 유추할 수 있지만 실제 표준어는 ‘곁땀’이다. 표준어는 ‘두루 쓰는’ 말이라지만 ‘곁땀’이라고 하는 사람을 찾긴 어렵다. 짜장면이 비표준어이며 ‘자장면’만 표준어라고 했을 때, ‘자장면’은 ‘두루 쓰는’ 말이 아니었다. 여론에 못 이겨 ‘자장면’과 ‘짜장면’을 복수 표준어로 인정했지만 여전히 ‘자장면’은 두루 쓰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왜 표준어인지 의문이다.

‘어줍잖다’의 표준어는 ‘어쭙잖다’라는데 그 발음이 꽤 낯설다. ‘맞다’와 ‘맞는다’는 시간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네 말이 맞다’가 아니라 ‘네 말이 맞는다’란다. ‘맞는다’는 ‘얻어맞는다’가 연상되지만 ‘맞는다’가 ‘맞는다’니까 언론에서도 ‘맞다’ 대신 ‘맞는다’를 쓰고 있다. 

이처럼 현실 언어생활과 동떨어졌지만 표준어는 마땅히 모두가 따라야할 존재로 여겨진다. 국가가 ‘표준’을 정하면서 표준어는 절대적 위치에 올랐고 표준어 정책에 의문을 품는 목소리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 실제 표준어를 정하는 언어학자들은 ‘두루 쓰는’ 말보다는 문법 규정을 중요하게 여겼고, ‘자장면’과 ‘짜장면’처럼 복수 표준어로 등록된 단어는 100개가 채 되지 않는다. 

③ 서울말이 표준어가 되면서 생긴 일

‘쭈꾸미’를 사전에서 검색하면 두 가지 정의가 나온다. 고려대한국어대사전에서는 ‘주꾸미’의 비표준어라고 하고, 우리말샘 사전에선 ‘주꾸미’의 전남 방언이라고 한다. 지역 방언은 비표준어가 되고 이는 사실상 써선 안 되는 말처럼 보인다. 

▲ 서울 남산타워 모습. 사진=pixabay
▲ 서울 남산타워 모습. 사진=pixabay

‘표준어는 군대를 가진 방언’이라는 말이 있듯, 힘을 가진 지역의 언어이기 때문에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해 타 지역언어를 배제한다. 방언보다 우월한 표준어중심주의는 지방을 압도하는 서울중심주의의 일종이다.

표준어는 다양한 의미를 가진 지역어를 배제하고 있다. ‘원수’가 표준어이고 ‘웬수’는 비표준어다. 하지만 두 단어는 뜻이 좀 다르다. ‘웬수’에는 ‘원수’에 없는, 상대에 대한 애정이 담겨있다. 표준어만 쓸 때, 언어는 협소해진다. ‘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고 할 때 ‘심’은 방언이다. 서울말인 ‘힘’과 방언인 ‘심’은 말맛이 다르다. 누구도 ‘밥힘’, ‘뱃힘’이라고 쓰지 않기 때문에 ‘심’에 해당하는 ‘서울말’은 사실상 없다. 

표준어중심주의 강화한 미디어과 교육제도

미디어와 교육제도는 표준어중심주의를 확산하는데 일조했다. 

지역을 불문하고 언론에선 철저하게 표준어를 사용한다. 간혹 일부 지역언론에서 지역소멸과 함께 지역어가 사라지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기사에 담긴 하지만 언론보도라는 공적인 공간에서 ‘사투리’로 기사를 작성하는 일은 생각하기 어렵다. 

경남에 위치한 거제신문이 올해부터 거제사투리를 보전하기 위해 사투리 코너를 만들었다. 일부 기사를 사투리 버전으로도 보도하고 있는데, 거제신문의 이러한 시도 자체는 언론계에서 뉴스거리가 될 만큼 드문 일이다. 그나마 신문이기에 가능한 시도다.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51조에 따르면 방송언어는 원칙적으로 표준어를 사용해야 한다. 지역어 사용은 예외다. 

입시제도도 표준어중심주의를 강화한다. 전국적으로 서울에 있는 대학을 선호하는 현상이 뚜렷하고, 수능시험 등 입시 전 과정이 표준어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사회언어학자 김하수는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학교에서 교사들이 수업시간에는 표준어로 가르치고 쉬는 시간에는 학생들과 방언으로 얘기를 하다 다시 수업때 표준어를 쓰는데 수업 중간에 방언이 튀어나오면 한바탕 웃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방언으로 시험을 보지 않는 이상 해결할 수 없지 않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국립국어원이 지난 2015년 발표한 ‘국민 언어의식 조사 보고서’를 보면 평소에 사용하는 말로 표준어를 꼽은 응답자는 54.5%로 나타났다. 나머지 45.5%는 지역어(방언)를 평소 사용하고 있다는 뜻이다. 

김하수는 표준어 정책이 꽤 오랫동안 진행된 서울 중심 사고방식의 한 형태라고 말했다. “이조 500년 중앙집권은 보기 드문 체제인데 그동안 오로지 서울만 똑바로 보도록 살아왔다. 대통령 노무현이 수도를 옮기려다 된통 혼이 난 걸 봐도 (서울중심주의는) 건들기 어렵다. 요즘 대학은 벚꽃 지는 순서대로 문 닫는다는 말이 현실화되는데 지역균형발전을 진정 어떻게 할 것인가 논의하면서 표준어 문제도 고민해야 한다.” 표준어 정책이 생각보다 훨씬 구조적인 문제라는 말이다. 

국가가 ‘표준’을 차지해 생긴 부작용

국가에서 표준국어대사전을 펴내는데 이는 어떤 말이 표준어인지 결정하고 이를 정당화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사전에 실린 말은 곧 써도되는 말, 옳은 말이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표준국어대사전 표제어 중에 ‘남의사’는 없지만 ‘여의사’는 “여자 의사”란 뜻으로 실려있다. 어떤 단어를 사전에 넣는지 결정하는 행위로 ‘의사는 남성’이라는 성차별을 강화하는데 일조한다. 

▲ 표준국어대사전. 사진=국립국어원 홈페이지
▲ 표준국어대사전. 사진=국립국어원 홈페이지

또 사전에선 단어 뜻까지 정의하기 때문에 국가가 언어의 사용범위까지 결정하는 셈이다. 예를 들어 표준국어대사전에는 ‘헌계집’이란 단어가 실려있는데 “시집갔다가 혼자 된 여자를 낮잡아 이르는 말”과 “행실이 부정한 여자를 낮잡아 이르는 말”이란 두 가지 뜻을 정의하고 있다. 국가가 관여한 사전 뜻풀이를 통해 이혼한 여성을 부정적으로 보는 관점이 정당화되는 효과를 가져온다. 

국가가 사전편찬에 손대면서 생긴 부작용은 더 있다. 김하수는 “국가가 사전을 만들면서 사전시장이 다 죽었다”며 “예전에는 출판사들이 유의어사전, 역순사전, 반대말사전, 쉬운말사전, 방언사전 등을 만들었는데 표준국어대사전이 있으니 아무도 돈 안 되는 사전을 만들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사전이 획일화됐다는 건 언어의 다양한 해석이 사라지고 있다는 뜻이다. 역설적으로 돈 안 되는 사전은 이제 국가만 만들 수 있게 됐다. 일각에선 국가 편찬 사전 감수과정에 시민들을 참여시키자는 주장도 나온다. 

여기에 국가가 표준어를 규정하고 맞춤법과 띄어쓰기까지 결정해온 것을 더하면 사실상 시민들의 사고방식과 언어생활 전반을 통제하고 있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경희대 교수 김진해는 “국가가 성문화된 철자법(맞춤법)을 제정하고, 표준어를 선정하고(=비표준어를 지정하고), 사전 편찬마저 독점적으로 차지한 상황은 세계적으로 매우 이례적이고 괴이하다”며 “국가가 말의 규범(어문규범)을 독점하고 어떤 말이 맞고 틀렸는지 채점해주는 체계 속에서 언어민주주의는 요원하다”고 했다. 

서울말이 사투리보다 낫다는 언어의 우열은 국가권력이 만든 차별이다. 언어는 일상생활과 의식 등 사실상 우리의 모든 것을 담아 전달한다. 따라서 언어의 차별은 모든 것에 대한 차별과 얽혀있다. 표준어가 현실의 언어생활을 따라오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제 맞춤법과 각종 어문규범, 표준어, 국가가 편찬하는 사전을 없애는 상상을 해볼 때다. 언어의 주인은 국가도, 표준어를 결정하는 언어학자도, 표준어를 차지한 서울 사람도 아닌 다수 시민이어야 하지 않을까.

※ 참고문헌
김진해, 말끝이 당신이다
조태린, 표준어 정책의 문제점과 대안 모색 
강정희, 생태학적 관점에서 본 제주 사회 변화와 제주 방언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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