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적 독백’이란 게 있다. 유아에게서 발견되는 특징인데, 말 그대로 각자 자기 얘기만 내뱉을 뿐 대화가 성립하지 않는 상황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난 6살이야”라는 한 아이 말에 아이들은 “나는 엄마가 정말 좋아”라는 식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말로 응대한다.

이런 현상은 유아의 사고가 타인의 관점을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대화를 타인과 함께 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그저 자기 마음을 해소하는 용도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런 유아기적 특징은 성인에게서 나타나기도 한다. 불특정 다수가 모인 단톡방이라든지 인터넷 게시글과 댓글에서도 이런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발달심리학 용어를 꺼낸 이유는, 이 용어가 지금 우리 언론 모습을 잘 설명하는 단어이기도 해서다. 집단적 독백의 가장 큰 특징이 ‘자신의 정신구조를 반복해 사용하려는 경향’인데, 이는 우리 언론이 가장 잘하는 것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우리 언론의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는 ‘정파성’ 같은 것 말이다. 정치 환경이 어떻든, 실제 사실 정보가 어떻든, 언론은 맥락 정보를 무시하고 그들 자신의 정치적 성향과 프레임에 맞춰 보도를 쏟아낸다.

물론 이념적 지향을 가지는 것까지는 문제가 아닐 수 있다. 다만 그 이념적 지향에 맞춰 팩트를 취사선택하고, 별 것 없는 말을 크게 부풀리고, 때론 잘못된 정보까지 전달하는 건 문제다. 절대 바뀌지 않을 프레임과 자기 완결적인 이념에 기반한 보도는 현실 정보를 무시하고, 프레임과 맞지 않은 진실은 외면하게 할 가능성이 크다. 우리 사회에서 대화와 타협할 가능성을 차단하는 건 또 다른 부작용이다. 사회 여론을 형성하는 집단인 언론이 집단적 독백을 반복하면 우리 사회도 집단적 독백에 빠지기에 십상이다.

▲ 사진=gettyimagesbank
▲ 사진=gettyimagesbank

집단적 독백의 또 다른 특징이 있다. 바로 ‘타인의 관점에 무감하고 청자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이 역시 우리 언론의 오랜 특징이기도 하다. 그간 우리 언론에 독자는 고려 대상이 아녔다. 신문 지면과 방송에 정보를 죽 늘어놓기만 해도 알아서 찾아와 정보를 소비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던 탓이었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사람들은 굳이 언론사 홈페이지를 통하지 않고도 포털과 유튜브, 소셜미디어를 통해 정보를 접할 수 있게 됐다. 뉴스레터 ‘뉴닉’과 같이 독자와 대화하는 듯한 ‘쉬운 뉴스’가 널리 읽히는가 하면, 독자 취향과 관심 전문 분야를 고려한 매체들이 크게 늘었다. 독자를 생각하지 않고 쏟아낸 정보는 앞으로 점점 더 외면받을 테다.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다. 대선 보도가 쏟아지는 이때 ‘집단적 독백’이란 언론의 유아적 퇴행이 더 두드러질 수 있다. 언론은 독자와 청자를 생각지 않고 자신의 정신 구조를 그대로 답습한 보도를 쏟아낼 수 있다. 사회구성원의 정치 피로도를 생각지 않고, 자신이 편드는 정당의 의견을 그대로 전하거나 네거티브 공방에 뛰어드는 보도 말이다. 대선과 관련한 유튜브 등의 허위 정보를 어뷰징으로 전달하는 것 또한 독자를 조금만 생각했다면 절대 나올 수 없는 기사 유형이지만, 실제로 그러한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기도 하다.

여러 이해관계를 반영하고 사회의 타협과 성숙한 판단을 끌어내는 게 언론 역할이건만 아직 우리 언론은 유아기의 발달 단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성숙한 판단이 요구되는 민주주의의 꽃, 대통령 선거가 코앞이다. 이 정치의 계절에 핵심적 역할을 해야 할 우리 언론이 성숙한 대화의 장을 이끌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할 수 있게 되길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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