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여의도 전경. 사진=gettyimages.
▲ 서울 여의도 전경. 사진=gettyimages.

새벽에 출근한 청소·경비 노동자들이 일을 마친 오후 4시경. 영등포구노동자종합지원센터에는 일을 마치자마자 온 노동자들이 삼삼오오 모이기 시작했다. 

“눈치보는 게 아니라, 우리의 권리를 찾아야하니까 (토론회에) 왔어요.”, “우리가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고, 허드렛일을 하지만, 떳떳하게 해야하니까요.” 지난 21일 열린 ‘여의도업무지구 비정규노동자 실태조사 결과발표’ 토론회 자리에 참석한 노동자들이 말했다. 토론회에 온 약 20명의 청소·경비 노동자들은 자료집에 밑줄을 쳐가며 발표에 집중했다.

여의도업무지구는 서울의 3대 도심 중 하나로 80년대부터 본격 개발되어 금융, 증권, 정치, 방송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 대형 업무빌딩이 밀집해 있는 만큼, 그 안에는 대표적인 고령자 일자리인 청소·경비 등 건물관리업 종사노동자들 또한 대규모로 근무하고 있다. 

다른 노동자들과 달리, 이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잘 보이지 않으니, 고용불안, 중간착취 등의 노동환경 문제도 잘 드러나지 않는다. 여의도에는 민간부문 사업장이 많은데, 공공부문 사업장보다는 고용, 노동환경이 열악하기도 하다. 류한승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지부 조직부장은 “이들의 마지막 노동생애에서 ‘시간’은 자신들에게도 가장 가치있는 자원이지만, 동시에 가장 철저하게 낭비되고 가장 값싸게 거래되는 품목”이라고 말했다.

▲ 지난 21일 열린 ‘여의도업무지구 비정규노동자 실태조사 결과발표’ 토론회에 참석한 청소,경비 노동자들. 사진=윤유경 기자.
▲ 지난 21일 열린 ‘여의도업무지구 비정규노동자 실태조사 결과발표’ 토론회에 참석한 청소,경비 노동자들. 사진=윤유경 기자.

이에 영등포구노동자종합지원센터와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는 2022년 6월 17일부터 8월 11일까지 여의도업무지구(서여의도, 동여의도, 마포 등) 실태조사를 진행했고, 총 514명의 노동자가 조사에 참여했다. 이번 조사는 서울 3대 도심지역(여의도, 강남, 종로중구)의 청소, 경비, 시설관리 종사자 노동환경에 대한 최초의 실태조사로 이들의 고용, 노동조건 현황을 정확히 파악하는데 목적을 뒀다.

가사노동과 전혀 다름에도 교육은 없어…청소상태 관리감독은 철저

여의도 빌딩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 A씨는 오전 5시 전에 출근한다. 계약서 상 출근시간보다 1시간 이른 시간이다. 정시에 출근해서는 입주사 직원 출근 전에 사무실 청소를 마칠 수 없기 때문이다. 알람을 맞춰두고 새벽 3시40분에 일어난 후 4시10분에 집을 나와서 버스를 한번 환승해 사업장에 도착하는데 40분 정도 걸린다. 

보통 새벽 첫차를 탄다. 더 빨리 출근해야 하는 경우에는 심야버스를 타거나 걸어서 출근한다. 대체로 청소노동자 1명이 한 층을 담당한다. 대형 쓰레기통이 올려진 카트를 끌고 다니면서 쓰레기를 종류별로 분리해서 수거한다. 배달음식 용기에는 잔반이 비닐 등과 섞여있고 음료수 컵이나 병에는 음료가 남아있다. 물통을 같이 가지고 다니면서 거기에 쏟고, 들러붙은 것들은 내려와서 잔반통에 정리한다. 6시 경 화장실 청소를 시작하고, 7시 경 사무실 청소에 들어간다. 

청소노동자들은 보통 새벽에 가장 집약적으로 일한다. 직원들이 출근하기 전, 전날 퇴근 후 쌓인 쓰레기를 다 치우고 세척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후에는 계단과 복도 청소를 시작하고, 수시로 화장실을 확인한다. 화장실 옆 마포간(걸레빠는 공간)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화장지를 보충하고 변기가 막히거나 문제가 생기면 처리한다. 퇴근은 오후4시. 보통은 바로 귀가해서 가사노동을 시작한다. 설거지와 청소를 하고 저녁식사를 준비한다. 보통 8시에 잠에 든다. 

▲ 2021년 1월7일 LG트윈타워 사옥 로비에서 외부와 출입이 금지된 상태로 농성 중이던 LG트윈타워분회 조합원이 건물 밖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 2021년 1월7일 LG트윈타워 사옥 로비에서 외부와 출입이 금지된 상태로 농성 중이던 LG트윈타워분회 조합원이 건물 밖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실태조사 결과, A씨를 포함한 노동자들은 건물 청소업무가 집에서 하는 청소와는 전혀 다르다고 느꼈다. 그러나 회사에서 신규입사자에 대한 직무교육이나 안내는 거의 없었다. 아무런 직업훈련이나 교육이 없다보니 작업안전에 대해서도 무방비 상태나 다름없다. 세척제 등 유해위험물질을 취급하더라도 그에 대한 정보를 안내받지 못해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도 많다.

반면, 청소상태에 대한 관리감독은 철저하다. 보통 원청과 용역업체가 모두 관여한다. 류 부장은 “시설의 청결, 위생의 유지에 있어서 객관적 기준도 있지만 주관적인 측면도 많고, 원청 담당자가 보통 용역업체의 계약에도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있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열악한 노동조건, 부당지시에도 ‘재계약 안될까봐’ 말 못해

조사에 따르면, 여의도업무지구 청소, 경비, 시설관리 직종은 거의 다 간접고용 형태로 되어있다. 대다수 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조건이나 관리자의 부당지시 등을 겪고 있었다. 

“화단 정리, 화단에 물주는 것이 청소 소관이 아닌데 나무가 죽었다고 소장이 잘렸다니까. 물을 안줘서 죽었다고 회사 관리업체 사장이 하청에다 지시를 한 거에요. 이 사람 자르라고.”(노동자 B씨) 식대를 지급하지 않고 쌀을 줄테니 밥을 해먹으라는 사업장도 있었다. “지금은 쌀을 주고 밥을 해먹으라는 거예요. 쌀은 파지 대금으로 우리가 사서 해요. 여기서 일을 하고 있는데 최소한 식대는 달라는 거예요.”(노동자C씨)

대부분 노동자들은 관리자의 부당지시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으나 재계약이 안될까봐 말하지 못한다. 영등포구노동자종합지원센터에서 노동법률 상담을 하고있는 이슬아 이산노동법률사무소 공인노무사는 “애초 2명이 담당하던 청소면적을 인원감축으로 1명이 하게됐지만 임금 변동은 없었다는 사례, 관리자가 CCTV로 계속 감시를 해서 일을 하다가 잠깐 숨을 돌리거나 동료를 만나기 위해 잠깐 다른 층으로 갔는데 시말서를 쓰라고 징계를 했다는 상담 사례 등이 있었다”며 “하지만 대부분 막상 문제제기를 하기에는 재계약이 되지 않을까봐 걱정하며 두려워하셨다”고 말했다. 

▲ 토론회에 참석한 이슬아 이산노동법률사무소 공인노무사. 사진=윤유경 기자.
▲ 토론회에 참석한 이슬아 이산노동법률사무소 공인노무사. 사진=윤유경 기자.

토론회에 참여한 청소노동자는 “점심을 먹다가도 나오라고 하면 가야된다. 근로자들이 불만을 토로하면 소장은 다 기록해놨다가 연말 재계약하면 다섯 여섯명씩 자른다. 그게 무서워서, 밤을 세워서라도 하라는 일 다 한다. 일이 많으면 새벽 네시에도 나온다”고 전했다. 

원청의 필요와 이익에 따라 고용관계가 유지되거나 단절될 수 있다는 점은 간접고용 노동자의 노동권 행사를 위축시키고 열악한 근로조건과 저임금 구조를 유지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아울러, 노동자들은 동일한 (원청)사업장에서 계속 일하고 있음에도 용역업체가 변경되는 과정에서 퇴사-신규입사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로 인해 실업급여, 수급자격, 근속년수, 연차휴가 등에서 불이익을 겪게 된다는 문제점도 지적됐다. 

자발적 조기 무급노동을 하게 만드는 ‘시간의 중간착취’

노동자 A씨의 경우처럼, 거의 모든 사업장에서 노동자들은 1시간 가량 일찍 출근하는 ‘자발적인’ 무급 노동을 하고 있었다. 아침 업무의 강도가 높고 정규직 직원들의 출근 전에 마무리해야 한다는 압박이 심하기 때문이다. 휴게시간에도 관리자의 지시, 감독이 이어지는 등 휴게시간도 사실상 대기시간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휴게시간에 부르면 빨리가서 해야지, 위법이라곤 생각해본 적도 없어요. 왜냐면 욕먹으면 어떡하지, 잘리면 어떡하지?…빨리 가서 얼른 청소해요. 만약 똥이 넘쳤다하면 소장이 잘릴 정도인데요.”(노동자 D씨)

이는 새벽시간대에 노동강도가 높지만 그만큼의 인력이 제대로 투입되지 않아서 발생하는 문제다. 새벽에는 도저히 시간 내에 일을 마치기 힘들 정도로 노동강도가 높지만 이는 노동자들의 자발적인 ‘조기 무급노동’으로 해결하고, 이후 최대한 긴 시간 사업장에 머무르면서 청결과 위생상태를 유지, 관리하도록 하는 것이다. 류 부장은 “결국은 청소노동자가 알아서 일찍 나와서 노동을 다 해야하는 구조를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 발제하는 류한승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지부 조직부장. 사진=윤유경 기자.
▲ 발제하는 류한승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지부 조직부장. 사진=윤유경 기자.

그 결과 하루의 절반 가까이를 사업장에 머무르고 있지만 유급으로 인정되는 노동시간은 겨우 5.5시간 내지 7시간으로 줄어든 기형적인 형태가 만들어진다. 류 부장은 이를 ‘시간의 중간착취’라고 이름붙였다. 이밖에도 코로나19로 동료가 확진된 경우 담당 업무를 대신 하거나, 주말 근무를 하면서도 수당이 지급되지 않는 등 청소 직종 전체에서 무급노동이 만연한 모습을 포착할 수 있었다. 

‘원청 사용자책임 분명히 하는 입법적 개선 이뤄져야해’

근로기준법 9조는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영리로 타인의 취업에 개입하거나 이익을 취득하지 못한다’고 하여 중간착취의 배제를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하청, 용역, 도급 등 다양하게 호칭되는 수많은 간접고용 관계에서 중간착취는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류 부장은 “국회에서 발의된 ‘사업이전(등)에서의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과 같이 원청의 사용자책임을 분명히 하고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고용승계가 보장될 수 있는 내용의 입법적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지역노동센터를 통해 지역 커뮤니티를 활성화하는 방식으로 이들의 처우 개선을 지원해야 한다”며 “중장기적으로는 중고령자 일자리 지원정책과 숙련 형성, 노동감독이 연계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슬아 노무사는 “현행 노동법상에는 근로시간에 대한 제한만 있고 업무량, 업무 강도에 대한 법적 제한이 없다”며 “건물의 특성, 건물 사람 이용 수 등을 반영해 기준을 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 발제하는 홍윤경 영등포구노동자종합지원센터장. 사진=윤유경 기자.
▲ 발제하는 홍윤경 영등포구노동자종합지원센터장. 사진=윤유경 기자.

홍윤경 영등포구노동자종합지원센터장은 “센터의 설립 목적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지역 내에 노동권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노동자들을 어떻게 발굴하고 지원할 것인가”라며 “센터에서는 무료 노동 상담, 매월 노동법 관련 문자 소식지 발송, 노동법 교육, 개인 심리 상담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고 있다. 영등포구, 고용노동부 남부지청과 협력해 여의도 용역 노동자 보호를 위한 조례 제정 추진을 제안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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