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4일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를 특별사면했다. 국민 통합이라는 대의, 박 전 대통령의 건강 상태 등을 고려했다고 밝혔으나 시민사회에서는 비판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25일 여러 아침신문이 국민 공감대와 원칙을 모두 거스른 사면이라고 사설을 내 비판했다. 조선일보 등 몇몇 보수신문은 박근혜씨 사면이 “국민통합”을 위한 것이라면서도 한명숙 전 총리 특사와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의 가석방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박근혜씨는 국정농단과 특수 활동비 상납 등의 혐의로 징역 20년과 벌금 180억원을 확정 받고 4년8개월째 수감 중이었다. 정부의 특별사면과 복권으로 박씨는 잔형 면제뿐 아니라 수백억원의 벌금과 추징금 납부 부담도 덜게 됐다. 박씨는 대법원 확정 판결 뒤 벌금과 추징금을 납부하지 않아 검찰이 강제 추징에 나섰던 터다. 특별사면으로 박씨는 강제추징 뒤 남은 벌금 150억원을 내지 않아도 된다.

▲25일 토요일에 발행하는 아침신문 갈무리
▲25일 토요일에 발행하는 아침신문 갈무리
▲25일 경향신문 1면 머리기사
▲25일 경향신문 1면 머리기사

경향신문은 28일 1면 머리기사 “촛불정부, 박근혜를 사면하다”에서 “대선을 70여일 앞두고 문 대통령이 국민 공감대 없는 원칙 없는 사면을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헌정질서를 파괴한 전직 대통령 사면은 대통령이 독단적으로 결정할 일이 아니다”라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논평과 “사회적 통합과 거리가 멀고,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 고려에 따른 사면”이라는 참여연대 입장을 전했다.

사설에선 “문 대통령은 사면과 관련해 스스로 견지해온 원칙을 허물었다”며 “문 대통령은 부패범죄 정치인이나 5대 중대범죄 사범의 사면을 원칙적으로 배제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올해 초 박씨 사면 논쟁이 제기됐을 때도 ‘국민 공감대 형성’을 사면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했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더욱이 박씨는 국정농단과 정경유착으로 대통령으로서 초유의 탄핵을 당하고도, 지금까지 국민에게 제대로 사과한 적이 없다. 재판 절차도 의도적으로 거부했으며, 복역 중에 보수야당의 총선 승리를 응원하는 정치적 행위를 하기도 했다”고 했다.

▲25일 경향신문 사설
▲25일 경향신문 사설

한겨레도 사설에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이번 사면은 결코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부패 범죄 사범에 대해선 사면권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문 대통령 스스로 허물었을 뿐 아니라, 사면 취지로 내건 국민 통합도 기대하기 어렵”다고 했다.

한겨레는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 뇌물·알선수재·알선수뢰·배임·횡령을 5대 중대 부패범죄로 규정하고 여기 해당하는 범죄자는 사면권을 제한하겠다고 공약했다”며 “뇌물과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징역 22년을 선고받고 5년째 수감 생활을 이어온 박 전 대통령은 사면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했다.

▲25일 한겨레 사설
▲25일 한겨레 사설

이어 “사면이 ‘국민 통합’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도 의문이다. 우리 국민은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 사면이 통합은커녕 더 큰 분열과 갈등의 씨앗으로 작용했던 사실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사면의 시점도 문제”라며 “대통령 선거일을 75일 앞두고 이뤄진 박 전 대통령 사면이 선거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믿을 국민이 몇이나 되겠는가”라고 했다.

▲25일 한겨레 3면
▲25일 한겨레 3면

국민일보는 사설에서 “문 대통령이 공약한 ‘절제된 사면’ 원칙이 훼손됐고, 억지로 균형을 맞춘 정치적 고려에 통합의 가치가 훼손됐다는 비난은 피하기 어렵다”며 “특사가 발표되자마자 진보·보수 진영 모두에서 쏟아진 비난을 보면 기대했던 화해와 통합이 실제로 이뤄질지 의문”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결국 ‘사면권 최소화’와 ‘5대 중대 부패범죄 사면권 제한’ 공약을 깨뜨렸다”고도 했다.

국민일보는 그러면서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의 가석방은 ‘박 전 대통령과의 형평성’ ‘가석방 요건 미달’ 등의 이유로 양측 모두가 거세게 반발했다. 게다가 대법관 전원이 유죄라고 했는데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던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복권은 사법 체계에 대한 신뢰를 근본적으로 무너뜨릴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실상 이 전 의원은 형기의 85% 이상을 채운 상태로 법무부 내부 요건인 ‘60% 이상 복역’을 충족했다.

▲25일 국민일보 사설
▲25일 국민일보 사설

반면 다수 보수신문들은 사면을 긍정 평가하는 사설을 냈다. 동아일보는 “박 전 대통령에겐 헌정 사상 초유의 ‘탄핵 대통령’이라는 정치적 낙인이 찍혀 있다. 그 자체로도 국정농단 사건의 역사적 책임은 감당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동아일보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가석방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면을 결정하지 않은 데 “유감”이자 “아쉽다”고 했다. “국민통합과 미래, 국격을 생각했다면 (두 전직 대통령) ‘일괄 사면’이 더 바람직”하며 “삼성의 글로벌 경영에 장애요인이 되는 족쇄를 굳이 채워놓아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25일 조선일보 사설
▲25일 조선일보 사설

조선일보는 “국민 통합을 위한 대통령의 결단은 평가해야” 한다면서도 “사면 배경에 의구심이 드는 측면도 있다”며 “(문 대통령이 사면에 부정 입장을 밝혔던) 그때와 지금 달라진 사정은 대선이 75일 앞으로 다가왔고 박 전 대통령 수사를 지휘했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야당 대선 후보로 출마했다는 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형 집행이 끝난 한명숙 전 총리 복권과 이 전 의원 가석방, 시민사회단체 활동가의 사면을 들면서 “한명숙, 이석기, 시위 사범 등 정권 편 사람들을 무더기로 풀어주기 위해 박 전 대통령 사면을 끼워 넣은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고 주장했다. 이 전 대통령이 특사에 포함되지 않은 데에는 “굳이 이 전 대통령을 제외한 처사에 야박하다는 느낌을 갖는 국민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한국일보는 사설에서 “국민화합과 통합 차원의 대통령 결단을 존중하지 않을 수 없다”며 “대선을 앞두고 중도보수 표심을 겨냥해 특사 카드를 꺼냈다는 보수 야당의 주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했다. 이어 “MB 사면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는 아직 무르익지 않았다”고 했다. 한국은 “(박씨가) 31일 특사로 풀려나는 순간 국정농단 범죄에 분노하고 좌절했던 국민 앞에 사죄해야 한다”고 했다.

▲25일 한국일보 사설
▲25일 한국일보 사설

한국일보는 한 전 총리 복권과 이 전 의원 가석방에는 “일각에서는 문 대통령이 임기 말 ‘친노대모’인 한 전 총리를 구하기 위해 박 전 대통령을 사면 대상에 끼워넣은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지만 가당치 않은 주장”이라며 “형기의 85%를 채워 가석방 기준을 충족한 이 전 의원을 포함, 국민통합 차원의 사면ㆍ복권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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