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드라마 ‘스위트룸’에 출연했던 단역 배우들이 제작사를 상대로 밀린 임금을 돌려달라는 민사소송에 나섰다. 방송업계에서 취약한 위치에 놓여있는 단역배우들의 임금체불 사례는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촬영에 참여한 단역배우 세 명은 ㅊ영상제작사 대표를 대상으로 지난 5월12일 노동청에 진정을 제기한 데 이어 6월22일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ㅊ영상제작사는 웹드라마 ‘스위트룸’ 촬영이 종료된 후 3년이 지난 지금까지 단역배우들의 임금을 지급하지 않고 있은 것으로 나타났다. 

소송에 나선 단역배우 세 명은 2019년 7월부터 8월까지 ‘스위트룸’ 촬영을 진행했다. 배우 A씨는 촬영 전 50만원을, B씨와 C씨는 100만원을 작품 출연료로 지급받기로 하는 내용의 모바일필름 출연 계약서를 작성했다. 하지만 대표는 촬영이 진행된 달의 익월 말일 출연료 전액을 일괄 지급하기로 약정했음에도 현재까지 어떠한 임금도 지급하지 않았다. 

배우들은 ㅊ영상제작사 대표가 계속 임금 지급을 미뤄오다 배우들의 연락을 무시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ㅊ영상제작사 대표는 2019년 12월 C씨와의 통화에서 사비를 지출한 것에 대해서는 그 주에 바로 지급하고, 출연료는 스케줄이 확정 되는대로 수시로 연락하겠다고 답변했으나 이후 어떠한 연락도 하지 않았다”며 “A씨의 연락에 대해서는 2020년 10월 이후부터는 제대로 된 답변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결국 촬영 진행 후 3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급여를 지급하지 않고 있다.

▲ 배우 A씨와 ㅊ영상제작사 대표가 나눈 문자.
▲ 배우 A씨와 ㅊ영상제작사 대표가 나눈 문자.
▲ 배우 A씨와 ㅊ영상제작사 대표가 나눈 문자.
▲ 배우 A씨와 ㅊ영상제작사 대표가 나눈 문자.

한편, ㅊ영상제작사 대표는 5일 미디어오늘에 “이 사안 관련해서 고용노동청과 배우들의 담당 노무사와 얘기를 하고 있다”며 “양해각서를 써서 이번 달 안 혹은 9월초까지 변제를 해드리는 것으로 노무사와 애기했다”고 말했다. 

3년간의 임금 미지급 이유에 대해서는 “그동안 경영이 정상화되지 않은 부분들이 있었고, 쉽게 말하면 따로 매출이 잘 안이루어지다보니까 (지급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배우들이랑은 올 초까지도 통화를 해서 양해를 구했다고 생각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배우들의 노동청 진정사건을 대리하고 있는 하은성 노무사는 “아직 합의서 작성 전 단계이고, 체불임금 외에 실비 변상도 논의해야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초단기계약과 지인관계’, 단역배우가 방송업계에서 취약한 이유

이번 단역배우 임금체불 사건은 이례적이지 않다. 방송업계는 단역배우에게 언제든지 이런 부당한 일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배우 A씨도 출연료를 받지 못한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고 했다. A씨는 2017년에 출연했던 광고 촬영 당시에도 약 80만원에 해당하는 출연료 전액을 지급받지 못했다. 촬영을 먼저 제안했던 지인 PD는 어느순간부터 A씨의 연락을 무시하기 시작했고, A씨는 임금체불이 된 지 2년이 지나 경찰서 가서 신고를 했지만, 소용 없었다. A씨는 직접 PD를 찾으러 다니기 시작했다. 결국 A씨는 PD를 찾아냈고, PD는 그제서야 밀린 80만원을 지급했다. 

대다수 제작사들이 단역배우에 초단기 계약을 체결하면서 단역배우는 취약한 처지에 놓인다.  짧으면 하루짜리 계약에 촬영은 팀별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팀에서 미지급 상태가 유지되고, 관계가 안좋아져도 당장 회사 입장에서는 다음 프로젝트에 큰 지장이 없는 것이다. B씨는 “대표가 연락을 완전히 무시하기 시작했고, 그냥 돈을 못받는거구나 포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제작사에서 다른 사업을 구상 중이라는 기사를 봤다. 그게 너무 괘씸했다”고 말했다. 

▲ 스위트룸 홍보 영상.
▲ 스위트룸 홍보 영상.

초단기계약 경우일수록 지급 액수도 작다. 이번 사례처럼 약 50만원, 100만원 정도로 액수가 작을 경우, 사업주는 책임에서 더욱 자유롭고 위험성도 적다고 여긴다. B씨는 “당한 배우들이 그렇게 많은데도 주변에 소송을 한 사람은 한 명밖에 없다. 소송을 진행하게 되면 시간이 오래걸리는데, 엄청 큰 돈도 아니기 때문에 그냥 억울해도 넘어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은성 노무사는 “단역배우들은 사업주의 우선순위에서 포기된 것이다. 자신의 지위가 열악하면 열악할수록 법 위반에 많이 노출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초단기계약 고용 형태 때문에 단역배우는 근로자성을 인정받기도 쉽지 않다. 하은성 노무사는 “근로자성 입증의 책임은 배우들에게 있지만, 제대로 된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거나 구두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아, 입증 자료가 불충분한 경우가 많다”며 “배우의 경우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지않고, 업무가 명시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일반 사무직 제조업 노동자와 비교했을 때 상대적 종속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대법원의 ‘근로자’ 판단지표에 맞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2008년 서울행정법원은 이와 유사한 사안에서 ‘(보조출연자들은) 촬영현장에 일용직 형태로 고용되어 제작사 또는 용역공급업체의 요구에 따라 노무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시간급 보수를 받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2018년에도 대법원은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이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교섭단위분리재심결정취소 소송에서 ‘방송연기자도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상 근로자로, 별도 단체를 구성해 출연료 등을 교섭할 수 있다’고 판단한 바 있다. 하은성 노무사는 “연기자가 노동법상 노동자인건 너무 명확하다”며 “기본적으로 근로자의 개념이 넓어져야 하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또한, 단역배우의 출연은 지인관계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인 근로관계와 다른 특수한 문제점들이 있는 부분이다. 하은성 노무사는 “지인관계로 맺어진 근로계약의 경우 임금체불이 되어도 강하게 대응하기가 어렵다. ‘미안하다 내가 다음에 괜찮은 곳 소개시켜줄게, 나도 이럴줄 몰랐다’는 식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인을 통해 이번 웹드라마 촬영에 합류했던 B씨는 “지인이 있다보니까 처음에는 소송을 하는 것에 반대였다”며 “주변 배우들도 그런 이유 때문에 소송을 못한 사람들이 많다. 개인 또는 작은 팀 단체에서 촬영을 진행하기 때문에, 그 바닥은 너무 좁아서 서로서로 잘 알기 때문이다. 당연히 받아야 할 돈을 못 받아서 신고를 한 건데, 소문이 이상하게 나버리는 경우가 생긴다”고 말했다.

불공정한 방송업계 관행 속에서 단역배우들의 불안정 노동은 계속 반복된다. 작품과 작품 사이의 기간 동안 언제 자리가 나서 배역을 준비해야할지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에,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할 수가 없다. 하은성 노무사는 “짧은 기간에 할 수 있는 일자리는 정해져있고, 낮은 임금과 열악한 업무환경에도 일을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마저도 이렇게 임금체불이 되는 경우가 잦다”고 설명했다. B씨는 “단역배우들의 페이는 넉넉하지 않고, 일정하게 정해져 있지도 않다. 일이 없을 때는 몇 년 동안 연기를 못하는 친구들도 많다. 작은 금액이라도 체불이 됐을 때 우리의 생활에는 지장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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