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새해 시무 키워드는 ‘통제’다. 지난 해 연말 치솟은 확진자 여파로 강화한 방역지침이 2주 연장되면서, 새해를 맞아 분주해야 할 거리의 얼굴이 적막하다. 영업시간 및 인원 제한이 풀리지 않아 애타는 자영업자들뿐만이 아니다. 새해 첫 주(1월3일)부터 백신 미접종자에 대한 시설 이용 및 출입 제한이 강화되면서, 사람들 발길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노란 통제선이 쳐진 듯하다. 시민들이 불편을 겪는 정도 수준의 상황을 벗어났다. 정부 당국의 방역 지침이 공동체 안전과 개인의 기본권 사이에서 아슬한 줄타기를 해 온 건 오래지만, 이번엔 정말 선을 넘었다.

결국 지난 해 마지막 날, 의사 등을 포함한 시민 1023명이 정부 당국을 상대로 집단 행정소송에 나섰다. “정부가 합리적인 이유 없이 백신 미접종자들을 차별해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국민으로서의 기본 권리를 과도하게 침해했다”며, 방역패스 조치를 잠정적으로 중단시켜달라는 집행정지 신청을 법원에 함께 제출했다. 이들은 “정부가 백신 미접종자에 대해 식당, 카페, 학원 등 사회생활 시설 전반에 대해 이용에 심대한 제약을 가하는 방식으로 사실상 백신의 접종을 강요하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강요라니. 우리나라의 백신 접종 완료율(2차 기준)은 83.0%(1.3 집계 기준)에 달하고, 18세 이상 성인의 비중으로만 보면 92.7%인데. 국민 대다수가 백신의 안전성과 필요성에 동의한 것 아닐까. 그런데 지난해 ‘청소년 방역패스’ 계획한다는 발표를 두고 반대하는 국민청원이 쇄도했다. 소수의 목소리가 아니다. 12~17세 백신 접종률은 지난해 12월 기준 63% 수준으로 92%를 넘어선 성인의 접종률과 30%p나 차이를 보였다. 숫자 속에 숨은 ‘나는 맞아도 내 자식은 모르겠다’는 마음의 소리는 백신 접종에 대한 이른바 ‘국민적 동의’가, 드러난 것과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한다. 모두가 백신 접종을 자발적으로 선택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 방역패스(접종증명·음성확인제)에도 6개월 유효기간이 적용된 1월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음식점에서 한 미접종 시민이 QR 체크인을 하고 있다. 만약 QR코드 주위에 파란색 테두리나 접종 후 경과일이 보이지 않는 경우에는 전자출입명부 앱을 최신 버전으로 업데이트해야 한다. 접종정보를 갱신하지 않은 3차 접종자는 QR코드를 스캔할 때 미접종자로 안내돼 시설 이용이 어려워질 수 있다. ⓒ 연합뉴스
▲ 방역패스(접종증명·음성확인제)에도 6개월 유효기간이 적용된 1월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음식점에서 한 미접종 시민이 QR 체크인을 하고 있다. 만약 QR코드 주위에 파란색 테두리나 접종 후 경과일이 보이지 않는 경우에는 전자출입명부 앱을 최신 버전으로 업데이트해야 한다. 접종정보를 갱신하지 않은 3차 접종자는 QR코드를 스캔할 때 미접종자로 안내돼 시설 이용이 어려워질 수 있다. ⓒ 연합뉴스

좋든 싫든 일단 백신을 맞는 분위기 속에서 그래도 접종하지 않기로 결정한 사람들은 죄인이 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는 묵시적 낙인이었는데, 이번에 정부가 나서 쐐기를 박았다. 하지만 건강상 치명적인 이유가 있든, 그건 아니지만 부작용이 걱정돼서든 백신을 맞지 않는 선택은 실은 존중받아야 한다. ‘민폐가 되지 않기 위해’, ‘제약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백신의 효용과 부작용 양쪽 정보를 종합해 무게를 달아보고, 자신의 건강과 주변 공동체를 고려해 자발적으로 접종을 선택하는 결과여야 온당하다. 

하지만 이렇게 당연한 의사결정 과정이 우리에게는 남 일이다. OECD 꼴찌 수준 공공 의료 인프라로 이 정도 방역 수준을 유지하려면 ‘백신’ 밖에는 답이 없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대응에 중추 역할을 해온 지역 공공병원(지방의료원) 비율은 전체 의료 인프라의 3.78%, 이를 포함한 총 공공병상 규모는 9.7%에 불과하다. 사설 의료 시설 기반으로 운영되는 미국과 일본의 경우 공공병상 비율이 25~30% 수준인데, 이 정도만 돼도 미접종자에 대한 ‘제한’이 아니라, 접종자에 대해 공공시설 이용료를 할인해 주는 등 ‘인센티브’를 제공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긴다.

누가 누구에게 ‘패스(Pass)’를 준다는 건지, 방역 ‘패스’라는 말이 나는 좀 우습다. 정부는 지난 2년 동안 공공병상 확충에 실패했다. 그 대가로 자영업자로 대표되는 시민들이 공동체를 위해 모든 걸 양보해왔다. 생계를 뒤로하고, 부작용을 무릅쓰고 ‘K-방역’ 신화에 성실히 일조하며 그동안 희생된 일상과 행복은 다 나열하기도 힘들다. 시민들에게 송구함에 고개를 떨궈도 모자란데, 손을 벌리다 못해 이번에는 ‘딩동’ 소리가 나는 매를 들겠단다. 이 빚을 어떻게 다 갚으려는지 내 눈앞이 캄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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