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다는 목소리가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외환위기 직후 재벌그룹 한화와 분리, 사원주주제로 전환하고 편집권 독립의 상징적 제도로 평가받던 편집국장 직선제를 채택하는 등 독립언론으로 기대를 모았던 경향신문이 지난해 재벌그룹 출신을 사장으로 영입하고 편집국장 직선제를 폐지해 파문을 일으켰다. 더욱 큰 문제는 이후 지면 곳곳에서 보수적 논조들이 발견됨으로써 “보통사람들을 위한 깨어있는 신문”이라는 경향의 편집방침이 바뀌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민언련 신문모니터위원회는 경향신문의 정치·경제·사회·통일분야의 보도를 분석함으로써 경향의 현재 위치를 알아보고자 한다. 
       
차이나쇼크, 미국 금리인상, 유가인상 등 해외 3대 악재로 증폭된 경제위기론이 식을 줄 모르고 있다. 중앙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들은 이를 기회로 위기론을 확대재생산하며 개혁이 경제를 발목잡고 있다고 주장, 재벌규제 해제와 개혁조치 후퇴를 소리높여 외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국내경제연구소는 3대 악재 중 유가인상을 제외하면 장기적으로 긍정적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분석하고 있으며 S&P와 많은 전문가들은 오히려 경제구조 개혁을 가속화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경향신문의 경우 보수언론처럼 위기상황을 부각시키지는 않았으나 몇몇 기사에서 ‘위기’를 강조하는 태도를 확인할 수 있다. 아울러 한편에서는 경제개혁을 요구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규제 해소가 가장 시급하다고 주장하는 등 기업들의 요구를 중점적으로 대변해 문제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진단과 해법 모두 ‘오락가락’

현재의 경제상황이 어렵다는 점에 이견을 다는 사람은 없으나 그 위기의 정도에 대한 판단이나 해법에서는 다양한 시각이 존재한다. 따라서 언론은 일관된 방향성 속에서 원인을 진단하고 대안을 마련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경향은 진단과 해법에서 모두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여 독자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경향은 5월10일과 11일, <안이한 낙관론 경제위기 부른다> <경제위기 제대로 느끼고 있는가>라는 사설을 통해 3차 오일쇼크 가능성 등을 거론하며 “이러다가 또다시 어떻게 되는 것은 아닌가 자꾸 가슴을 쓸어내리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1일자 분석기사에서는 ‘지나친 공황심리가 더 악재’라고 주장했다. 6월 7일자 <경제위기론 관전법>이라는 칼럼에서 ‘경제위기론은 소모적일 뿐’이라고 주장했던 경향은 6월21일자 사설에서는 “아무리 민간기업과 언론에서 위기론을 강조해도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상황진단에서 혼란스러운 태도를 보였던 경향은 해법에서도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는가하면 기업의 입장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지나치게 친기업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기업에 초점 맞춘 대안

경향은 <증시 체질개선 시급하다>(5월12일자)를 비롯한 사설과 외부 칼럼을 통해 정부의 개혁정책에 대한 지지 입장을 밝혔다. 특히 5월17일자 사설에서는 “기득권 세력은 지금 회계 투명성, 출자총액 제한등 시장의 요구에 강력히 도전하고 있다…그 모든 도전을 물리치고 실천하느냐 문제는 여기에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사설 <경제정책 혼선만은 피해야>(5월8일자)에서는 대기업들이 적대적 기업합병에 노출되어 있다며 출자총액제한, 계좌추적권 재도입 등에 대해 “가능한 범위에서 완급 조정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후의 기획기사와 사설에서도 기업에 대한 규제해제를 요구하는 모습이 지속적으로 나타나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어렵게 했다.    

아울러 경향은 가장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서민과 중소기업을 위한 대안 마련에는 소홀하면서 정부의 낙관론만을 비판하고, 재계와 보수언론이 부각ㆍ강조하는 ‘위기론’에 대해서는 경계하지 않은 점 또한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현금을 쌓아놓고도 투자를 하지 않는 기업에 대해서도 책임을 묻지 않아 투자부진의 원인이 정부의 탓인 것만 같은 인상을 주는 등 결과적으로 기업의 입장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면치 못했다.

정리 / 민언련 신문모니터위원회 김규남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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