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드시 법조인일 필요가 없는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의 97%가 법조인인 것으로 확인됐다. 관련 법에서도 판·검사나 변호사 말고도 헌법연구관에 임용할 수 있는 자격요건 4가지를 더 규정했지만 사실상 유명무실한 요건인 셈이다. 헌법연구관은 실제 헌재 결정을 내리는 헌법재판관과 달리 사건의 사실관계를 정리하고 다양한 선례·제도 등을 분석해 보고서를 작성하는 등의 업무를 하기 때문에 법조인만 수행할 수 있는 업무가 아니다. 

헌법연구관 97% 법조인 출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실이 헌재에서 받은 헌법연구관 인원과 출신 현황을 보면 9월 현재 73명의 헌법연구관 중 71명(약 97%)이 법조인이고, 2명만 비법조인이었다. 비법조인 출신인 헌법연구관 2명(2010년 임용, 2016년 임용)도 법학 전공 출신이었다. 

▲ 2017년 이후 헌법연구관 법조인 출신과 비법조인 출신 현황. 자료=조정훈 의원실, 헌재
▲ 2017년 이후 헌법연구관 법조인 출신과 비법조인 출신 현황. 자료=조정훈 의원실, 헌재

 

헌법재판소법 제19조(헌법연구관) 4항에 보면 헌법연구관의 자격요건 5가지를 규정하고 있다. 

1호 판사·검사 또는 변호사 자격이 있는 사람(법조인) 
2호 공인된 대학의 법률학 조교수 이상 직에 있던 사람 
3호 국회·정부 또는 법원 등 국가기관에서 4급 이상의 공무원으로서 5년 이상 법률 관련 사무에 종사한 사람 
4호 법률학 박사학위 소지자로 국회·정부·법원 또는 헌재 등 국가기관에서 5년 이상 법률 관련 사무에 종사한 사람
5호 법률학 박사학위 소지자로 헌재규칙으로 정하는 대학 등 공인 연구기관에서 5년 이상 법률 관련 사무에 종사한 사람 

헌법재판관도 다양성 부족 지적받아

이처럼 헌법재판소법에서 다양한 자격요건을 규정한 이유는 헌법 연구가 단순하게 법리 적용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사회문화적 배경을 반영한 정치적 판단을 고려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는 정치·경제·사회적 갈등을 해결해야 하는 경우를 포함한다. 헌법재판은 개별 사건 당사자에게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 헌재 결정의 기속력을 통해 모든 국가기관에 효력을 끼치기 때문에 사회적 파급력이 크다. 

특히 전직 대통령 탄핵사건을 경험하면서 헌재가 일반 법원과 달리 국민 여론을 민감하게 받아들여야 하고, 민주주의 원리에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한다는 것을 전 사회적으로 학습했다. 최근 헌재가 다루고 있는 국가보안법 제7조의 위헌성 문제, 사형제 위헌 여부 등 몇 가지 사건만 봐도 사회적 갈등 해결을 위한 헌재 구성의 다양성 요구는 커질 전망이다. 

조 의원실이 헌재에서 받은 역대 헌법재판관 60명(소장 포함)의 출신을 보면 판사출신 49명, 검사출신 10명, 변호사출신 1명이다. 헌법재판관의 경우 법에서 자격을 법조인으로 규정하고 있다. 

헌법재판관 구성의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은 꾸준히 나왔다. 일단 지나친 판사 편향이다. 서울대 출신이 75%(60명 중 45명)으로 압도적이다. 헌법재판관은 40세 이상부터 가능한데 이러한 규정이 다양성 지표에 제한을 둔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 40대 재판관이 임명된 사례는 단 2건에 불과하고 이마저도 만 49세(이정미·이미선)였다. 헌법 제11조(모든 국민은 법 앞에서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해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생활 모든 영역에서 차별을 받지 않는다)에 근거할 때 결과적 편향성이 심하다는 취지다. 

▲ 헌법재판소. 사진=헌재
▲ 헌법재판소. 사진=헌재

 

법규정상 헌법재판관은 법조인 내부에서 다양성이 요구되고, 헌법연구관은 법조인 중심에서 탈피하는 방식의 다양성이 필요하다. 헌법연구관은 업무 특성상 법조인만 할 수 있는 역할이 아니다. 사건의 사실관계를 정리하고 법리·선례·제도 등을 분석해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이다. 재판관 평의 후 주심 재판관 지시를 받아 결정문 초안을 작성하기도 한다. 헌법재판소법에서 법조인으로 자격규정을 제한하지 않은 이유다. 

헌재, 임용 다양화 생색내기용인가

이와 관련한 헌재 측 입장을 조 의원실에서 물었다. 헌재의 답변을 보면 편향의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헌재 측은 조 의원실에 “사법시험·변호사시험 출신으로 편중된 헌법연구관의 출신 다양화를 위해 채용시 헌법재판소법에서 정한 5가지 자격요건을 공고해 다양한 지원자를 받고 있으며 2015년에는 법학 박사학위 소시자를 대상으로 별도 채용을 실시해 헌법연구관 1명을 채용했다”고 답했다. 즉 출신 다양화를 표방하지만 2015년을 제외하면 별도 채용을 실시한 사례가 없다는 뜻이다. 

지난 2019년 국정감사에서 헌법연구관의 다양성 부족을 지적받았지만 헌재는 2019년 이후 법조인 출신만 37명 임용했다. 헌재 측에선 헌법연구관의 업무내용과 난이도 등을 감안해 법조인 채용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며 임용 시 학부전공의 다양성을 고려하겠다는 입장이다. 

현재 73명의 헌법연구관 중 23명이 로스쿨 출신인데 이중 15명이 학부전공이 법학이 아니다. 서울대와 법학전공, 사시출신 법조인들 입장에선 비법학을 전공한 로스쿨 출신이 이질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시민들 입장에선 다 똑같은 ‘법조인’에 불과하다. 

헌재에는 헌법연구관 외에도 헌법연구위원과 헌법재판연구원 연구팀도 있다. 헌법연구위원은 사건 심리나 심판 관련 전문 조사, 연구를 담당하는 별정직 또는 임기제 공무원이고, 헌법재판연구원에선 연구관 또는 연구원을 임명하는데 이들은 헌법재판 연구를 담당하는 일반직 공무원이다.

▲ 헌법재판소 헌법연구위원, 4명 중 3명이 법조인 출신. 자료=조정훈 의원실, 헌재
▲ 헌법재판소 헌법연구위원, 4명 중 3명이 법조인 출신. 자료=조정훈 의원실, 헌재

 

조 의원실이 헌재에서 받은 각각의 출신 현황 자료를 보면 헌법연구위원은 4명인데 이중 3명이 법조인 출신이고 1명만 비법조인(사회학과 교수) 출신이다. 헌법재판연구원의 연구팀(제도연구팀·기본권연구팀·비교헌법연구팀·교육팀)은 대부분 직급이 행정사무관(5급)이고 일부 행정주사(6급 이하)와 서기관(4급)이 있다. 이들 16명 중 6명이 법조인이다. 전공으로 보면 16명 중 9명이 법학전공이다. 헌법연구를 하는 행정직조차 법조인 중심이라는 비판이 가능하다. 

이에 조정훈 의원은 미디어오늘에 “헌법재판은 민·형사재판과 비교해 각 법률 분야의 심층적 이론과 원리에 대한 지식이 요구됨에도 법률가 중심으로 구성된 것은 헌법의 기본원리와 맞지 않다”며 “다양한 분야의 경력과 학술적 역량을 보유한 전문가들을 다양하게 임용해 헌법정신에 맞는 헌법재판이 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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