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무한도전’이 ‘품위유지’ 네 글자 자막으로 화제가 된 적 있다. 박명수와 하하가 정형돈에게 발길질을 하려는 찰나 화면이 멈추면서 ‘품위유지’ 자막을 띄웠다. 2011년 이명박 정부 시절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무한도전’의 비속어와 가학적 표현 등이 ‘품위유지’ 조항을 위반했다며 법정제재 ‘경고’ 결정을 한 직후 벌어진 일이다. 당시 방통심의위는 정치적 의도가 없다고 밝혔지만 ‘무한도전’이 정치 풍자를 해왔기에 보복성 심의가 아니냐는 의문이 나왔다.

이 품위유지 조항은 박근혜 정부 때도 논란이 됐다. KBS ‘개그콘서트’의 민상토론 코너에서 정부의 메르스 대응을 개그 소재로 다루며 박근혜 대통령과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을 풍자한 방송이 심의를 받았다. 방통심의위는 ‘품위유지’ 조항을 적용해 ‘의견제시’를 결정했다. “시청자에 따라 불쾌감을 느낄 소지가 있으며, 특정인의 인격권 등을 침해할 우려도 있기 때문”이라는 사유였다. 같은 시기 무한도전의 메르스 예방법 풍자 역시 의견제시 결정을 받아 예능을 다큐로 받는 과잉 대응이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MBC 무한도전 갈무리
▲MBC 무한도전 갈무리

윤석열 정부 들어 품위유지 조항이 다시 뉴스에 등장했다. 호통을 치며 방송을 진행해 ‘앵그리 앵커’로 불린 김명준 앵커가 진행하는 MBN ‘뉴스파이터’가 행정지도 ‘권고’를 받았다. 정부와 행정안전부 장관이 이태원 참사에 대한 사과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며 호통을 친 대목이 ‘품위유지’ 위반이라는 판단이다.

김명준 앵커의 진행 방식과 태도에 호불호는 갈렸지만 그간 큰 논란이 되지는 않았다. 문재인 정부 때도 시종일관 호통을 쳤는데 윤석열 정부를 비판하자 돌연 심의가 이뤄졌다. 논의 과정을 들여다보면 야권 추천 위원들은 심의할 사안이 아니라고 밝힌 반면 정부여당 추천 위원들이 행정지도를 주도했다.

방송심의규정 ‘품위유지’ 조항은 시청자의 윤리적 감정이나 정서를 해치는 표현을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불쾌감을 유발할 수 있는 과도한 고성·고함, 예의에 어긋나는 반말 또는 음주 출연자의 불쾌한 언행 등의 표현” “그 밖에 불쾌감·혐오감 등을 유발하여 시청자의 윤리적 감정이나 정서를 해치는 표현” 등을 규제한다. 몇 차례 조항 문구가 다듬어졌으나 핵심은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 2022년 11월 1일 MBN 뉴스파이터 방송 화면 갈무리
▲ 2022년 11월 1일 MBN 뉴스파이터 방송 화면 갈무리

방송심의 규정과 심의 제도 자체가 ‘과잉’이라는 지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품위유지’ 조항은 유독 논란의 소지가 크다. ‘불쾌감을 유발하는’이라는 표현 자체가 지나치게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느끼는 불쾌감의 정도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기에 결국 심의위원의 주관적 판단이 좌우한다. 

그렇기에 시청자가 아닌 심의위원을 추천한 정당, 그 정치세력의 권력자가 느끼는 ‘불쾌감’을 심의하는 조항이 아니냐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기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 결정과 엇갈린 판결 리스트. 디자인=이우림 기자
▲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기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 결정과 엇갈린 판결 리스트. 디자인=이우림 기자

“청와대 권력 일부를 빼고 도대체 ‘민상토론’으로 불쾌감을 느낀 시청자가 누구이겠는가? ”2015년 한국PD연합회가 ‘민상토론’ 행정지도 결정 이후 낸 성명 내용이다. 프로그램 이름만 바꾸면 당시의 지적은 여전히 유효하다. 

어느 정부이건 방송심의가 과도한 면이 있었지만 국민의힘 집권기 유독 논란이 됐다. 위원이 사무처 직원에게 지시해 청부심의 민원을 제기하고 정부 비판 시사 프로그램과 코미디에 무더기 제재를 했다. 심의 조항의 정비, 기구 권한과 위원추천 구조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 한 권력자 심기 경호형 무리수 심의가 또 다시 쏟아질 수 있다. 이번 심의는 신호탄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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