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은 세대도, 성별도 각기 다른 10명의 비(非) 페미니스트를 만났다. “당신은 페미니즘을 무엇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렇게 싫어하느냐”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던졌다. 

한국일보 마이너리팀은 3월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페미니즘을 거부하는 당신에게’라는 기획으로 “성평등에 가장 뒤처진 국가이면서도, 여성혐오로 얼룩진 한국사회”에 대해 진단했다. 특히 최근 페미니즘이 사회의 ‘적폐’로 통하는 사실에 주목, 페미니즘이 왜 이런 취급을 받게되었는지 살폈다. 오랜시간 자연스러웠기에 미처 깨닫지 못하는 여성혐오와 페미니즘을 향한 오해도 짚었다. 

전혼잎, 최나실, 최은서 기자가 속한 한국일보 마이너리팀은 사회의 소수자나 약자라고 판단되는 계층들 이야기를 두루 다루고 있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달 28일 최은서, 전혼잎 기자를 통해 기획배경과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기획 주인공 ‘페미니즘 거부하는 시민’ 섭외해 인터뷰

20대 대선은 ‘여혐’을 공식 선거전략으로 쓴 초유의 선거로 기록됐다. 가장 이슈가 된 ‘성평등 의제’는 여성가족부 폐지 논란이다. 윤석열 당시 후보는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발언했고, ‘성별 갈라치기’는 또다른 성차별로 이어졌다. 한국일보 마이너리티팀 기자들은 더 이상 반페미니즘이 하나의 공고한 세력이 되면 안되는 중요한 시점이라고 판단했다. 

이를 위해 기자들은 페미니즘에 관한 특정 논의를 하기에 앞서 “당신은 페미니즘을 무엇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렇게 싫어하느냐”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던져야 한다고 봤다. 질문하기에 앞서 기자들은 먼저 객관적인 수치를 통해 한국의 성차별 현실을 설명했다. 19대와 20대 대선 주요 후보들의 여성·성평등 공약을 비교해 성평등 의제가 후퇴한 대선 국면을 짚었다. 법에 명시된 ‘남자 성씨 우선’, 성차별적인 채용 환경 등 성평등 후진국으로서 한국의 모습을 정리했다. 

▲ 한국일보 페미니즘을 거부하는 당신에게 기사 갈무리.
▲ 한국일보 페미니즘을 거부하는 당신에게 기사 갈무리.

특히, 기사 ‘“여자도 군대 가”란 말도 페미니즘입니다’에서는 기획의 주인공인 ‘페미니즘을 거부하는 시민들’ 10명을 직접 인터뷰했다. 섭외 기준은 ‘스스로를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개인의 주관이었다. 다만, 주관식 문항에서 본인이 생각하는 페미니즘의 정의를 물었고,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있을 정도로 본인만의 정의가 있는 사람들을 선별했다. 10·20대를 섭외한 최은서 기자는 특히 설문에 응할 10대를 찾는게 어려웠다고 말했다. 10대 남성은 ‘자기는 페미니즘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10대 여성은 ‘나는 페미니스트이기 때문에’ 설문을 할 수 없다고 한 경우가 많았다. 

기자들은 설문을 통해 페미니즘을 거부하는 시민들이 실제 성평등 의식은 높지만, 성평등 정책은 지지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했다. 실제 설문에서, 양성평등교육진흥원(양평원)이 과거 성평등 의식을 측정하려 개발한 단축형 성인지력척도 검사 결과 10명 모두 가정생활과 직장생활, 이성관계, 사회문화영역에서 고르게 높은 성인지력을 보였다. 

▲ 한국일보 페미니즘을 거부하는 당신에게 기사 갈무리.
▲ 한국일보 페미니즘을 거부하는 당신에게 기사 갈무리.

반면, ‘양성평등정책들은 남성의 입장은 무시하고 여성의 입장만을 대변한다’(그렇다 30%·그저 그렇다 60%), ‘정부나 기업 등에서 여성을 위한 많은 제도가 있음에도 여성들은 끊임없이 요구만 한다’(그렇다 50%·그저 그렇다 20%)에 수긍 비율이 높았다. 기자들은 이를 “페미니즘을 오해하고 거부하는 ‘페미니즘 백래시’의 영향이며, 임금·승진에서 여성차별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이지만 제도적으로 드러나지 않기에 “성차별은 이제 없다”고 보는 시각이 팽배해서”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짚었다. 

최은서 기자는 “예상보다 사람들의 평소 성인식, 성평등에 대한 인식은 낮지 않았다. 하지만 페미니즘이라는 단어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고, 페미니즘을 여성 우월주의로 오인하게 있다는 사실이 극명하게 보여졌다”고 말했다. 

‘언론은 여성혐오의 확성기’ 반성에서 출발한 미러링 기사

여성혐오 기사의 성별을 바꾸는 ‘미러링’을 시도한 2화 기사 ‘“남경 무용론이” “남성BJ 선물공세로”…이런 기사, 어색한가요?’는 ‘언론은 여성혐오의 확성기’라는 문제의식에서 시작했다. 언론에서의 혐오표현은 대중을 향해 ‘이 정도 표현은 괜찮다’라는 잘못된 시그널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미러링 기사를 담당한 전혼잎 기자는 미러링이라는 수단을 선택한 이유로, “언론보도의 문제점을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방식이라고 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러링은 모순을 드러내는데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지만 혐오를 혐오로 맞받아 결국 끝없는 혐오로 이어진다는 비판이 있다. 이에 전혼잎 기자는 어떤 기사를 미러링할 것인지 또 어떤 방식으로 해야하는지를 깊게 고민했다. 전혼잎 기자는 “살인이나 성범죄 등 사건 기사는 실제 피해자가 있기에 이런 미러링에 쓰이는 일이 그들에게 상처가 될 우려가 있었다”며 “그러나 새로운 사건을 만들어내서 미러링을 할 경우 ‘억지’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에 이미 존재하는 기사의 성별만을 바꾸는 방식으로 최종 결정했다”고 했다. 

아울러 “이번 기사 미러링이 기존에 느끼지 못했던 문제를 깨닫는 계기를 지나 또 다른 혐오로 읽히지 않도록 혐오표현 연구가나 여러 교수들에게 자문을 구했다. 표현 수위나 방식 등을 두고 많이 이야기를 나눴다”고도 말했다. 

▲ 한국일보 페미니즘을 거부하는 당신에게 기사 갈무리.
▲ 한국일보 페미니즘을 거부하는 당신에게 기사 갈무리.

미러링한 성차별 보도 사례 중, 기자들이 가장 중점을 둔 사례는 ‘여성 경찰 무용론’이다. 기사는 “남성의 실수는 개인의 문제가 되고, 여성의 잘못은 성별 전체의 비하로 이어지는 게 ‘경찰’ 기사의 특징”이라며 “다른 사건에서도 경찰의 초동대응 부실을 꼬집는 기사는 흔히 나오지만, 성별을 언급하고 문제시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다만 경찰의 성별이 여성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고 지적했다. 전혼잎 기자는 “언론은 물론이고 정치권에서조차 혐오라고 여기지 않고 당당히 혐오를 전시하고 제기하는 지경이기에 가장 중점을 뒀다”고 말했다. 

‘페미니즘을 거부하는 당신’들은 기자들에게 혐오 메일로 답했다

기획의 마지막 기사인 ‘혐오 메일 보내주신, 페미니즘을 거부하는 당신에게 답합니다’ 기사는  본래 예정에 없던 기사였다. 하지만 예상보다 5회까지의 기사에 대한 반발 반응은 거셌다. 기자 개인에게 온 혐오 메일은 10통, 반박 댓글은 한 기사당 약 500개씩 달렸다. 이에 기자들은 시민들의 질문을 그냥 넘기지 않고, 다시 직접 대답했다. 

최은서 기자는 “페미니즘을 아는 시민들끼리 아는 얘기하고 끝내는 기획이 아니라, 페미니즘에 대해 잘못 알고있는 시민 한 명에게라도 영향을 미치고자 했다. 당신들이 그렇게 싫어하는 페미니즘이 사실은 실체가 그렇지 않다고 마지막으로라도 강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 한국일보 마이너리팀이 받은 혐오메일. 한국일보 페미니즘을 거부하는 당신에게 기사 갈무리.
▲ 한국일보 마이너리팀이 받은 혐오메일. 한국일보 페미니즘을 거부하는 당신에게 기사 갈무리.
▲ 한국일보 마이너리팀이 받은 혐오메일. 한국일보 페미니즘을 거부하는 당신에게 기사 갈무리.
▲ 한국일보 마이너리팀이 받은 혐오메일. 한국일보 페미니즘을 거부하는 당신에게 기사 갈무리.

한국의 페미니즘은 ‘뷔페미니즘(뷔페+페미니즘의 합성어)’라면서 뷔페에서 원하는 음식을 골라먹는 모습에 빗대 이득만 취하려고 한다는 메일, 여성은 신체적 한계를 이유로 ‘의무병역’을 하지 않기에 남성 중심의 집단인 군인, 경찰 등이 됐을 때 비판을 받는 일은 당연하다는 메일 등에 기자들은 전문가와 구체적인 통계와 사실관계, 해외 사례를 들며 답했다. 별 다른 내용 없이 대뜸 장애와 질병을 뜻하는 혐오 욕설을 내뱉는 반응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최은서 기자는 “어느 순간부터는 ‘기자가 여자’라는 댓글이 추천수를 많이 받으면서 베스트댓글로 올라갔다”고 말했다. “사람들을 이해시키기 위해서 주관적 멘트라든지 개인적 사례를 최대한 배제하고, 일부로라도 더 객관적 수치, 통계를 많이 가져왔는데, 아무리 객관성을 담으려해도 보지 않으려는 독자들은 기자가 여자인지 아닌지로만 판단을 하는구나 생각이 들기도 했다. ‘기자가 여자’ 그 다섯 글자가 좀 속상했다”고 말했다. 

▲ 한국일보 페미니즘을 거부하는 당신에게 기사 댓글 갈무리.
▲ 한국일보 페미니즘을 거부하는 당신에게 기사 댓글 갈무리.
▲ 한국일보 페미니즘을 거부하는 당신에게 기사 댓글 갈무리.
▲ 한국일보 페미니즘을 거부하는 당신에게 기사 댓글 갈무리.
▲ 한국일보 페미니즘을 거부하는 당신에게 기사 댓글 갈무리.
▲ 한국일보 페미니즘을 거부하는 당신에게 기사 댓글 갈무리.

이어 “다른 의제들과는 달리 유독 페미니즘 기사 경우에는 기사 안에 내용을 다 써놨는데도 불구하고, 같은 내용을 지적하는 모습이 많았다”며 “그들을 당장 페미니스트로 바꿀 순 없었지만, 기사는 계속 남을테니까, 페미니즘에 대해 오인하거나 무작정 거부감을 갖게되는 사람들이 우연히라도 발견해서 생각이 바뀌게 된다면 그걸로 충분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한명이라도 인식이 개선됐다면 유의미한 기사라고 생각한다’라는 댓글이 기자들의 마음을 대변했다. 

“젠더보도, 기자 개인 의지 넘어 조직 차원에서 활발해야”

최은서 기자는 언론사 조직 전체에서 젠더 보도의 필요성을 인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일보의 젠더 이슈 보도는 아직까지 기자 개인의 영역에 있다. 젠더 이슈 안건이 거부되지 않고 기사로 다룰 수 있다는 것 자체에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다”며 “지금까지는 기자 개인의 의지로 젠더 보도가 이뤄졌다면, 이제는 조직 전체에서 젠더 보도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젠더보도는 특정 팀·기자 담당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모든 부서에서 다 다룰 수 있는 이야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젠더 이슈는 더 필수적으로 다뤄져야 한다”며 “젠더 이슈를 다루는 기자들은 필수적인 일을 당연히 하고있는거고, 젠더 이슈에 달리는 회사 차원의 악성 댓글 관리 등 그에 대한 보호가 당연히 이뤄져야 한다는 논의를 좀더 활발히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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