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30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참사 현장을 둘러보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 사진=대통령실
▲10월30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참사 현장을 둘러보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 사진=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이태원참사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한 국민애도기간을 선포했지만 그 취지를 거스르는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대통령은 특별한 설명 없이 출근길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을 중단했고, 참사 직후 정부가 사건 명칭을 통일하려 한 사실이 드러났다.

윤석열 대통령은 참사 다음날인 지난달 30일부터 오는 5일까지 7일간을 ‘국가애도기간’으로 지정했다. 대변인실은 윤 대통령의 이 같은 결정을 알리며 “모든 정부 부처와 관공서에 즉시 조기를 게양할 것을 지시했다”고 출입기자들에게 알렸다.

그러나 애도기간 지정의 진정성을 무색하게 만드는 잡음이 이어졌다. 국가애도기간 동안 공무원들이 검은색 리본을 패용하도록 하면서, 희생자에게 조의를 표한다는 의미의 ‘근조(謹弔)’ 글자가 보이지 않도록 뒤집어서 착용하라는 지침이 있었다는 것이다.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1일 오후 기자회견을 열고 “무슨 이유나 근거로 이 같은 지시가 내려진 것인지 참으로 기괴하다”고 비판했다.

이태원참사를 참사라 부르지 말라는 지침이 있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참사’가 아닌 ‘사고’, ‘희생자’가 아닌 ‘사망자’로 용어를 통일하라는 요구를 받았다는 증언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MBC는 1일 행정안전부의 비공개 문건을 통해 참사 다음날인 지난달 30일 오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사고 명칭을 통일”하고 “객관적 용어를 써야 한다”는 논의를 했고, 이 결과를 지자체에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실제 김성호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은 이날 오전 정부세종청사 브리핑에서 “‘사망자’와 ‘부상자’로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며 “명확하게 가해자나 책임이 나온 부분에 대해서는 ‘희생자’ ‘피해자’ 용어도 사용하지만 객관적으로 확인되고 명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는 중립적인 용어가 필요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가해자나 책임’의 대상이 되는 것을 부인하려는 취지를 시인한 셈이다.

이는 참사에 대한 규정을 정부가 통제하려 한다는 비판과 함께, 사회적 갈등의 씨앗을 만들었다는 지적을 부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이나 지자체의 경우 정부 지침을 따르지 않고 이태원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메시지를 내고 있다. 일부 지자체는 시민들로부터 ‘왜 사망자라고 쓰냐’ ‘왜 희생자라고 쓰냐’는 양 극단의 항의를 받고 있다고 한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추모와 애도의 마음을 저 표현 논란이 희석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이미 희석을 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화가 난다”고 전했다.

▲김성호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왼쪽)이 11월1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이태원 사고'(이태원 참사) 관련 중대본 회의 내용 등을 브리핑 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성호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왼쪽)이 11월1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이태원 사고'(이태원 참사) 관련 중대본 회의 내용 등을 브리핑 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통령실은 이런 논란과 선을 긋고 있다. 이날 오후 익명 전제의 백브리핑에서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께서 사고 다음날 아침에 이 자리에서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면서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나서는 안 될 비극과 참사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용어를 두고 현 정부가 이를 축소할 의지가 있다고 믿는 국민들은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공식적인 행정 문서에서 표현하는 것을 현 정부가 가진 애도의 마음과 혼돈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통령실도 지난달 29일부터 현재까지 브리핑 및 일정, 자료 제목에 ‘이태원 사고’를 쓰고 있다.

더구나 윤석열 대통령이 돌연 출근길 질의응답을 중단한 것도 또 하나의 논란을 만들었다. 31일 밤 9시26분께 김은혜 홍보수석은 서면브리핑을 통해 ‘도어스테핑(출근길 질의응답) 중단’을 통보하면서다. 김 수석은 “함께 슬퍼하고 위로해야 할 국가 애도의 기간, 대통령은 출근길 도어스테핑을 하지 않기로 결정을 내렸다”며 “지금의 아픔과 충격을 가족의 마음으로 함께 나눠주시고 있는 언론인 여러분들도 널리 양해해주시리라 믿는다”고 공지했다.

이에 백브리핑에서도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대안을 직접 설명해야 하는데 이런 결정이 이뤄진 배경이 무엇이고 누가 제안했나’라는 질문이 나왔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국가 애도 기간은 말보다는 고개를 숙이는 그런 애도의 시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윤 대통령의 뜻이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철저하게 준비를 해나가는 것이 지금 가장 중요하다”며 “지금은 다른 설명보다 그것을 해내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판단에서 그런 결정을 내렸다는 걸 말씀드린다”고 답했을 뿐이다.

복수의 출입기자들은 대통령실의 이런 결정이나 설명을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한 출입기자는 미디어오늘에 “대통령 본인이 애도 기간을 갑자기 선포해놓고 애도 기간이니 ‘도어스테핑’을 안 한다고 하는데, 이게 애도랑 무슨 상관인가”라며 “불편한 질문을 안 받으려고 하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출입기자는 “윤 대통령의 발언 논란을 차단하기 위한 포석이 아닐까 생각된다”며 “최근 윤 대통령이 참사 현장에 가서 한 말이 영상으로 보도됐는데, ‘여기서 그렇게 많이 죽었다고’라고 말한 것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런 말이 또 나갈까봐 사전에 방지하는 걸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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