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방송 화면에서 점차 ‘한국어 더빙 서비스’를 찾아보기 어렵다. 아동, 노인, 장애인 등 자막을 읽기 어려운 시청자에게 더빙은 미디어에 접근하기 위한 필수적 도구다. 지난 17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우리말 더빙 법제화를 위한 토론회’(도종환 더불어민주당·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실 주최) 참석자들은 ‘지금 바로’ 더빙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토론회에선 한국 미디어가 시각·청각 장애인의 접근권을 보장하지 못하는 현실이 전해졌다. 김영일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회장은 “다양한 플랫폼이 등장하고 매일 셀 수 없이 많은 콘텐츠들이 만들어지고 있지만 시각장애인들은 모바일, OTT에 접근조차 불가능하며, 지상파와 종편에서는 우리말로 더빙된 외화가 사라지고 있다”며 “해외 여러 나라는 이미 10여년 전부터 해외미디어에 대한 자국어 더빙의 의무를 법제화하고 있다. 특히 프랑스는 시청자가 원어, 더빙, 자막 등 방송언어를 선택해 시청할 수 있도록 세부 규정을 만들어 시행 중”이라고 했다. 

▲ ‘우리말 더빙 법제화를 위한 토론회’ 현장. 사진=윤유경 기자.
▲ ‘우리말 더빙 법제화를 위한 토론회’ 현장. 사진=윤유경 기자.

발달장애인 김대범 피플퍼스트 서울센터 활동가는 “(국내에서 보는) 해외 영화의 경우 자막만 있고, 더빙이 돼 있지 않은 작품은 보고 싶어도 보지 못한다”며 “한글을 잘 모르는 발달장애인도 있는데 너무 빨리 자막이 넘어가버려 자막을 보면 화면을 놓치고, 화면을 보면 내용을 놓친다. 영화의 흐름을 따라가기 위해 주로 어린이들을 위한 에니메이션 영화들을 보게 될 때가 많다”고 했다. 

아울러 “넷플릭스에는 더빙, 한글 자막도 있고 청각장애인을 위해 해설하는 자막과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해설도 있는데 (한국) 영화관에서 상영하는 영화는 그런 것들이 없다. 새로 만들어진 영화가 상영되는 영화관에서 장애인들에게 편의에 대한 지원이 없다”며 “각 장애 유형마다 각 개인마다 필요로 하는 것이 다를 수 있기에 이러한 다양한 정보와 편의가 반영된 영화관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했다. 

▲ 김대범 피플퍼스트 서울센터 활동가. 사진=윤유경 기자.
▲ 김대범 피플퍼스트 서울센터 활동가. 사진=윤유경 기자.

영국은 지난해 장애인 미디어 접근권 향상을 위해 ’국가차원의 장애인 전략(National Disability Strategy)’을 마련했다. 정부의 모든 정책결정 및 제공 서비스의 중심에 장애인을 두는 것이 핵심이다. 이렇게 하지 않고서는 미디어 접근권을 포함한 장애인의 인권 증진이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취지였다. 박기성 선문대 미디어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시작부터(from the start) 장애를 고려한다는 것”이라고 의미를 짚었다. 그러면서 “장애인의 미디어 접근권은 인권 차원의 문제라는 점에서 모든 방송정책이나 서비스를 만들 때 장애인에 대한 고려가 시작부터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 박기성 선문대 미디어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사진=윤유경 기자.
▲ 박기성 선문대 미디어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사진=윤유경 기자.

아울러 “더빙 서비스는 시각장애인과 같이 자막을 볼 수 없는 경우 미디어 접근 서비스인 동시에 자막(글자)을 읽을 수 없는 경우에도 영화 등의 콘텐츠를 이용하는데 발생하는 진입장벽을 낮추는 역할을 한다”며 “장애인 미디어 접근권을 이야기할 때 항상 ‘엔조이(enjoy: 누리다, 즐기다)’라는 단어를 쓴다. 같이 웃고 같이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똑같이 느껴야 한다. 더빙은 실감할 수 있게 한다는 장점이 있다”고 강조했다. 

김평원 인천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우리말 더빙 법제화의 새로운 2차 저작물로써의 역할을 강조했다. 김 교수는 “우리말 더빙 법제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편익은 사회적 약자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라며 “자국어 음성언어 교육을 위한 콘텐츠로 활용하고,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교육 미디어 교재로 활용하는 등 자국민의 의사소통 능력과 국격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김평원 인천대 국어교육과 교수. 사진=윤유경 기자.
▲ 김평원 인천대 국어교육과 교수. 사진=윤유경 기자.

시청 취약 계층의 접근권을 보장하기 위한 방안으로 도종환 의원이 지난 6월17일 발의한 방송법 일부 개정안이 거론된다. 개정안은 시청 취약 계층의 접근권을 보장하기 위해 지상파방송·종편방송채널사업자에게 수입 영화, 애니메이션에 대한 더빙 편성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개정안에 대해 조덕상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문화예술스포츠위원회 변호사는 “국가가 더빙 영상물의 제작, 편성 확대를 촉진한다는 원칙을 먼저 규정해야 한다”며 “이를 바탕으로 방송사업자들에게 더빙 영상물을 법정 기준 이상으로 편성할 의무를 부과한 후에 방송사업자가 더빙 영상물을 제작하는 비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국비로 지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조 변호사는 또한 ”한국어 더빙 확대는 OTT 사업자들도 예외가 될 수 없다“며 ”최근 더빙 작업에 참여하는 성우들에 대한 일부 OTT 사업자들의 불공정 행위가 사회적 이슈로 대두된 적도 있었던 만큼, 방송사업자들과 마찬가지로 OTT 사업자들에게도 영상물 더빙 의무를 부과하는 입법안을 향후 고민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방송사업자와 OTT 사업자에게 수평적으로 동일서비스 동일규제를 적용하는 통합적 입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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