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북한에서 발생한 룡천역 열차폭발 사고에 대한 조선일보 보도를 읽고 MBC <시사매거진2580>의 송요훈 기자가 <짜증나는 말 바꾸기>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해왔다.

4월 22일 오후 북한의 평안북도 용천역에서 열차가 폭발하는 대형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지점 반경 수백 미터가 폐허로 변했고 인명 피해, 재산 피해도 엄청났다. 전 세계가 북한의 참사에 인도적 관심을 보였고 구호 지원활동이 이어졌다.

   
▲ 조선일보 4월24일자
평소 '색깔' 좋아하는 조선일보의 기사를 보자. 제목은 <북 열차 참사 피해자도 우리 이웃이다>.

"미-중, 그들은 북한과는 남이다. 그러나 우리는 한민족이다. 북한정부가 손을 내밀기를 기다리기에 앞서 우리가 먼저 그들에게 달려가야 한다. (중략) 지금 상황은 너무나 급박하다. 실무적으로 남북간 지원 문제가 그리 간단하지는 않을 지 모른다. 그러나 그동안 햇볕정책을 통해 남북같에 생긴 믿음을 통해 우리 정부는 보다 신속하게 북한 이웃을 도울 길을 뚫어야 한다. (중략) 용천의 '우리이웃'을 돕기 위해 나서자. 내일이면 늦는다. 용천 사고 피해자는 바로 우리 부모, 형제, 자식들이다."(조선 4/24, 진성호 기자)

이 기사를 보고 나는 한동안 뜨악했다. 그리고 잠시 후에 신문 제호를 살폈다. 혹시 '한겨레'가 아닐까 하고. 그런데 '조선일보'가 맞다. '뜨악'했던 기분이 갑자기 '짜증'으로 변한다. 조선일보가 언제 이렇게 북한에 대해 '살가운' 기사를 쓴 적이 있었던가. 언제 이렇게 '뜨거운 가슴'으로 북한을 돕자고 '절박한 호소'를 한 적이 있었던가. 평소 기자라는 직업을 '지사(志士)'에 비유하기를 좋아하는 보수적이고 고리타분한 나의 뇌수를 뚫고 '변절'이라는 단어가 스쳐 지나간다.

그러나 아직 조선일보의 '변절'을 슬퍼하기에는 이르다. 다음 날 <월간 조선> 조갑제 편집장이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보자.

"북한 용천역에서 발생한 폭발사고로 적어도 수백명이 죽었는데도 북한 내부 언론에서는 일체 보도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중략) 하늘은 스스로 돕는 사람들만 도와주라고 명령하고 있다. 스스로 도와야 할 사람은 북한사람들이다. 또 다시 우리의 금품을 받아달라고 북한측에 뇌물을 바치는 정신병적인 상황, 그렇게 하는 것이 이웃돕기라고 자위하는 도착증세가 있어서는 안되겠다. (중략) 폭발사고를 숨기는 집단에게 어떻게 동포애를 쏟아부을 수 있을 것인가."

조갑제가 이 글을 쓸 때까지 알려진 폭발사고 사망자는 154명이었다. 사망자는 '수백명'으로 부풀리면서도 북한의 언론은 '일체 보도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라고 인용하는 조갑제의 시각대로라면 북한 돕기가 '내일이면 늦는다'는 후배기자 진성호는 '정신병적인 상황'에 놓여 있고 '도착증세'를 보이고 있다.

북한당국이 폭발사고 소식을 북한사람들에게 먼저 알리기 전에는 도와주지 말라는 조갑제가 편집장으로 있는 <월간 조선> 5월호에는 이런 기사가 실렸다.

제목은 <밀착 취재기. '한나라당의 잔다르크' 박근혜의 차가운 권력의지>. 부제는 '차분한 권력의지, 든든한 후광, 정확한 언어와 예의바름, 깔끔한 용모가 어울려 많은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아간 현장의 이야기'이다. 탄핵 후폭풍으로 침몰 위기를 맞은 한나라당의 당 대표가 되어 4.15 총선까지 '차선무시, 신호무시'를 해가며 전국을 누빈 박 대표를 '23박 24일'간 밀착취재했다는 조선일보 정치부 윤정호 기자의 글을 모두 소개할 수는 없다. 대신 <월간 조선>이 요약해 놓은 내용을 그래로 옮긴다.

▶4월 15일 저녁 120석 확인을 하고 집으로 가면서 박근혜 대표는 "이제부터 잘해야 다음 번에 승리하죠"라고 했다.
▶울산에서 시작해 대구 경북을 거쳐 부산으로 내려갔던 '박풍'은 추풍령을 넘어 전멸 상태였던 수도권까지 살려냈다.
▶경제가 급성장하고, 살림은 늘고, 일자리가 풍부해 미래에 대한 낙관이 팽배했던 '박정희 시대'에 대한 향수, 박근혜의 정치개혁을 위한 일관된 노력, 지도자로서의 품성이 '박풍'을 불러 일으켰다.
▶첫 지방 방문지 광주에서 '거여 견제론'을 제기, 탄핵 심판론에 쐐기 박다."

더 이상 거론하지 않고 이 내용만 봐도 조선일보 자매지인 <월간 조선>이, 편집장이 조갑제가 박근혜 대표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충분히 알 수 있다.

중앙일보 자매지인 <월간 중앙> 5월호에도 박근혜 대표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박근혜, 검증은 이제부터다'라는 제목으로 실린 <월간 중앙>의 기사를 지면에 있는 그대로 요약하면 이렇다.

"총선이라는 연극이 끝나고 우리는 박근혜라는 새로운 배우를 얻게 되었다. 분명 신인이지만 신인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도 노련하다. 그가 받은 가학(家學)은 한국 역사상 유일무이한 최고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최고의 경제 발전과 최악의 권모술수, 그는 사실 비정의 사원에서 길러진 우리 시대 최고의 정치인일지도 모른다."

만일 누군가 나에게 박근혜 대표에 대해 말하라고 하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 박근혜 대표는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한나라당이 생존을 위해 선택한 '마지막 카드'였다. 대표가 된 그는 한나라당의 부패한 과거를 인정했다. 그리고 용서를 빌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며. 그가 처음으로 영입한 사람은 서울대 교수 출신인 박세일 선대본부장이다. 그런 박세일의 첫 일성은 "가족과 친구만 빼고 다 바꾸자였다." 나는 그 두 사람을 믿었다. 뭔가 할 줄 알았다. 적어도 정형근이나 김용갑, 홍준표는 한나라당에서 퇴출시킬 줄 알았다. 그러나 박근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버지 고향에 가서 옛 '향수'를 자극했고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결과적으로 조금씩 사그라들던 '지역주의'에 바람을 불어넣었다. 그 덕에 정형근, 김용갑, 홍준표는 살아났다. 그래서 나는 박근혜가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렸다고 생각한다."

나는 <월간 중앙>의 기사는 나름대로 음미해볼 게 있다고 본다. 그러나 <월간 조선>의 기사는 초등학생 수준도 안되는 '3류 위인전'이다. '기자'라는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도저히 쓸 수 없는 것이다. 나는 그 기사를 읽으면서 글쓴이에 대해, 특히 그가 기자라는 것에 치밀어 오르는 '구역질'을 참을 수 없다.

조선일보 경영기획실의 이한우 기자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경영기획실' 기자로서 인터뷰했다는 것은 비록 그의 직급이 낮다 하더라도 '조선일보의 공식적인 입장'을 말한 것이나 다름없다.

▶조선일보가 (17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을 도운 것은 사실 아닌가?
한나라당 편드는 것이 아니다. 조선일보와 가치가 비슷해 유사한 주장을 하는 정도다. (시사저널 4/29일자)

박근혜 대표는 '차떼기 정당'이라는 오명이 붙은 한나라당은 부패 정당이었으며 국민의 뜻을 거슬렀으며 잘못을 많이 했다며 참회하는 모습을 보이고 용서를 빌었다. 나는 그것이 진정한 참회였는 지는 모른다. 나는 묻고 싶다. 조선일보가 '한나라당과 가치가 비슷해 유사한 주장을 하는 정도'라는 게 무슨 의미인지, 그것이 조선일보의 과거와 관계가 있는 지. 혹 '가치'가 비슷해서 부패에 '둔감'했으며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옹색한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인지, 나는 정말 그게 궁금하다. 그것이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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