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

'라후족 한글 수출 TV쇼'의 이면
'라후족 한글 수출 TV쇼'의 이면
'동티모르 프로젝트 해프닝'으로 본 한글 이야기 (2)

'동티모르 한글 수출 프로젝트 해프닝'과 관련해 유리나 씨가 미디어오늘에 보내온 글 두 번째 편입니다. 이 연재는 3편까지 이어질 예정입니다.

유 씨는 서울대학교 독어교육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언어학과에서 음성학을 공부했으며, 2001년 MBC 한글날 특집 <한글, 라후마을로 가다> 제작을 위해 태국 북부 고산족 마을에서 라후한글문자를 가르친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주)대홍기획의 카피라이터로 일하고 있습니다. [편집자 주]

 
2001년 6월 22일, 저는 태국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그 당시 언어학과 대학원생이었던 저는 언어학과 교수님 중 한 분이 MBC측에 제안해서 성사된 한글날 기념 쇼에 출연을 하기로 되어 있었지요. 내용은 태국북부 산지에 흩어져 사는 소수민족 중 하나인 라후족 마을에서 라후어에 맞춰 변형한 한글문자를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
   
▲ 2001년 10월 9일 MBC 한글날 특집으로 방영된 <한글, 라후마을로 가다>는 당시 호평을 받으면서 방송위원회의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 상과 독립제작사협회 대상 등을 수상했다.

태국 북부는 산이 많은 고지대입니다. 이곳의 높은 산 속에는 '산족'이라 불리는 여러 소수민족들이 자기들 고유의 언어와 생활방식을 유지한 채 살고 있습니다. 이들 민족은 화전을 일구며 떠돌아다니던 사람들인데, 대개는 중국 운남성에서 유래했습니다. 중국 운남성 부근에서부터 인도차이나 반도 북부(나라로는 미얀마, 태국, 라오스, 베트남)까지, 이들 민족들은 고산지역에 마을 단위로 흩어져 삽니다.

그 중 태국땅에 사는 산족들은 대개 미얀마 쪽에 있다가 분쟁을 피해국경을 넘어온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대개 산벼를 중심으로 한 농사를 지어 먹고 살며 일부 마을은 그들의 독특한 생활방식이나 전통의상 등을 보고자 세계 각국에서 온 관광객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전통생활 방식을 보여주거나 전통의상 차림으로 사진을 찍어주고 대가를 받아 살아갑니다. 라후족도 그런 소수민족들 중 하나입니다.

대중의 구미를 좇는 '그릇된 조명'과 '카메라 연출' 

라후족은 한국의 방송 다큐멘터리에 종종 등장하는 산족입니다. 들어보신 분은 들어보셨을 라후족의 스토리는 이들이 고구려 유민의 후예들이 아닌가 하는 상상입니다. 대중의 구미에 워낙 잘 맞는 것이므로 잊을만 하면 한번씩 방송을 탑니다. 물론 실제로는 완전히 넌센스죠. 조금만 자료조사를 해 보고 라후 사람들을 만나 보면, 사실이 아닌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방송 프로그램에 편집되어 등장하는 것과 달리 이들의 문화와 언어, 생김새는 이들이 운남성 출신이며 남방 계열의 사람들임을 뚜렷이 나타냅니다. 고구려 기원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라후어에 대한 보고서 자체가 상당부분 거짓이라는 것은 언어조사를 하루만 해 봐도 알 수 있지요. 심지어 제 교수님이 저에게 주신 문자목록이 라후어에 맞지 않아 제가 문자목록을 수정해야 했지요.

방송을 제작하는 사람들도 그것을 압니다. 인문 다큐 제작경험이 풍부한 담당 피디는 라후족 샤먼의 제사도구가 운남성 지역의 것과 정확히 일치한다고 하더군요. 제작진 모두 고구려 기원설이 넌센스임을 알고 있었습니다만, "우리는 버마에서 전쟁을 피해서 30년 전에 이곳에 와 정착했다"는 마을 족장 할아버지의 말에 "우리는 눈 내리는 곳에서 왔다"는 거짓 더빙을 입히면서까지 제작을 강행했습니다.

외주 제작사였기 때문에 방송사에서 지정한 주제와 제작방침을 거스르기가 어려운 듯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외주 프로덕션은 '을'이거든요. 아무리 '갑'이 유리한 세상이라지만, 공익성을 생각해야 하는 방송 프로그램, 그 중에서도 다큐멘터리를 만들 때엔 뭔가 갑의 횡포를 막아줄 장치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방송 다큐를 액면 그대로 믿으니까요. 저는 또 저대로, 대학원생의 신분으로 교수님이 관계된 일에 함부로 제동을 걸고 나오기가 어려워 프로그램이 제작·방영되도록 가만히 있었지요. 제 인생에서 평생을 가장 크게 후회할 일입니다. 그 때 진실의 왜곡을 막을 수 있는 건 저 하나뿐이었을 텐데요.

걸어서 세 시간이면 미얀마와 태국의 국경이 나온다던 그 산꼭대기 마을에 한 달 보름을 살아 보면 이런 식으로 그들이 그릇된 조명을 받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불편한 일인지 알게 됩니다. 1편에서, 소수민족에게 한글을 전파하는 것의 정치적 위험성에 대해 기술했지요. 태국 땅에 살지만 국적도, 거주 이전의 자유도 없이 가난한 소수자로 사는 그들을, 명확한 근거도 없이 '한민족의 일부'라고 주장하는 것은 그것과 비슷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문서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그들의 역사를 마음대로 갖다 붙인다는 건 옳은 일이 아니죠.

이 내용이 이 글의 주요 논점은 아니므로, 이 정도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신뢰할 만한 참고서적 하나만 소개하죠. 강헌의 1994년 저서 <골든 트라이앵글>입니다.

단기간에 한글을 익힐 수 있었던 숨은 사정

라후어도, 대개의 소수 언어가 그렇듯이, 로마자 표기법이 있습니다. 라후족은 크리스트교 선교의 역사가 깊어 로마자 표기법이 안정적으로 정착돼 있고 로마자로 표기된 라후어 성서, 찬송가책, 사전, 라후어 교과서까지 상당 수준 보급돼 있는 상황입니다. 제가 갔던 마을도 기독교가 전파되어 상당수의 사람들이 로마자 표기를 알고 있었구요.

   
▲ 2001년 한글날 당시 한 언론의 관련보도
이러한 사정을 미리 알았으면 저는 그 프로그램에 발을 담그지 않았을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제가 제 스승인 교수님으로부터 들은 바는 그렇지 못하였으므로, 저는 대단히 의미있는 일을 하는 거라고 생각하며 제작진과 함께 산꼭대기에 올랐지요. 어쨌든 학교도 다녀본 적 없고 나와 말도 통하지 않는 그들이 과연 한 달여 동안 한글을 익힐 수 있을까.

프로그램이 만들어진 걸 보면 사람들이 글을 익혔겠죠? 사람들은 생각보다 수월하게 글을 익혔습니다. 그들에게 로마자 표기법을 가르치셨던 현지 선교사님도 놀라워하시더군요. 제가 생각하기에도, 다음 글에서 밝힐 한글의 특성 때문에 한글이 다른 글자에 비해 익히기 쉬운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이 단기간에 한글을 익힐 수 있었던 데엔 몇 가지 숨은 사정이 있었습니다.

제가 가져갔던 한글 라후 문자는 우리가 쓰는 한글처럼 통글자를 만들어 모아 쓰지 않습니다. 모음과 자음을 독립시켜 모음은 무조건 자음의 오른쪽에 쓰도록 되어 있지요. 게다가 라후어는 일본어처럼 받침이 없는 언어입니다. 심지어 일본어에 있는 비음(ん) 받침조차도 없습니다.

그러니 한글을 기반으로 한 문자지만 우리가 쓰는 한글보다 오히려 배우기가 쉽겠지요. 또한, 제가 가르친 학생들은 모두들 교회에 다녀 로마자 표기법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여러 가지 현지 사정상 이렇게 로마자 표기법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로마자 표기와 한글 표기를 1대1로 대응시켜 가르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문자 개념이 전혀 없는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것과는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지요.

그 외에, 마을 주민들에게 글을 익히는 대가를 지불했다는 것도 큰 이유가 될 것입니다. 사실 그들에게 한글 문자를 익혀야 할 필요성이란 전무합니다. 그것은 1편에서 이야기한 대로 이들이 자기 언어를 문자화해 사용할 필요는 지극히 제한적인 데다가, 꼭 필요할 때는 이미 있는 로마자 표기법을 쓰고 있기 때문이죠. 게다가 이들은 가난합니다.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처지에 필요하지도 않은 수업을 위해 시간을 내고 글자를 익히는 것을 자발적으로 할 리가 없죠. 그래서 제작사 측에선 프로그램 성사를 위해 이들에게 글자를 다 익히는 사람에게 일정액의 돈을 지불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작진이 1차 촬영을 마치고 귀국한 사이에도 평균 10명 이상이 참여한 수업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사실 확인을 앞서는 '민족적' 보도

이쯤 이야기하면 제가 이 프로그램을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쇼'라고 부른 이유를 아시겠지요? 사실, 웬만한 다큐멘터리 필름에도 약간의 연출은 필요합니다. 사람 사는 모습에 평면적으로 카메라를 들이댄다고 원하는 장면을 얻을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그러나 제가 출연했던 프로그램의 경우 프로그램 자체의 스토리도, 배경도 허구였습니다.

게다가, 제가 그 마을에 혼자 들어가 마을 사람들에게 환대받으며 살았다는 설정을 위해, 멀쩡한 대나무집 한 채를 허물었다 다시 짓기도 했습니다. 돈을 받긴 했지만, 영문도 모를 쇼에 동원돼 몇 번이고 다시 돌아가는 카메라 앞에서 어이없어 하며 웃던 마을 사람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 됩니다.

어쨌든 그 해 8월 7일, 모든 촬영을 마치고 귀국한 후로 저는 방황을 거듭하다 언어학자가 되기를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그 일이 없었다면, '한국어'를 주제로 삼은 한국인 학자들이 흔히 그렇듯이 저도 민족적 열정이 뛰어난 언어학자가 되었을 것 같네요. 우리나라에서 '민족적'인 것은 쉽게 '좋은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러나 그것이 깨인 이성과 철저한 조사, 확실한 고증 없이 학문과 언론의 권위를 등에 업을 때, 우리는 누구에게 어떤 폭력을 행사하게 될 지 알 수 없습니다.

이번 떼뚬 해프닝을 사실 확인도 없이 기사화하고 한글에 대한 섣부른 칼럼까지 실었던 일부 언론들을 보며 그 때가 생각나는 것은 제가 유별난 탓은 아닐 겁니다.

(3편에 계속)

유리나

다음은 2001년 10월 한 통신사에서 보도한 MBC 한글날 특집 <한글, 라후마을로 가다> 기사 내용이다. 당시 이 통신사 뿐만 아니라 대부분 언론사에서 대동소이한 보도를 내보낸 바 있다. [편집자 주]

MBC 한글날 특집 '한글 라후 마을로 가다'

태국 북부 산악지대 라후마을에서 2개월 동안 한글을 가르치면서 주민들이 우리말을 습득하는 과정을 담은 MBC 다큐멘터리「한글 창제 555주년 특집-한글 라후 마을로 가다」가 한글날인 9일 오전 11시5분 방송된다.

아열대성 기후의 이곳 산악 마을 주민들의 조상은 고구려 유민으로 추정되며 의상이나 놀이, 전래민요 등이 우리와 흡사하지만 이들의 과거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

MBC는 94년부터 라후족 언어를 연구하며 이곳 주민들에게 한글문자를 만들어 주는 일을 하고 있는 이현복 서울대학교 교수의 도움을 얻어 현지에 '라후한글학교'를 세웠고 올 6월15일부터 두 달간 주민들에게 한글을 가르쳤다.

과거 한자를 차자했고 최근에는 영어도 일부 사용하고 있지만 이들에게는 아직 문자가 없고 라후말과 우리말 사이에는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한글에 관한 한 이들은 완전 문맹이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한글을 가르친 50명 가운데 16명이 2개월의 교육과정을 이수한 뒤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한글로 표기할 수 있었다.

두 달이라는 짧은 기간에 한글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우리말을 습득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말이 그만큼 체계적이고 과학적이어서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음을 입증한 셈이다.

한글은 언어생리학적 원리가 그대로 형상화된 완벽한 표음문자이며 세상의 모든 소리를 다 기록할 수 있다는 국내외 학자들의 평가가 조금도 틀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제작진은 설명했다.

이번 프로는 우리말과 방송언어에 관심이 많은 MBC 아나운서들이 직접 기획해 만든 것으로 아나운서들이 프로그램 기획을 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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