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29일은 지방자치의 날입니다.

지방자치의 정착이라는 공보처의 설립 취지를 통해 탄생했기에 지역민방이 느끼는 지방자치는 남다르다고 합니다.

수도권 초집중과 지방소멸의 위기, 강한 구심력에 비해 약한 원심력. 어디서부터 해법을 찾고 어떻게 사회적 합의를 끌어낼 수 있을까요?

지역방송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찾아 왔습니다. 지역민방 9개사는 10월 24일부터 30일까지 한주를 지방자치 주간으로 정하고 기획보도, 특집 대담, 캠페인 등의 제작 편성을 진행 중이라고 합니다. 더불어 본지에는 릴레이 기고를 희망해왔습니다.

미디어오늘은 기획 연재 '지역이 대한민국이다' 시리즈를 통해 지역의 생생한 목소리를 독자 여러분께 전합니다. - 편집자 주

 

K-POP, K-드라마, K-무비, K-뷰티, K-푸드, K-웹툰 등등 문화산업 전반에 ‘K’ 접두어 붙이기가 유행이다. 여기서 'K'는 ‘한국 고유의 문화’를 뜻한다. 그런데 전문가들은 K의 특징이 ‘고유성’이 아닌 ‘무국적성’, ‘장르의 변종’, ‘혼종’ 등에 있다고 지적한다(한겨레21, 9월20일자). K-POP에는 EDM, 랩, 발라드, 록, 단체 춤 등이 두루 섞여 있고, K-드라마는 액션, 코미디, 로맨스, 스릴러 장르를 넘나드는 게 특징이란다. K-컬처의 성공 비결 또한 “한국적인 스토리가 아니라 호소력 있는 이야기”(차우진 문화 평론가)로 제시한다.

지역 방송 콘텐츠도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흔히들 지역 방송 콘텐츠는 ‘지역의 고유성’을 잘 담아내야 된다고 하지만, 시청자들의 반응은 결이 좀 다르다. 지난 2018년 전문기관에 의뢰한 KBC 자체 시청자 조사에서는 지역성 과도, 다양성 부재, 재미없음, 세련됨 부재 등이 주요 불만으로 나타났다. 방송을 보지 않는 주요 이유도 재미있거나 흥미롭지 않아서(24%), 내 생활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서(18%), 방송 콘텐츠 스타일이 올드해서(11%) 등으로 답했다. 여기서 눈여겨 볼 점은 ‘과도한 지역성’과 ‘내 생활과 직접적 관련이 없어서’라는 응답이다. ‘지역성’에 대한 관행적(과거 지향적)이고 닫힌(편향적) 해석이 로컬 콘텐츠를 촌스럽고 재미없는 것으로 만드는 근본적 원인이 되고 있는 셈이다.

▲ 2월6일 추운 날씨에도 강원도 양양 지역의 한 해변에서 서퍼들이 파도타기를 즐기고 있다. ⓒ 연합뉴스
▲ 2월6일 추운 날씨에도 강원도 양양 지역의 한 해변에서 서퍼들이 파도타기를 즐기고 있다. ⓒ 연합뉴스

반면,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온오프라인 로컬 콘텐츠를 살펴보면 지역성에 대한 해석이 새롭다. 강원도 양양 해안의 지형적 특성에 ‘이국적 분위기’를 접목시킨 ‘서핑 전용 해변’, 제주 해녀의 삶을 담은 공연에 곁들여 ‘파인 다이닝’을 제공하는 로컬 레스토랑, 투박하게 여겨지던 전라도 사투리에 디자인을 입힌 문구용품 등은 ‘로컬의 고유한 자원’을 그 소재로 하지만 결국 담아내고자 하는 바는 자신의 개성 또는 동시대에 새롭게 떠오르거나 각광받는 라이프스타일, 가치관, 취향, 재미 등이다. 그러니까, ‘로컬의 유산, 고유성’, 우수성’ 그 자체를 애써 강조해서 전달하려기보다 본인들이 느끼고 생각하고 향유하는 동시대성을 호소력 있게 전달하는 하나의 방편으로 ‘지역의 고유성’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오히려 로컬이 더 매혹적이고 Hip한 것으로 소비되고 있다.

이처럼 지역성에 대한 창의적이고 개방적 해석은 로컬 콘텐츠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전 세계적으로 심화되는 양극화에 대한 문제의식에 한국의 골목 놀이를 접목시킨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라면, 반지하, 기사식당 등 특수한 한국 문화 코드로 같은 문제의식을 제기한 영화 ‘기생충’ 등이 대표적 사례다. 로컬 콘텐츠가 동시대성을 표현하는 매혹적 소재로 활용될 때, 세계 각지의 사람들은 재미를 경험하기 위해 콘텐츠를 소비하고, 나와 ‘결’이 맞는 곳이 있다면 어디든 찾아가서 관계를 맺는다. 누군가의 취향에만 맞다면 국경, 인종, 언어를 넘어선 수평적 확장이 무궁무진해졌다. 바야흐로 ‘비욘드 더 로컬(Beyond the Local)’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비욘드 더 로컬’ 시대에 가장 중요한 것은 ‘로컬’을 깊이 이해하는 일이다. ‘광주다움’, ‘대구다움’, ‘대전다움’, ‘울산다움’ 등을 정의할 수 있어야, 나와 ‘결’이 맞는 곳을 알 수 있고, 독창성 있는 로컬 콘텐츠를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는 ‘로컬’의 과거만큼이나 현재에 대한 존중, ‘지역’이라는 공동체만큼이나 무수한 ‘나’들이 만들어 낸 개성과 생활 문화에 대한 긍정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런 일을 가장 잘하는 곳이 로컬 크리에이터의 성지이자, 미국의 대표적 창조도시인 오리건 주(州) 포틀랜드이다. 이곳에 가면 지역의 고유한 개성을 유지하자는 뜻의 ‘Keep Portland Weird'라는 슬로건을 자주 접할 수 있다. 주요 도로의 대형 광고판에선 ‘Local'이란 단어가 ‘명품’과 비슷한 뜻으로 쓰이고 있었는데, 포틀랜드 시민들은 ‘포틀랜드다움’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이런 바탕 위에서 기술, 디자인, 창의성 등 동시대성을 결합해 ‘나이키’, ‘킨포크’로 상징되는 고유의 생활 문화를 전 세계적으로 확산시킬 수 있었다.

▲ KBC광주방송 홈페이지 갈무리.
▲ KBC광주방송 홈페이지 갈무리.

다행히 최근 부쩍 많은 청년들이 ‘로컬 크리에이터’ 에 매력을 느끼고 로컬 콘텐츠 창업에 도전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로컬 콘텐츠의 전초기지인 지역 방송사의 노력은 다소 미흡하다. 지역성을 공간, 지리적 인접성(방송 권역 內)으로 해석하고, 그 내용과 스타일 또한 변화된 라이프스타일과 가치관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해서이다. 무엇보다 내 삶과의 연관성이 없는 고루한 지역성에 편향돼 있는 것이 문제다. 지역성에 대한 새롭고 창의적인 해석을 담아낸 다양한 콘텐츠 제작과 지원이 절실한 때다.

이는 지자체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예전처럼 파격적인 세제 혜택과 막대한 국비 투입을 통해 기업과 인재를 유치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매력 있는 도시! 살고 싶은 도시!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이 뚜렷한 도시가 아니고선 청년들을 붙들어 둘 수 없다. 결국은 로컬의 삶을 매력적으로 해석하고, 창의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는 새로운 콘텐츠 기획과 제작이 지역 경쟁력 강화에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여기에서 콘텐츠는 우리가 향유하는 시공간을 풍요롭게 만드는 창작의 총체를 일컫는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는 지역의 모든 주체가 ‘로컬 크리에이터’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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