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청 출입기자단 1진 기자들 사이에 최근 때아닌 격한 토론과 투표가 벌어졌다. 보도 관련 문제가 아니라 시청 내 기자실에 설치됐던 ‘크리스마스 트리’를 두고서다. 어떻게 된 일일까.

취재에 따르면 지난 8일 오후 3시께 서울시 출입기자단 1진이 모인 SNS에 한 문제 제기가 올라왔다. 헤럴드경제의 A 기자는 “기자실 입구에 정성들여 만들어 놓은 트리가 왜 하루만에 사라졌느냐”며 “간사님 사라진 배경을 설명해 달라”고 물었다.

대변인실은 최근 기자실 안 입구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설치했다가, 일부 기자가 불편하다는 의견을 전해 이를 치웠던 참이다. 출입기자 대표 격인 ‘간사’를 맡은 내일신문 기자는 ‘대변인실에 확인한 결과 일부 건의가 있어 치웠다’는 답변을 전했다.

그러자 해당 기자는 “두루뭉술 넘어가지 마시고 ‘기사 쓰듯’ (설명) 부탁한다”고 했다. “반짝이는 불 보면서 한해를 보내는 아쉬움과 새해를 맞이하는 마음가짐도 하고 특히 올해 기자실에 얼마 못 나왔었구나 하는 생각도 하게 만든다”며 “돈 들여 만든 것이 하루 만에 사라진 이유가 있을 텐데 제대로 된 설명 부탁 또 부탁한다”는 것이다. 다른 기자들도 “예뻤는데 안 그래도 의아했다” “트리 좋았다” 등 반응을 보였다.

▲크리스마스 트리. 사진=unsplash
▲크리스마스 트리. 사진=unsplash

이에 약 2시간 뒤 불교방송(BBS)의 B 기자가 “불편함을 호소했던 기자로서 몇 자 적는다”고 답했다. B 기자는 “대변인실이 기자단 동의 없이 임의로 설치한 뒤 종교편향 등 착오라고 판단해 철거한 만큼 기자단 논의 대상이 아니라고 본다”고 했다. 이 기자는 “관공서 내에 그것도 기자실 내에 동의 없이 국민의 세금으로 특정종교 상징물을 설치해 차별을 유발하고 불편을 유발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A 기자는 “간사단을 폼으로 구성하는 것이 아니다”고 맞받았다. A 기자는 “독단적 행위를 한 데에 용납이 안 된다”며 “민주주의고 여론이 있는 것이다. 나는 설치를 원하는데 그럼 대변인실을 어떻게 하느냐”고 했다. 이 기자는 “나도 절에 다닌다”며 “트리는 이제 종교보다는 연말을 상징한다”고도 주장했다.

이에 당초 “왜 없앤 건지 좀 납득이 안 간다”고 의견을 냈던 기자는 “아쉽긴 하지만 한 명이라도 불편함을 느끼거나 차별을 느꼈다면 그건 이해하고 수용하는 게 맞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의견을 낸다”고 했다. 다른 기자도 “불편하신 분이 한 분이라도 있다면 트리 하나 없어도 아무 문제 없다”고 했다.

톡방에서 난데없이 일어난 해명 요구와 열띤 토론에 “(간사가) 설명 자료를 내셔야겠다”는 자조 섞인 반응이 나왔다.

▲서울시청. 사진=노컷뉴스
▲서울시청. 사진=노컷뉴스

A 기자는 “내일 바로 원위치 시켜 놓으시기 바란다”고 말한 뒤 “제 의견이 맘에 안 드시면 총회 소집을 요구한다”고 했다. 이에 B 기자는 “대변인실에 불편을 호소한 것이 총회 소집 대상인가”라고 물었다. A 기자는 “뒤에서 장난질 치는 행위는 근절돼야 한다” “서울광장에 있는 트리 먼저 철거하라”고 말하는 등 격한 표현이 나왔다.

결국 기자단은 온라인 투표로 사안을 결정하기로 했다. 간사는 9일 오전 8시30분께 톡방에 ‘기자실 내 트리 설치 건’으로 찬반 투표란을 올렸다. 이에 한 기자는 “투표를 한다는 것 자체가 뉴스거리 같다”며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낮 2시께 트리를 유지하자는 의견이 우세한 결과가 나오자 간사는 절충안을 제시했다. 양쪽 의견을 모두 존중해 트리를 기자실 밖 2층 로비에 내놓자는 것이다. 이에 다수 기자들이 찬성해 ‘기자단 트리 토론’은 일단락됐다. 간사는 “투표로 밀어붙일 일은 아니고, 달리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말하지 않는 다수 기자들 의견을 확인하는 방법으로 강구한 것”이라고 투표 취지를 설명했다.

B 기자는 “묻지마 군홧발로 잔뜩 짓밟고 ‘이거라도 (가져가라)’군요. 안타깝다. 왜 차별금지법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는지 실감한다”고 마지막 의견을 남겼다.

보도와 무관한 사안으로 격한 토론과 총회 소집 요구, 투표까지 이른 웃지 못할 상황에 8일 오후 언론계엔 ‘받은 글’ 형식의 ‘지라시’가 돌았다.

이 ‘지라시’를 접한 서울시 공무원들은 한심하다는 반응이다. 한 서울시 공무원은 “지금 코로나19 시국에…웃기다. 하지만 뭐라고 말하기 힘들다”고 평했다.  공보 업무 경험이 있다는 한 공무원은 이 같은 해프닝에 “어처구니가 없다”고 말했다. 

서울시 기자단 소속 한 기자는 “이것으로 투표를 한다는 것 자체가 조금 창피하고 부끄러운 일”이라며 “이 사실이 알려지지 않는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A 기자는 미디어오늘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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