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회계장부 제출을 거부하는 노동조합에 대해 지원금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환수 등 조치와 노조 조합비에 대한 세액공제도 원점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양대노총이 ‘정부의 회계 자료 제출 요구는 월권이자 위법’이라고 반발하는 데에 노조 압박을 한층 강화하면서다.

21일 아침 신문들은 정부와 노동계의 갈등이 한층 격화할 것을 예상했다. 일부 신문은 노조에 회계장부 제출 의무가 없다며 정부의 요구를 “노조 압박”이라고 밝혔다. 일부 신문들은 정부 논조를 전달하는 기사와 사설을 실었다.

▲21일 경향신문 사진기사
▲21일 경향신문 사진기사
▲21일 아침신문 1면
▲21일 아침신문 1면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20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브리핑을 열고 “회계장부 비치·보존 결과를 제출하지 않은 노조에 대해 무관용 원칙으로 엄정 대응할 계획”이라며 “14일간의 시정 기간을 부여하고 미이행 시 과태료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은 같은 날 총리 주례회동에서 “국민 혈세의 사용내역 공개를 거부하는 행위에 대해 단호한 조치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앞서 고용노동부는 ‘노조 회계 투명성 강화’를 이유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노조법)’14조에 따른 노조 회계 관련 서류 비치 및 보존 여부를 노조가 자율 점검하고 그 결과 보고서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이를 확인할 수 있는 표지 외에도 속지 1쪽을 증빙자료로 첨부하라고도 요구했다.

민주노총은 같은 날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부가 자율점검 결과를 제출하도록 한 노동조합 61개 중 60개 노동조합이 자율점검 결과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또 자료 비치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표지를 제출하고, 세부 내용을 포함하는 속지는 제출할 수 없다는 방침을 정했다. 경향신문은 “정부는 조합원 열람권 보장을 내세웠으나 정부가 직접 이를 점검한 게 이례적인 데다 민감한 정보가 담길 수 있는 내지까지 요구해 노조의 반발을 사왔다”고 했다.

보도에 따르면 정기호 민주노총 법률원장은 기자회견에서 “노조법 14조가 ‘재정에 관한 장부와 서류를 주된 사무소에 비치하라’고 규정한 것은 노동조합 운영의 민주성을 확보하기 위해 구성원 전체에게 공개돼야 한다는 것이지, 행정관청이 이를 관리·감독하라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노조법은 노동조합이 재정에 관한 장부와 서류를 비치하라고 규정할 뿐 행정관청에 이를 보고할 의무를 부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노총도 이날 성명을 내고 “노동조합 자체 조합비 운영과 관련한 사항으로 이 역시 철저하게 관리 운영되고 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노동조합 내부에서 알아서 할 것이지, 정부의 관리 감독을 받을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다”며 “국고지원과 회계자료 제출은 별개의 사안이다. 이를 연관시키는 자체가 직권남용”이라고 밝혔다.

▲21일 경향신문 사진기사
▲21일 경향신문 사진기사

경향신문은 “정부가 회계 투명성 강화를 고리로 노조 옥죄기 형태의 ‘노동개혁’을 본격화하면서 노정 갈등이 악화일로”라고 했다. 경향신문은 회계장부 비치와 보존 결과를 정부에 제출하지 않는 노조에는 과태료를 부과하고 정부 현장조사를 기피할 경우 추가 과태료를 부과할 예정이라며 “각종 법·제도 강경책을 망라했다”고 풀이했다. 정부는 또 노동단체 지원사업 배제, 지원금 부정 조사, 현행 15%인 노조 조합비 세액공제 원점 재검토도 추진한다고 밝혔다.

▲21일 경향신문
▲21일 경향신문

노동부는 자료 제출의 근거로 ‘노조가 행정관청이 요구할 경우 결산결과, 운영상황을 보고해야 한다’고 밝힌 노조법 27조 조항을 제시하고 있다. 경향신문은 이에 대해 “노동계는 노조법 14조에 있는 ‘재정에 관한 장부·서류’와 27조에 있는 ‘결산 결과는 다르다는 입장’”이라며 “전자는 회계와 관련한 원자료이고 후자는 가공된 자료이기 때문에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경향신문은 “양대 노총은 노동부가 과태료 처분할 경우 처분 취소소송을 진행할 예정”이라며 “법원에서 과태료 처분 취소 판결이 나올 경우 정부가 추가로 꺼내든 압박 카드의 정당성을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1면 머리기사에서 “정부의 회계 관련 서류 제출 요구를 사실상 거부한 노조에 공공 성격이 강한 지자체 공무원 노조와 각급 교사 노조, 공기업 노조들이 대거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며 “정부의 노조 회계 투명화 요구를 조직적으로 거부한 것”이라고 했다. 이어진 기사 <적반하장 양대노총, 자료도 안내고 ‘정부가 불법증거 대라’>에서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노조비 운영은 노조가 알아서 할 일’ ‘노조가 불법행위를 했다는 증거를 대라’면서 반발했다”고 했다.

▲21일 조선일보
▲21일 조선일보
▲21일 조선일보
▲21일 조선일보

다수 신문이 정부와 기조를 같이 하는 사설을 냈다. 서울신문은 사설 <회계공개 거부 양대 노총, 개혁 대상일 뿐이다>에서 “두 노총에 대한 정부와 시도 광역단체의 지원은 막대하다”며 “그럼에도 노조의 법적 의무 이행은 미미하다. 회계 자료 5년간 보관, 보조금사업 진행 상황 정부 보고 등은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회계 내역을 끝내 공개하지 않겠다면 정부는 지원을 끊는 게 마땅하다”고 했다.

▲21일 서울신문
▲21일 서울신문

세계일보도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권력화와 부실회계 문제는 심각한 수준”이라며 “혈세를 받고도 씀씀이는 허술하기 짝이 없다”고 주장했다. 국민일보는 기존 노조와 ‘엠지(MZ)세대 노조’와 구분 짓기하는 사설을 냈다. ‘새로고침 노동협의회’는 “임금부터 무조건 인상보다 ‘공정한 평가에 기반한 임금’을 요구하고, 연공형 호봉제를 고수하는 대신 성과형 임금을 적극 수용하는 길을 택했다”며 “지향점의 신선한 파격”이라고 했다.

조선일보는 “노동조합법은 노조가 재정 장부를 비치해 회계 결산을 공표하고 행정관청에 보고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며 “하지만 거대 노조들은 엄청난 돈을 받아 쓰면서도 얼마를 어디에 어떻게 썼는지 제대로 공개한 적이 없다. 일부 노조 간부들만 아는 특급 비밀”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정부 지원금을 받은 뒤 이들이 한 일은 강경 투쟁과 불법 파업, 반미 정치 선동, 폭력, 갑질”이라며 “흔들리지 않고 법 집행을 계속해야만 노조가 바뀐다”고 했다.

▲21일 조선일보
▲21일 조선일보

한국일보는 회계장부 공개가 노조의 의무가 아니라고 짚었다. 한국일보는 “노조가 지원금 사용 내역을 감추는 것으로 호도해서는 곤란하다”며 “국고보조금 사용 내역은 정부 시스템(e나라도움)으로 관리∙감독을 받는다”고 했다. 이어 “일반회계 장부는 노조법에 따라 노조 사무실에 비치되고 조합원은 언제든 열람할 수 있다”고 했다. “정부에 장부를 제출 않는다고 전혀 다른 주머니인 지원금 중단과 연계하고 조합원들의 조합비 세액공제까지 재검토하겠다고 나선 건 과도한 노조 압박”이라는 것이다.

한국일보는 그러면서도 민주노총이 회계 장부를 제출하거나 외부 감사를 받을 것을 주문했다. “노조법 27조는 행정관청 요구 시 결산 결과 등을 보고토록 하는 만큼, 노조도 정부 요구에 협조적일 필요가 있다”며 “정부와 노조 모두 서로를 적으로 몰아 갈등만 키울 것이 아니라, 교집합을 찾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했다.

▲21일 한국일보
▲21일 한국일보

경향신문은 이날 이정식 장관이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을 공개 비판한 내용을 반박하는 사설을 냈다. <이정식 노동, 노란봉투법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역행한다고?>란 제목의 사설에서다. 이 장관은 브리핑에서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에 대해 “단체교섭의 장기화, 사법 분쟁 증가 등 노사관계의 불안정 및 현장의 혼란만 초래될 것”이라며 “국회가 재고해줄 것을 강력 촉구한다”고 했다.

▲21일 경향신문
▲21일 경향신문

경향신문은 “노동법 개정안이 사용자 범위를 넓힌 것은 하청·특수고용 노동자가 ‘진짜 사장’인 원청과 교섭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법원이 2010년 현대중공업에 대한 대법원 판결, 지난달 CJ대한통운에 대한 서울행정법원 판결 등을 통해 마련해온 기준을 성문화하자는 것일 뿐”이라고 했다. “국제노동기구가 한국 정부에 ‘파업 목적에 대한 좁은 해석을 배제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권고한 바도 있다”고도 지적했다.

경향신문은 이 장관이 “글로벌 스탠더드는 무엇인지, 약자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보호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담아 전반적인 제도개선을 추진”해야 한다고 한 데에도 “주요국들은 사용자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유럽연합(EU) 의회는 디지털 플랫폼 노동자에 대한 원청 사용자 책임을 제도화하라는 입법지침안을 의결했고, 미국 노동부도 노동자를 프리랜서·자영업자로 분류하지 않도록 하는 규칙을 마련했다.

경향신문은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이날 노란봉투법 반대 입장을 밝히며 법안 저지에 총력전을 폈다며 “노사가 팽팽하게 맞설 경우 보통의 정부라면 형식상이나마 중재하려는 태도를 취하는 것이 상례이지만 그런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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