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봉주 전 의원. ⓒ연합뉴스
▲정봉주 전 의원. ⓒ연합뉴스

정봉주 전 열린우리당 의원이 자신의 성추행 의혹을 보도한 프레시안에 제기했던 10억 원대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1심에서 기각됐다.

서울서부지방법원 제12민사부(재판장 성지호)는 14일 정 전 의원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는 A씨 진술과 이를 다룬 보도를 허위라 단정할 수 없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정 전 의원의 성추행 의혹은 지난 2018년 3월7일 프레시안 보도([단독] “나는 정봉주 전 의원에게 성추행 당했다”)로 처음 제기됐다. 같은 달 정 전 의원은 A씨를 만난 적도 없다며 프레시안 기자를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고소했는데, 이후 관련 장소에서의 카드결제 내역을 확인한 뒤 고소를 취하했다. 비슷한 시기 프레시안이 정 전 의원을 공직선거법 위반, 무고, 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고소한 사건에 대해선 올해 4월 무죄가 확정됐다. 지난해 12월엔 정 전 의원이 프레시안과 관련 기사를 쓴 기자 2명에게 10억 원의 손해배상(기자들이 3억 원 연대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해 이번 판결로 이어졌다.

▲2018년 3월7일 프레시안 보도
▲2018년 3월7일 프레시안 보도

재판부는 앞서 정 전 의원에 대한 무고·명예훼손·공직선거법위반 혐의 재판에서 무죄가 확정됐지만, 이것이 ‘성추행 사실이 없었다’는 사실이 증명됐다는 취지는 아니라고 봤다.

재판부는 A씨 주장과 프레시안 보도를 허위사실로 볼 수 있는지, 프레시안의 보도가 공익에 부합하는지 등에 대한 판단 근거를 판결문에서 밝혔다.

우선 A씨 주장에 대해서는 “일관되지 않고 일부 허위로 밝혀진 내용들이 있기는 하나 이는 오래 전 일에 대한 기억을 진술하는 과정에서 일부 불일치하는 사항이 있는 것으로 자연스러운 일”이며 “‘원고가 A를 호텔에서 그 의사에 반하여 포옹하고 입술이 닿았다’는 점에서는 대체로 일관성이 있는바, A의 진술을 섣불리 거짓이라고 단정하기도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프레시안 보도 역시 허위로 단정할 수 없다고 봤다. “각 보도에서 일부 자극적이거나 오해의 여지가 있는 표현을 사용하기는 했으나 A의 진술에서 크게 벗어났다고 볼 수 없”으며 “진술을 의도적으로 왜곡하거나 A의 주장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단정하여 기사를 구성한 사정도 보이지 않는 점 등을 종합해 보면 보도에 기재된 내용이 섣불리 허위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보도의 공익적 목적도 인정됐다. 정 전 의원은 국내 유명 정치인으로서 사회 일반에 알려진 공적 존재로 볼 수 있고, 그의 성추행 관련 의혹은 당시 촉발된 ‘미투’(#MeToo) 운동과 함께 국민적 관심사였다는 것이다. 사건을 보도한 목적은 공적 존재에 대한 의혹을 세간에 알리고 그 의혹의 규명을 촉구하기 위한 것이므로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재판부는 밝혔다.

▲서울서부지방법원 ⓒ연합뉴스
▲서울서부지방법원 ⓒ연합뉴스

특히 재판부는 “보도의 목적이 원고의 낙선이라고 해석할 수도 없다”고 짚었다. 재판 과정에선 A씨가 과거 친구에게 “사실 별일 아니라고 할 수 있었는데, (정 전 의원이) 서울시장 출마하는 건 우리도 다 보기가 싫더라고”라며 보낸 메시지가 증거로 제출됐다. 그러나 재판부는 “A의 진술이 허위라고 할 수 없는 이상 A가 원고의 출마를 원하지 않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럽다고 볼 수 있고, A의 문자를 피고들의 의도로 해석하여 ‘이 사건 보도의 목적은 원고의 낙선’이라고 확대해석 할 수도 없다”고 했다.

재판부는 “피고들이 원고로부터 충분한 반박이나 해명을 듣지 않고 이 사건 1차 기사를 보도한 것으로 보인다”고 언급하면서도 “A의 진술이 거짓이라고 단정하기도 어렵고, 원고의 해명에 기본적으로 사실과 달랐던 부분이 있었던 점이 인정되는 바, 원고로부터 충분한 반박이나 해명을 듣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피고들에게 (보도의) 상당성이 없다고 볼 수는 없다”고 밝혔다. 성추행 장소·시점에 대해 A씨 주요 진술이 일관된 반면, 정 전 의원은 만남의 사실을 부인했다가 번복한 점 등을 고려한 대목이다.

프레시안 측 최재홍 변호사(법무법인 자연)는 16일 “사회적으로 ‘미투’가 촉발한 시기 정치인에 대한 제보는 공익적 목적이고 그것이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다는 것”이라고 판결 의미를 짚었다. 그는 “핵심은 이 기사 내용이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고 공익성이 있었느냐에 대한 판단이다. 언론 자유에 관한 사건이라고 평가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전했다.

정 전 의원은 이날 통화에서 “원래 민사는 (언론사 상대로) 이기기 어려운 것”이라며 “대법원에서 완전히 무죄가 됐다. 그것 이상으로 의미가 없다. 원래 민사는 안 하려고 했는데 프레시안이 (형사 재판부가 성추행은 판단하지 않은 것처럼) 판결문에 기초해서 쓰지 않고 마음대로 기사를 썼다”고 말했다. 아직 판결문을 읽어보지 못했다며 항소 등 계획은 밝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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