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가 원자력발전을 ‘친환경’, 이른바 ‘녹색분류체계(Taxonomy‧택소노미)’에 포함시켜 환경단체들의 반발을 낳았다. 윤석열 정부가 기어이 원전에 녹색딱지를 붙여주려다 친환경 정책에 문제를 낳게 생겼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정부는 유럽연합(EU)이 원전을 친환경에 포함시켰고, 원전과 재생에너지의 조화로운 활용이 필요하다는 이유를 들었는데, 정작 EU의 조건과 국내 조건은 다르다. 방사성 오염물질이 배출되고, 폐기물이 완전히 폐기되는데 막대한 시간이 필요한 에너지원을 어떻게 ‘친환경’에 넣겠다는 것인지 의문이 제기된다.

환경부는 지난 20일 브리핑에서 “한국형 녹색분류체계(초안)에 ‘원자력 핵심기술 연구·개발·실증’, ‘원전 신규건설’, ‘원전 계속운전’ 등 원전과 관련한 3개 경제활동을 새롭게 포함했다”고 밝혔다. 녹색분류체계란 이 체계 안에 포함되는 업종에서 활동하는 기업들이 자금조달을 용이하게 하는 것이 주 목적인 개념이다. 이에 따라 환경부는 지난해 12월30일, 69개 경제활동으로 구성된 녹색분류체계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는데, 당시 원전은 빠져 있었다. 그런데 9개월 만에, 정권이 바뀌니 넣었다.

환경부는 원전을 ‘친환경’ 에너지로 판단한 이유를 두고 지난 7월 유럽연합이 원전을 안전한 가동과 환경피해 방지를 위한 조건을 전제로 EU 택소노미(녹색분류체계)에 포함한 점을 들었다. 또한 환경부는 “2030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2050 탄소중립 목표달성을 위한 재생에너지와 원전의 조화로운 활용을 위해 한국형 녹색분류체계에 원전 경제활동을 포함할 필요성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환경부는 세부적으로 ‘원자력 핵심기술의 연구·개발·실증’을 한국형 녹색분류체계의 ‘녹색부문’으로, ‘원전 신규건설 및 원전 계속운전’은 ‘전환부문’에 넣었다.

▲환경부가 지난 20일 녹색분류체계에 원자력발전을 포함시키는 초안을 발표하면서 제작한 카드뉴스. 이미지=환경부
▲환경부가 지난 20일 녹색분류체계에 원자력발전을 포함시키는 초안을 발표하면서 제작한 카드뉴스. 이미지=환경부

 

녹색분류체계에 포함되기 위한 조건이 있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의 안전한 저장과 처분을 위한 문서화 된 세부계획의 존재 △계획 실행을 담보할 법률이 제정되었는지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 보유 △방사성폐기물 관리기금 및 원전 해체비용 보유 △2031년부터 ‘사고저항성핵연료’(ATF) 적용 등이다.

그러나 환경부가 이번에 발표한 초안엔 지난해 12월 ‘제2차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에 따라 부지선정→중간저장→영구처분에 모두 37년에 걸친 고준위 방폐장 확보를 예정해놓아 구체적인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 확보 시점(연도)을 제시하지 않았다. 이는 EU 택소노미의 경우 2050년까지 처분시설을 확보해야 하는 것과 다르다. 또한 ‘사고저항성핵연료’(현재 핵연료보다 사고 발생시 훨씬 더 안전성을 갖춘 핵연료) 역시 EU택소노미는 2025년부터 적용해야 하는 것과 달리 우리 녹색분류체계의 원전에는 6년이나 늦게 적용할 수 있도록 배려해줬다. EU를 보고 원전을 넣었으면서 조건은 훨씬 완화시켜준 것이다.

왜 EU 택소노미와 한국형 녹색분류체계의 조건이 다르냐는 지적에 환경부는 질의응답 자료에서 “각 국가의 실정에 맞게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EU 택소노미의 기준을 참고하되, 국내 현실 등을 반영하여 기준을 마련했다”고 답했다.

환경‧에너지 단체에서는 거세게 반발했다. 에너지전환포럼은 논평에서 고준위 방폐장 처리 시점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은 점을 들어 “37년의 시간이 소요된다고 기술되어 있을 뿐 언제, 어떤 부지에서 추진할 지에 대한 규정이 없는 행정절차 및 공학적 전망일 뿐”이라며 “2050년 전까지 고준위방폐물 처분부지를 확보하고 건설, 운영할 세부계획을 조건으로 제시한 EU의 녹색분류체계와 대비 된다”고 지적했다. 이 단체는 “녹색분류체계에서 독자적인 엄격한 규정이 필요한 대목에서 환경부가 감당해야 할 책임을 원자력 법률의 제정으로 떠넘겼다”며 “미래세대에 필요 비용을 전가하는 무책임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무엇보다 EU의 경우 핵폐기물을 줄일 수 있는 기술에 국한해 원자력 연구개발사업을 지원하는 것과 달리 우리 정부의 녹색분류체계에서는 원자력 연구개발사업 전체를 지원하도록 한 점도 문제다. 에너지전환포럼은 “애초 녹색분류체계의 취지가 무색하게 또 다른 원자력 지원제도로 전락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조현수 환경부 녹색전환정책과장이 지난 20일 환경부 브리핑룸에서 원전을 녹색분류체계에 포함시키는 결정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정부e브리핑 영상 갈무리
▲조현수 환경부 녹색전환정책과장이 지난 20일 환경부 브리핑룸에서 원전을 녹색분류체계에 포함시키는 결정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정부e브리핑 영상 갈무리

 

이헌석 정의당 녹색정의위원장도 이날 페이스북에 쓴 글에서 “실제 내용을 보면 핵폐기물 최소화는 전체 중 극히 일부이고, ‘동위원소 생산전용로’나 ‘우주용 원자로’ 같은 것까지 사실상 원자력계 연구개발 내용이 모두 ‘녹색’ 으로 분류되고 있다”며 “대체 이런 것들이 왜 ‘녹색’인가”라고 반문했다. 이 위원장은 “EU 텍소노미를 ‘한국적 실정’에 맞춰 반영하겠다는데, 여기서 한국적 실정이란 결국 핵산업계의 이해 관계에 맞췄다는 게 잘 드러난다”고 비판했다.

환경운동연합은 21일 논평을 내어 “녹색분류체계가 수립되고 1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정권 입맛에 따라 무리하게 녹색 금융에 관한 정부의 가이드라인을 수정했다”고 혹평했다. 이 단체는 지난 2020년 기준 국내 녹색 금융규모가 약 72조원으로, 녹색분류체계에 따라 애초 ‘재생에너지·순환 경제 등 향후 육성·지원해야 할 산업에 투자가 집중되도록 유도하는 것’이 핵심이었가도 강조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가 원전에 ‘녹색 딱지’를 붙여주려고 녹색분류체계에 무리하게 원전을 포함해 정책 기능에 치명적 문제가 생기게 됐다고 환경운동연합은 비판했다. 정작 진짜 지원받아야할 친환경 산업이 피해를 입게 됐다는 지적이다.

환경운동연합은 “지금이라도 녹색분류체계가 실효적으로 작동하여 진짜 육성되어야 할 녹색경제활동만 지원할 수 있도록 원전 포함을 철회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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