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를 시작한 지 한 달 반. 6kg 정도 감량했다. 더 이상 다이어트 실패는 없다는 일념으로 우선 공부부터 했다. 과거 실패 사례를 종합해보면, 무조건 안 먹고 많이 움직이는 원칙하에 어느 정도 감량하다 결국 요요를 겪는 악순환이었다. 공부 끝에, 살을 빼려면 먹어야 한다는 걸 알았다. ‘다이어트(diet)’의 원래 뜻이 ‘식습관’인 만큼, 운동 이상으로 뭘 어떻게 먹는지가 중요했다. 세 끼를 다 챙겨 먹되 탄단지(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구성을 철저히 지켜 먹는 게 핵심. 그러다 보니, 임의로 영양 비율을 깨뜨려 만든 가공식품은 자연스레 피하게 되고, 건강한 재료로 만든 음식을 적당히 먹는 습관이 서서히 자리 잡았다. 

다이어트로 가장 만족스러운 부분은, 매일 새벽 5시에 출근해야 하는 일정 속에서도 전에 없이 늘 기분이 좋다는 점이다. 외모의 변화 때문이 아니라, 시간과 열량을 건강한 삶을 위해 쓰다 보니 생각과 태도가 바뀌고 일상의 기분과 표정이 변했다. 먹는 것이 곧 나의 세포가 되고, 결국 내가 된다는 진리를 부쩍 피부로 느낀다. ‘다이어터’(다이어트 중인 사람들)들은 이걸 “먹는 것이 곧 나다(You are what you eat)”라는 문장으로 간단히 표현한다. 

건강하고 아름다운 몸을 원한다면 먹는 것이 전부일 만큼 아주 중요하다는 이 표현은, 미식가의 시조라 불리는 프랑스 작가 브리야 사바랭이 ‘미식예찬’에서 “당신이 무엇을 먹었는지 말해 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겠다”고 쓴 문장이 여러 번역을 거치며 변화한 것이다. 사실 사바랭이 처음 의도했던 건 먹는 음식이 곧 그 사람의 삶의 지향과 태도를 보여준다는 의미였는데, ‘말’도 참 그렇다. 뭘 보고 읽는지, 누구와 만나 어떤 이야기를 하고 어떤 생각 속에서 사는지 그 사람의 말에서 나온다. 어떤 말을 하는지가 곧 그 사람이다.  

▲이선영 MBC 아나운서.
▲이선영 MBC 아나운서.

그러니 ‘말 잔치’가 펼쳐지는 국정 감사를 보면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다. 우리 손으로 골라 뽑은 사람들이 텔레비전과 휴대폰 화면 밖에서 어떤 삶을 사는지 자꾸 나쁜 상상이 드는 걸 멈출 수가 없다. 국감이 시작되자마자 막말 릴레이가 펼쳐졌다. 매해 있는 일이지만, 안 그래도 말 때문에 정국이 들썩였으니 올해는 좀 다르겠지 하는 기대가 보기 좋게 깨졌다. 첫날부터 여야가 경쟁하듯 폭언과 막말을 쏟아냈는데 “혀 깨물고 죽으라”는 극언부터 서해 피살 공무원에 대한 고인 모독까지 나왔다. 소중한 예산이 허투루 쓰인 것은 없는지, 잘 된 건 뭐고 시정할 것이 뭔지 차근히 짚어도 모자랄 시간에 말싸움만 오가니 내용은 남지 않고 되새기고 싶지 않은 말들과 험악한 표정들만 잔상으로 남는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지나친 막말을 한다는 실망스러움에 속상한 게 아니라, 이들에게 마이크 할당량이 너무 많기 때문에 화가 난다. “권성동 의원이 지난 정부에서 임명된 김제남 한국원자력안전재단 이사장의 사퇴를 압박하다가 혀 깨물고 죽지라는 말까지 한겁니다.”…이들이 한 말을 그대로 전하는 이런 단신 뉴스를 전할 때는 민망함에 얼굴이 붉어진다. 또 차마 방송에 담지 못하는 비속어를 ‘이 땡땡’으로 발음할 거냐, ‘이 엑스엑스’로 발음할 거냐, 하나는 일본어 표현이고 하나는 영어 표현이니 그래도 후자가 낫지 않냐, 하는 논의가 오갈 때는 자괴감마저 든다. 정치인의 말은 질적인 고하를 불문하고 모든 매체를 통해 기록되어 퍼져나가 사람들 삶에 영향을 미친다.

TV에 얼굴 나오는 사람들이 탄단지 비율을 맞추고 섭취 열량을 줄여 다이어트 하는 것처럼, 미디어에 자기가 한 말이 나오는 정치인들도 말 다이어트를 했으면 좋겠다. 민생, 정책, 소통에 대한 고민으로 생각의 비율을 균형 있게 맞추고, 자만과 욕심은 줄여서 말이다. 다이어트가 원래 하루아침에 될 리가 없고 잠깐 성공하더라도 유지가 중요하다. 다이어트는 순간이 아니고, 습관을 바꾸는 평생의 작업이다. 말 다이어트를 제대로 시작하자. 안 그러면 다음 선거에서 처참한 요요를 겪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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