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국가 애도 기간은 끝났지만 6호선 이태원역 1번 출구를 찾는 시민들의 발걸음은 끊이지 않았다. 이태원역 1번 출구는 156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이태원 압사 사고를 애도하기 위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추모 공간이다.

7일 오전 1번 출구를 찾은 40대 남성 이철환씨는 “무고한 젊은 친구들이 희생됐다. 책임자에게 엄격한 처벌이 뒤따라야 한다”며 “현 정부가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 아닌지 답답하다”고 분개했다. 그는 포스트잇에 ‘하늘나라에서는 부디 행복하길.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라는 메시지를 적어 출구 벽면에 부착했다. 

▲ 이태원 참사 국가 애도 기간은 끝났지만 7일 6호선 이태원역 1번 출구를 찾는 시민들의 발걸음은 끊이지 않았다. 사진=김도연 기자
▲ 이태원 참사 국가 애도 기간은 끝났지만 7일 6호선 이태원역 1번 출구를 찾는 시민들의 발걸음은 끊이지 않았다. 사진=김도연 기자

“무정부 상태 느껴… 정부 무책임하다”

이날 이태원역에서 만난 시민들은 정부의 무책임을 비판했다. 이태원 주민인 70대 남성 임장기씨는 “무정부 상태라고까지 느꼈다. 정부는 기본적으로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며 “정부가 국민 생명을 지키지 못하는데 (젊은세대 등이) 자식을 어떻게 낳고 살겠느냐”고 비판했다.

이태원에서 상점을 운영하는 60대 남성 A씨도 “사람들이 핼러윈 축제로 그렇게 많이 몰린다면 정부와 경찰이 길을 차단하거나 통행이 가능토록 통로를 확보해줘야 하는데,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너무 방치했다”며 “경찰이 마약범이나 성폭행범을 단속하려고만 했지 안전에 대해서는 신경쓰지 않았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30대 여성 B씨는 “참사에 관심이 시들까봐 걱정이 된다. 다들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안쓰러워 한번 더 나왔다. 애도 기간이 끝났지만 잊지 않으려 한다”며 “정부 대응 실패가 드러난 만큼 희생자들과 유가족에 대한 책임 있는 보상책도 논의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이태원 참사 국가 애도 기간은 끝났지만 7일 6호선 이태원역 1번 출구를 찾는 시민들의 발걸음은 끊이지 않았다. 사진=김도연 기자
▲ 이태원 참사 국가 애도 기간은 끝났지만 7일 6호선 이태원역 1번 출구를 찾는 시민들의 발걸음은 끊이지 않았다. 사진=김도연 기자

일부 시민은 이태원 참사에서 세월호를 떠올렸다. 비즈니스 출장 차 한국을 방문한 폴 브래들리(Paul Bradley)씨는 “참사 당시 지인들이 이곳에서 실제 CPR(심폐소생술)을 하는 등 사망 현장을 목격했다”며 “만약 내가 그날 여기에 있었다면, 죽은 사람은 나였을 수 있다. 누구든 사고 당사자가 될 수 있었기에 더 비극적인 사건”이라고 했다. 브래들리씨는 “세월호 참사랑 유사하다는 느낌이 든다. 정치인과 공무원들은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는다. 자신들이 주최한 축제가 아니라고 하지 않느냐”며 “누군가는 현장을 감독(oversee)했어야 했다. 분명 피할 수 있는 참사였지만 누구도 계획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언론, 세월호 때보다는 낫지만….”

참사 소식을 전하고 있는 언론에 대한 시민들 반응은 다양했다. 30대 여성 박미현씨는 “세월호 때보다는 좀더 낫지 않나 싶다. 세월호 때는 전원 구조 오보 등 각종 오보 및 선정적 보도가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며 “언론은 단순히 정치권 공방만 옮기기 보다 참사 발생 원인을 분석하고 향후 대안을 제시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30대 남성 C씨는 “이번 사고의 경우 SNS, 유튜브 등에 적나라한 영상이 공유돼 충격이었다. 언론보다 SNS 통해 소식을 접했다”며 “그래서 더 유가족이나 당사자 인터뷰 때 언론의 세심한 배려가 필요할 거 같다”고 당부했다. 

▲ 이태원 참사 국가 애도 기간은 끝났지만 7일 6호선 이태원역 1번 출구를 찾는 시민들의 발걸음은 끊이지 않았다. SBS 기자가 현장을 취재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이태원 참사 국가 애도 기간은 끝났지만 7일 6호선 이태원역 1번 출구를 찾는 시민들의 발걸음은 끊이지 않았다. SBS 기자가 현장을 취재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MBC가 최근 ‘이태원 참사’ 대신 ‘10·29 참사’로 명명하기로 한 데 대해 평가가 엇갈렸다. 이태원 주민인 30대 여성 D씨는 “세월호 때도 ‘진도 여객선 침몰사고’에서 ‘세월호 참사’로 바꾸어 부르지 않았나. 언론이 ‘이태원 참사’라고 부르는 게 마음에 걸린다”며 “이태원 참사로 명명하면, 이곳에서 장사하는 분들이 더 힘들어질 것 같다. 여기 월세가 한두 푼하는 것도 아닌데…. 이태원에서 물건 파는 분들이 괜히 질타받는 분위기가 형성돼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브래들리씨도 “10·29 참사로 사건 이름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911 테러도 마찬가지다. 뉴욕 참사라고 부르지 않는다”며 “비극적 참사를 지명으로 명명하면, 사람들은 계속 특정 지역과 참사를 연관 지어 생각하게 된다. 이태원에는 아름다운 역사가 있는데 하나의 비극이 모든 걸 집어삼키면 안 된다. 상인들 우려도 동의한다”고 말했다. 반면 박씨는 “이태원에는 많은 외국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실제 이번 참사로 외국인들도 희생됐다. ‘이태원 참사’라는 단어에는 그들에 대한 애도 의미도 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 이태원 참사 국가 애도 기간은 끝났지만 7일 6호선 이태원역 1번 출구를 찾는 시민들의 발걸음은 끊이지 않았다. 사고 현장은 통제된 상태다. 사진=김도연 기자
▲ 이태원 참사 국가 애도 기간은 끝났지만 7일 6호선 이태원역 1번 출구를 찾는 시민들의 발걸음은 끊이지 않았다. 사고 현장은 통제된 상태다. 사진=김도연 기자

“비극을 정쟁화하면 안돼”

한편, 여·야는 7일 이태원 참사 원인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실시 여부를 논의했지만 합의에 실패했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국회가 국민을 대신해 진실을 물어야 할 시간”이라고 강조했지만,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아직 국정조사를 논할 단계가 아니다”라며 맞섰다. 재난 대응 주무 부처 장관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경찰 수뇌부의 경질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진보 측 집회에서 윤석열 대통령 퇴진 구호까지 나오는 등 진영 대결이 고조되고 있다. 

시민들은 지나친 정쟁화를 우려하고 있다. 당산동에 거주하는 80대 김정길씨는 “정치권은 허구한 날 싸웠는데 이번 사건을 계기로 잠잠해진 것 같아 좋았다. 여·야 정치권이 그래도 애도 기간에는 정파 싸움을 자제하는 것 같았다”며 “거리에서 사람들이 이렇게 허망하게 죽었는데 비극적 사건을 정치 쟁점화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30대 여성 B씨는 “정부 책임은 분명하지만 대통령 퇴진 구호는 너무 나간 것 아닌가 싶다”며 “누구에게 책임을 묻고 따져야 하는지 언론이 가름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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