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수산업자 김 아무개로부터 접대를 받고 고급 자동차를 제공받은 TV조선 앵커와 중앙일보 논설위원이 있었나 하면, 김만배로부터 거액의 돈을 받아 쓰거나 명품 선물을 받은 한겨레신문, 한국일보, 중앙일보, 채널A 기자까지 드러났다. 여기에 김만배와 골프장에서 어울리며 100만 원에서 수백만 원씩 부당한 돈을 받아 쓴 언론인이 수십 명에 이른다고 한다.…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언론계 전반의 도덕성은 완전히 붕괴됐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머니투데이 법조기자 출신 김만배씨가 9일 서울 서초동 중앙지검으로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머니투데이 법조기자 출신 김만배씨가 9일 서울 서초동 중앙지검으로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국언론노동조합이 9일 ‘김만배 사태’로 불거진 언론계 전반의 도덕성 붕괴를 개탄하며 이번 사태에 연루된 언론인들의 즉각적인 퇴출을 요구했다. 언론노조는 이날 성명에서 “썩은 암덩어리들은 과감하게 도려내되 깊은 자성과 중단 없는 노력으로 언론 개혁의 길을 열고 신뢰를 바탕으로 언론자유를 고양하는 것이 피할 수 없는 우리의 책무”라고 강조했다.

성남시 대장동 개발비리 의혹으로 수사를 받고 있는 머니투데이 법조기자 출신 김만배(화천대유 대주주)씨로부터 한겨레신문 기자가 6억원, 한국일보 기자가 1억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중앙일보 기자는 김씨에게 8000만원을 준 뒤 이듬해 9000만원을 받았다. 조선일보는 한겨레신문 기자에게 전달한 돈이 3억 더 있다는 사실을 검찰이 파악했다고도 보도했다. 채널A 기자는 명품 신발을 선물 받았다고 알려졌다. 

검찰이 확보한 2020년 3월 ‘정영학 녹취록’에서 김만배씨는 정씨에게 “기자들 분양도 받아주고 돈도 주고, 응? 회사(언론사)에다 줄 필요 없어. 기자한테 주면 돼”라고 말한 것으로 나와 있다. “김씨가 골프를 칠 때마다 기자들에게 100만원씩 줬다”(남욱 변호사)는 진술까지 더해지며 김만배씨의 전방위적 언론계 로비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언론노조는 “소액 매수 가능. 20년 전 한 재벌 비서실에서 기자 집단을 관리하며 정리해 둔 기준”이었다며 2001년 11월 ‘언론인 자정 선언’에 나섰던 과거를 언급한 뒤 “(당시) 높은 청렴성을 확립하겠다고 밝혔으나 우리의 다짐은 20여 년이 지나도록 공염불에 그쳐 왔음이 다시 확인되고 있다”고 했다. 

언론노조는 “조선일보 주필이 대우조선해양으로부터 초호화 외유 접대를 받았는가 하면, 삼성전자 사장이 준 선물과 배려에 뭐라고 감사드려야 할지 참으로 모르는 듯싶은 문자 인사를 한 유력 언론인이 부지기수였다”고 전한 뒤 일련의 ‘김만배 사태’까지 언급하면서 “처참한 몰골을 드러낸 도덕성과 무너진 신뢰로는 민주주의 핵심 기능으로서 언론에 대한 지원과 지지를 요구할 염치도, 명분도 없는 게 우리가 직면한 현실”이라고 했다. 

언론노조는 “몇몇 미꾸라지들이 일으킨 흙탕물이라고 여기기엔 김만배 사태가 초래한 도덕성 붕괴와 언론 불신은 그 파장이 깊고 크다. 말의 믿음을 잃은 언론계가 공멸하지 않으려면 남은 방법이 많지 않다”며 “우선 ‘김만배 사태’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언론인들은 철저한 조사를 통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취재 현장에서 퇴출해야 한다”고 했다. 나아가 “국민의 알 권리와 권력 견제를 위한 취재보다 김만배의 놀이터로 변질된 낡은 출입처 문화도 혁파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무엇보다 “언론계 전체는 스스로 저질 언론과 언론인을 시장에서 퇴출시킬 강력한 규제 체제를 즉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언론인권센터는 같은 날 논평에서 “대장동 사건은 법조계와 정계를 아우르는 기득권 세력이 얽혀 있는 카르텔이 드러난 사건이다. 시민들은 그 진실을 제대로 밝히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라고 보았을 것이며, 혹여 검찰의 수사가 편파적으로 진행되지 않도록 언론이 철저하게 감시하고 진실을 밝혀내기를 기대했을 것”이라며 언론계에 대한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다. 

언론인권센터는 특히 한겨레신문을 향해 “1988년 국민주를 모아 출범한 한겨레신문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촌지를 받지 않는 기자들이 취재하고 보도하는 떳떳한 언론이라는 것이었다”며 “한겨레신문 기자가 대장동 사건의 부정한 금전거래 의혹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보도되면서 독자들이 받은 충격은 크다”며 철저한 진상조사와 깊은 사과를 요구했다.

앞서 언론노조 한겨레지부는 같은 날 성명에서 “우리는 가난했지만, 그 가난은 부끄럽지 않았다. 이제 그 존립 근거가 무너졌음을 가슴 저리게 확인하고 있다”고 한 뒤 “뼈를 깎고 몸을 부수지 않으면 침몰하는 한겨레를 되살릴 수 없다”며 전면적 쇄신을 요구했다. 한겨레 대표이사, 편집인, 편집국장은 이날 모두 사퇴 입장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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