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비상선언’ 내용 일부가 나오지만 결말은 담지 않았습니다.

영화 ‘비상선언(3일 개봉)’은 ‘우아한 세계’, ‘관상’, ‘더킹’ 등을 만든 한재림 감독이 5년 만에 내놓는 대작으로 송강호·이병헌·전도연 등 화려한 캐스팅으로 한껏 주목받고 있다. 지난 4일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개봉 첫날 관객 33만6000여명을 동원하며 지난달 말 개봉한 영화 ‘한산: 용의출현’을 밀어내고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다. 2022년 하반기에 개봉한 제작비 200억 원 이상 기대작 4편(외계+인, 헌트, 한산: 용의출현, 비상선언) 중 하나로도 꼽힌다. 

영화 전반부는 호평을 받을 만하다. 드라마 ‘미생’에서 선하고 성실해 보이는 캐릭터 장그래 역으로 인상을 남겼던 배우 임시완(극중 류진석)이 스토리 초반에 자신이 테러범이란 사실을 여기저기 알리며 등장한다. 임시완의 변신이 주는 신선함에 더해 초반 스토리는 몰입감이 높다. 진석은 감염되면 사망에 이르는 바이러스를 하늘에 떠 있는 항공기 내부, 즉 도망갈 곳 없는 밀폐된 공간에 살포해 승객이 하나씩 죽어가도록 하는 테러를 저지른다. 

▲ 영화 '비상선언' 한 장면
▲ 영화 '비상선언' 한 장면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덜 와닿을 공포다. 밀폐된 같은 공간에 있으니 첫 감염자와 가까이 접촉한 사람부터 감염이 진행된다. 감염자는 피부에 수포가 생기고 입이나 눈 등 얼굴에 난 구멍(?)에서 피를 쏟으며 죽어간다. 이걸 깨달은 승객들이 손수건 등으로 입과 코를 가리며 감염을 차단하려는 모습에서 실제 영화관을 찾은 관객들도 마스크를 고쳐 쓰게 만든다. 

테러범 진석이 잠복기를 줄이는 등 바이러스를 변형해서 치명률을 높였다는 설정, 때문에 변이 이전에 만든 백신이나 항바이러스로 문제해결을 확신할 수 없다는 정부 당국의 판단 등은 코로나 감염 2년반이 지나면서 끊임없이 변이한 코로나 시국을 떠올리게 한다. 수차례 변이로 이미 나온 백신이 코로나 확산을 막지 못하는 지금의 상황이 아니었다면 ‘비상선언’이 덜 와닿았을 것이다. 

현실과 달리 영화엔 각자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인물들로 채워졌다. 

인터넷에 올라온 테러 예고 영상만을 본뒤 그냥 지나치지 않아 현장을 찾고, ‘온몸’을 바치는 형사 인호(송강호), 특정 사건 이후 비행을 두려워하게 됐지만 비행기 내 테러라는 상황에서 자신의 책무를 감당한 재혁(이병헌), 자신의 직을 걸고 현장을 찾고 어려운 결단을 감당하며 그 결과까지 책임지는 국토부 장관 숙희(전도연)뿐 아니라 부기장 현수(김남길), 승무원 사무장 희진(김소진) 모두 직업윤리를 충실하게 지키려는 이들이다. 

영화 초반이 진석의 테러 과정과 이를 잡으려는 인호 등 공권력의 개입, 재난 상황을 대처하는 정부 당국의 반응 등으로 박진감 있게 흘러갔다면 영화 중반은 등장인물 각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주로 각 인물의 가족 관련한 드라마다. 

테러범 진석(임시완)은 가족관계에서 발생한 일종의 학대 탓에 세상에 분노를 품게 됐고, 인호(송강호)는 가족이 비행기에 탔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목숨을 바쳐 경찰공무원으로서 업무를 수행한다. 희진(김소진)은 동생을 결혼시킬 때까지 성실하게 일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무장이다. 

▲ 영화 '비상선언' 한 장면
▲ 영화 '비상선언' 한 장면

 

과거 기장이었던 재혁(이병헌)은 비상상황에서 다수를 살리기 위한 판단으로 위기에 대처한 일이 있었다. 다만 결과적으로 그 과정에서 부기장 현수(김남길)의 가족이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후 죄책감과 두려움으로 비행을 관뒀고, 테러가 발생한 비행기에서 마주하기엔 달갑지 않은 관계였지만 이 둘이 마주하게 된다. 테러라는 재난 상황에서 과거 재혁(이병헌)의 판단이 최선이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한다. 

테러범을 비롯해 등장인물들의 판단과 동기는 사적이지만 사건의 파장은 전국적, 아니 전 세계적이다. 미국행 비행기에서 벌어진 생화학 테러 탓에 미국은 자국 내 착륙을 거부했다. 결국 회항을 선택했지만 기장과 부기장의 감염으로 비행이 어려운 상황에 처하자 일본에 착륙을 시도한다. 항공기는 일본에서 거절당한 것도 모자라 일본 항공자위대의 위협까지 받는다. 

서울에서도 비슷한 일은 이어졌다. 정체불명의 감염병을 실은(?) 항공기가 한국에 착륙하는데 반대하는 시위대와 국민 여론이 모였고, 감염된 승객들도 이 사실을 확인한다. 이는 실제 코로나 확진자를 ‘벌레’ 취급하던 2년 전 상황이 떠오른다. 2020년 초 일본에서는 3000명 넘는 승객들이 코로나 확산을 이유로 배에서 내리지 못한 채 갇혀있던 일도 있었다. 

스릴 넘치던 재난영화가 드라마를 지나 영화 후반부에선 다큐멘터리에 가깝게 변한다. 사회비판 메시지가 주를 이루면서 근본적으로 인간의 힘으로 통제할 수 없는 재난 상황에서 국가와 공무원의 역할과 태도를 묻는다. 학생들이 가족에게 작별 영상을 촬영하는 장면은 세월호 참사를 소환한다. 

영화 후반부에 몇 차례 반전이 나오지만 반전의 순간을 제외하면 후반부의 몰입감은 떨어진다. 재혁(이병헌)이 비행기 조종실에 들어서면서 스토리의 큰 줄기가 예상된 점도 있지만 재난 상황에서 국가의 역할을 묻는 질문을 뻔한 방식으로 다룬다. 다시 확산하는 코로나 변이 바이러스와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는 새 정부의 방역정책 등으로 관객의 집중도는 스크린을 떠나 영화관 밖 현실을 향하게 된다. 

게다가 재난 상황에서 확인한 미국과 일본의 자국 우선주의, 한국 내에서 발동하는 감염자 비난과 공동체 분열의 모습, 비행기 내에서 감염의심자와 그렇지 않은 이들을 구분 짓는 과정에서 드러난 갈등이 나타난다. 이런 모습을 직접 드러내며 사회 비판 메시지를 비중있지만 피상적으로 담아내는 부분은 영화 초반 전개와 비교할 때 어울리지 않는다. 

▲ 영화 '비상선언'의 한 장면
▲ 영화 '비상선언'의 한 장면

 

생존 우선 분위기에서 희생하는 사람은 그냥 희생당하고 끝나는 불편한 현실도 등장한다. 얼마전 코로나 병동에서 일하다가 퇴직을 강요받는 간호사들이나 코로나 확진 혹은 백신 접종 이후 사망했지만 아무런 관심이나 보상도 받지 못하는 피해 가족들을 떠올리게 한다. 

재난으로 파편화한 공동체와 일부 개인들이 너무 큰 희생을 치르는 현실을 보여주는 탓에 ‘각자도생’이란 네 글자가 떠오른다. 영화에선 이를 “나약하고 겁많은 인간”이라며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처리한다. 그나마 ‘비상선언’에선 책임지고 국민을 지키려는 장관 숙희(전도연)와 경찰 인호(송강호)가 있지 않나. 숙희와 인호가 없는 진짜 현실에서 우리가 믿을 건 마스크 한 장뿐이다. 영화 후반부에서 다시 마스크를 눌러 쓰게 되는 이유다. 

몇 가지 예상치 못한 결말 반전 장면은 신선했지만 러닝타임이 2시간20분으로 다소 길기 때문에 후반부의 사회비판 메시지를 좀 줄였다면 지루하지 않았을 것 같다. 슬쩍 보여주고 관객에게 여운을 남기기보다는 너무 많은 것을 설명하려는 모습, 어쩌면 한국 상업영화의 고질적 한계를 답습했다는 점에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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