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문 대주주가 된 호반건설이 서울신문 지면에서도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호반그룹이나 창업주인 김상열 회장 관련 미담을 전하는 서울신문 기사가 인수 이전에 비해 크게 늘었다. 서울신문 광고면에도 호반건설이 꾸준히 등장한다. 서울신문 사옥을 활용한 사업에도 전방위로 손을 뻗치고 있다.

서울신문 우리사주조합이 호반그룹과 지분매매 본계약을 맺은 지난 10월8일부터 12월28일 현재까지 서울신문이 지면과 온라인에 보도한 호반그룹 관련 동정 또는 홍보성 기사는 총 14건으로 나타났다. 서울신문은 지난해부터 지난 10월8일까지 지면에 호반건설 관련 동정 기사를 1건도 내지 않았던 신문이었다.

관련 기사내용은 호반건설이 내놓은 주택 청약 소식부터 창업주와 그룹의 수상 소식까지 다양하다. 지난달 25일엔 호반그룹이 ESG 확산과 창업활성화를 지원하는 ‘자상한 기업’에 뽑혔다는 소식을 지면에 실었는데 이는 전국 단위 종합일간지 가운데 유일했다. 호반건설이 스타트업의 고민을 해결하는 ESG 사업수행자로 선정됐다고 밝힌 보도(11월11일 21면)나 호반장학재단이 2억 원의 장학금을 전달했다는 보도(11월15일)도 마찬가지다. 이들 보도는 경제나 인물 면에 배치됐다.

▲지난 11월25일 서울신문 21면
▲지난 11월25일 서울신문 21면
▲지난 11월11일 서울신문 21면
▲지난 11월11일 서울신문 21면

다른 언론사들이 보도한 이슈에는 더 큰 지면과 분량을 할애했다. 세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가 김상열 서울신문 회장(당시 호반장학재단 이사장)이 베트남 우호훈장을 받은 사실을 1~2문장의 동정 기사로 전한 데 비해 서울신문은 세 문단에 걸쳐 기사화하는 식이다.

▲지난 11월19일 김상열 현 서울신문 회장의 베트남 우호훈장 수여 소식을 별도 기사로 전한 언론사 보도 갈무리. 서울신문이 가장 큰 지면을 할애해 이 소식을 보도했다.
▲지난 11월19일 김상열 현 서울신문 회장의 베트남 우호훈장 수여 소식을 별도 기사로 전한 언론사 보도 갈무리. 서울신문이 가장 큰 지면을 할애해 이 소식을 보도했다.

호반건설이 참여한다는 부동산 첫 사전청약 관련 기사도 서울신문만 두 차례 지면에 보도했다. “민간 아파트 첫 사전청약…오산세교·평택고덕 등 2528가구”(11월30일)와 “1인 가구·아이 없는 신혼부부도 기회! 4억원대 수도권 아파트 청약해 볼까”(12월6일)다. 호반건설은 이번 민간주택 첫 사전청약에서 평택고덕에 633가구를 공급했다.

▲호반건설이 참여한다는 부동산 관련 기사도 서울신문만 두 차례 지면에 보도했다. 호반건설은 이번 민간주택 첫 사전청약에서 평택고덕에 633가구를 공급했다.
▲호반건설이 참여한다는 부동산 관련 기사도 서울신문만 두 차례 지면에 보도했다. 호반건설은 이번 민간주택 첫 사전청약에서 평택고덕에 633가구를 공급했다.

이 같은 지면 변화는 서울신문 구성원들에게도 낯설다. 서울신문 구성원 A씨는 “서울신문은 100년 이상 개인 사주 없이 이어져 온 조직이다. 대주주 동정을 전하는 기사를 내기 시작한 지면을 보게 됐다”며 “(대주주 관련 보도를) 꼭 써야 하는지,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 인상이 찌푸려지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이는 호반건설과 대주주 협상 당시 서울신문 구성원(우리사주조합)에 편집권 독립을 약속했다는 점에서 우려되는 대목이다. A씨는 “언론사의 편집권은 건드리지 않겠다는 것이 호반건설의 약속이었다”며 “기업이 언론사의 권력을 잡게 됐을 때 언론을 사유화할 것인가를 가르는 중요한 문제다. 기업으로선 굉장한 유혹일 것이고, 호반은 처음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라고 했다.

그러나 대다수 구성원들은 대주주 관련 보도가 늘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다는 분위기다. 언론사 내에 ‘체념’의 분위기가 더 크다는 것이다. 구성원 B씨는 “서울신문이 호반에 넘어갈 때 다 예상했던 그림”이라며 “서울신문 매각에 맞서다 결국 이 같은 결과가 나오다 보니 문제 제기할 동력은 많이 없어진 것 같다”고 했다. 구성원 C씨는 “아직 적극적인 문제 제기가 나오진 않았지만 지켜보자는 분위기다. 보도 수위가 더 심각해지면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광고란에도 호반이 등장하는 빈도가 늘었다. 서울신문 1면 오른쪽상단 배너광고에는 지난 1일부터 호반그룹과 계열사 광고가 하루도 빠짐없이 게재되고 있다. 호반건설은 지난 3일부터 화성동탄의 호반써밋 입주자 모집을 공고하는 전면 광고를 서울신문에만 배치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서울신문 사측 관계자는 “광고를 통한 정식 지원이다. 호반이 서울신문에 투자를 약속했는데 법적으로 가능한 지원 방법이 광고와 사업 지원 정도”라고 전했다.

▲지난 1일부터 28일까지 서울신문 1면 오른쪽 상단 배너광고 갈무리. 삼성금거래소와 대아청과는 호반그룹의 계열사다.
▲지난 1일부터 28일까지 서울신문 1면 오른쪽 상단에 게재된 호반 관련 배너광고 일부. 삼성금거래소와 대아청과주식회사는 호반그룹의 계열사다.

호반, 프레스센터 사옥 활용한 사업 확대도


김상열 회장은 지난 13일 서울신문 회장에 취임했다. 김 회장은 이로써 서울신문과 EBN, 전자신문이 속한 서울미디어홀딩스 회장이자 서울신문 등기이사인 회장을 겸직하게 됐다. 서울신문은 이달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의 기존 서울신문 사장실을 회장실로 바꿔 김 회장이 매주 목요일 출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곽태헌 서울신문 사장은 과거 부사장실을 사장실로 쓰고 있다.

서울신문 관계자는 “회장 직책엔 실제 권한보다는 책임에 무게를 뒀다”며 “정말 중요한 사안만 회장이 들여다보고 책임 경영에 방점을 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사장이 업무를 95% 이상 보고 투자 여부 등 큰 결정만 회장이 할 것”이라며 ‘출근하는 대주주의 입김’에 대한 우려에 해명했다.

서울신문은 호반그룹 법인과 전시 사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서울신문 관계자에 따르면 서울신문은 프레스센터 1층을 리모델링 해 ‘서울갤러리’를 운영할 예정이다. 태성문화재단으로부터 전시용 그림을 공급받기로 했다. 태성문화재단은 호반건설의 주요 주주로, 이사장인 우현희씨는 김상열 회장의 배우자이면서 그 역시 호반건설 주요 주주다. 앞서 서울신문은 2019년 7월 특별취재팀 바이라인으로 ‘태성문화재단, 미술사업엔 인색…그룹 사옥 막대한 임대수익 챙겨’란 제목의 단독기사를 내기도 했었다.

▲지난 2019년 7월17일 서울신문의 호반그룹 검증 기획보도 일부
▲지난 2019년 7월17일 서울신문의 호반그룹 검증 기획보도 일부

서울신문은 이달 중순 프레스센터 1층에 있던 전국언론노동조합 서울신문지부와 독자서비스국 사무실을 비웠다. 리모델링을 거쳐 3월께부터 전시를 시작한다는 계획이다. 노조 사무실은 8층으로 옮겼다. 온라인 갤러리도 진행할 예정이다.

김상열 회장은 프레스센터 근처 호텔 인수도 검토하고 있다. 복수의 서울신문 구성원에 따르면 김 회장은 지난 10월 서울신문 편집국에 처음 방문한 자리에서 프레스센터 곁에 위치한 뉴국제호텔이 매물로 나온다는 얘기를 들은 뒤 매입할 것을 지시했다고 한다. 서울신문 관계자는 “매물로 올라오면 검토하겠다는 뜻으로 미정이다”라고 했다.

한편 서울신문 관계자는 “성과 상여금을 올해 말일 기본급의 200% 지급하는 내용의 올해 임금 협상안을 노조와 협의 중”이라고 강조했다. 또 “호반이 서울신문에 공약한 바에 따라 내년 임금을 10% 올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올해엔 기본급을 인상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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