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새로운 미디어비평 프로그램에서 전국에서 서울과 강원 지역에 남아있는 관언유착 악습인 ‘계도지’ 문제를 조명했다. 계도지는 박정희 정권이 정부에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세금으로 신문을 구독해 통반장 등에게 나눠주던 신문을 말한다. 

1일 KBS ‘시사멘터리 추적’ 중 미디어비평 코너인 ‘미디어추적’에서는 ‘통·반장 계도지 구독료 110억원 누구를 위한 예산인가’란 주제로 지자체의 세금낭비와 관언유착 실태를 보도했다. KBS는 서울 지역의 한 통장을 인터뷰했다. 해당 통장은 실제로 신문을 보지도 않고, 신문들을 모아서 재활용으로 처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 2022년 서울 지역 25개구 계도지 예산 현황. 사진=KBS 화면 갈무리
▲ 2022년 서울 지역 25개구 계도지 예산 현황. 사진=KBS 화면 갈무리
▲ KBS는 서울의 한 지역 통장을 인터뷰해서 계도지 명목으로 무료로 받는 신문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사진=KBS 화면 갈무리
▲ KBS는 서울의 한 지역 통장을 인터뷰해서 계도지 명목으로 무료로 받는 신문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사진=KBS 화면 갈무리

 

KBS 취재진은 서울 지역 25개구에 정보공개를 청구해 ‘통반장 신문 매체별 구독현황’ 즉 계도지 현황 자료를 받았다. 그 결과 2022년 기준 강북구가 6억2200만원으로 계도지 예산이 가장 많았고, 성북구 6억1900만원, 노원구 6억원 순으로 뒤를 이었다. 25개 구의 계도지 예산을 모두 합하면 총 115억3700만원에 달했고, 각 구청당 평균 계도지 구독료로 4억6100만원을 쓰는 꼴이었다. 

미디어오늘이 과거 정보공개청구한 자료를 보면 서울지역 25개구 계도지 예산 합계는 2018년 약 108억원, 2019년 약 109억원, 2020년 약 113억원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KBS도 서울 지역 계도지 예산 합계가 지난 2002년 52억원에서 2022년 약 115억원으로 크게 증가한 사실을 지적했다. 

약 20년전 전국적으로 계도지 폐지 운동이 벌어졌지만 현재 서울과 강원지역은 계도지가 여전히 살아있다. 일부 지역신문 관계자들은 서울의 경우 서울도 지역이라는 의식이 없는 점을 지적했다. 김경숙 구로타임즈 대표는 KBS와 인터뷰에서 “지역에 대한 시민의식, 주민의식을 갖고 있지 않은 서울이란 곳에서 정치인과 공무원, 지역언론 등 3자의 얽힌 이해관계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지역주민들의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각 구청에선 통반장들이 볼 신문구독료를 대납해주면서 신문사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다. 

지난해 12월 서울시 관악구의회 행정재경위원회 회의에서 관악구청 홍보담당자는 “신문구독이 통반장이나 주민들에게 보여지는 것도 있지만 언론사를 통해 저희 구정을 홍보하려면 언론사와 유대관계도 있고 솔직히 말하면(신문사에서) 신문구독을 해달라고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구의원이 ‘구독료를 내고 기사를 청탁하는 거랑 같다’고 지적하자 구청 관계자는 재차 “언론사와 우호적인 관계”를 언급했다. 

KBS 보도를 보면 지난해 12월18일 서초구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도 계도지 문제를 다뤘다. 당시 서초구청 홍보담당자는 “사람과의 관계, 어떤 환경의 네트워크 유지를 위한 일종의 화학적이고 소프트웨어적인 그런 비용이 든다”라며 “종이신문 구독이 떨어지는 추세니까 보지말자, 이렇게 도식적으로만 보기 어려운 화학적인 여러 이해관계가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계도지 구독이 언론사에 ‘보험성’으로 작용한다는 내용도 다뤄졌다. 서초구 홍보담당자는 또한 “우리가 어떤 리스크가 있을 때 평소 네트워크나 사람과 관계를 맺어놓지 않으면 갑자기 도와달라고 하면 ‘아니 내가 너를 언제 만났는데 도와줘’라는 애로점도 있고 해서 우리가 항상 그렇게 유지해왔고 모든 환경이 그렇게 이루어지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KBS는 계도지의 수혜를 가장 크게 보는 서울신문에 대해서도 다뤘다. KBS에 따르면 2022년 서울지역 서울신문의 계도지 예산은 65억7100만원으로 전체 계도지 구독료의 57%를 차지했다. KBS는 “서울신문 비중이 압도적으로 큰 이유는 과거 이 신문이 정부소유였던 시절 계도지로 활용했던 관행이 남아있기 때문”이라며 “3월 한달간 신문지면에는 13개 구청장 기사가 실렸는데, 단신을 제외하고 인터뷰나 기획기사 형식으로 크게 나온 기사만 이러했으며 기사에는 모두 구청장 사진이 들어갔다”고 지적했다. 

▲ 2022년 서울지역 계도지 예산 중 서울신문 비중. 사진=KBS 화면 갈무리
▲ 2022년 서울지역 계도지 예산 중 서울신문 비중. 사진=KBS 화면 갈무리

 

지역주민이 아닌 지자체에서 돈이 나오기 때문에 지자체 홍보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양기열 은평구의원은 KBS와 인터뷰에서 “구정을 전달하는 건 비판과 긍정의 시각을 함께 전달해야 하지만 구청이나 시청에서는 막대한 힘을 가지고 있고 홍보예산이 편향되게 잡혀있기 때문에 옹호와 홍보쪽 보도자료만 나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KBS는 계도지 시장을 놓고 신문사들의 경쟁이 치열해진 현실도 다뤘다. 2016년 한겨레가 ‘서울&(엔)’이라는 서울 자치구 소식을 다루는 별도의 지면을 만들었고, 최근 조선일보가 서울 자치구 홍보면을 만들어 계도지 시장에 뛰어든 소식을 전했다. 이기중 관악구의원은 KBS와 인터뷰에서 “해마다 예산 때가 되면 서울신문 대관 담당자가 사무실에 막 돌아다닌다”며 “(계도지 예산 삭감 저지) 의도가 보여서 나가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계도지 예산을 삭감하자고 주장했다가 압력을 받은 구의원도 있었다. 김정우 서초구의원은 KBS와 인터뷰에서 “어디서 연락을 받았는데 이거 무슨일이냐 당신 얘기를 하는데, 라고 하면 제가 그것만 얘기들어도 부담스러웠다”며 “그 이후로 자기검열하는 계기가 됐고 많이 위축됐다”고 말했다. 

지자체와 지역문제를 다루는 언론과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자는 주장도 나왔다. 

김 의원은 “원론적으로 언론과 관계가 건전했으면 좋겠고 공정한 환경이었으면 좋겠다”며 “주고받는 관계보다 언론은 언론대로 건전한 비판영역으로 가고 공직영역도 감시·견제받는 영역으로 남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은미 은평시민신문 편집장은 KBS와 인터뷰에서 “구정홍보라는 게 과연 무엇일까라는 것도 다시 한번 질문해봐야 한다”며 “대부분 구청장들이 다음 행보를 위해 정치활동을 하는데 그런 사람들이 언론에 영향력을 끼치고 자신의 정치적 발판에 도움되는 방향으로 언론을 이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KBS는 “통반장 신문을 없애서 언론과 관계를 바로 세울 것인가, 계속 유지하면서 권언유착을 이어갈 것인가”라며 “지방선거를 한달 앞둔 구청장 후보들이 답해야 할 질문”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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