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보 영상이 조작됐다는 그 기사들 때문에 오늘 기자회견을 하게 됐다.”

5일 SPC 던킨(비알코리아) 위생실태 고발 2차 기자회견에서 주최측은 ‘언론 기사’를 여러 차례 지적했다.

사회를 맡은 김재민 SPC·파리바게뜨 시민대책위 간사는 “그간 양측 입장을 다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에 그런 기사를 쓰신 걸로 이해하겠다. 오늘 기자회견에서 충분히 납득할 만한 정황을 제시하겠다”며 “이후에도 일방적 입장이 기사로 나오면 불가피하게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김재민 간사는 영상을 공개한 후엔 “기자분들게 여쭤보고 싶다. 과연 회사의 주장처럼 공익제보자가 조작했다고 보시는 건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제보자 신상 공개하고 ‘민노총’ ‘조작’ 프레임

던킨 도넛 공장 비위생 실태 문제는 KBS 보도를 통한 폭로, 비알코리아의 조작설 제기, 식약처 공장 점검 및 결과 발표, 제보자 기자회견 등 네 가지 이슈가 이어졌다.

던킨 제조 공정의 비위생 실태는 강은미 정의당 의원실이 받은 제보 내용을 다룬 지난달 29일 KBS 보도로 촉발됐다. KBS가 공개한 영상에는 던킨 안양 공장의 도넛 제조 공정에서 기름 때가 반죽에 섞이는 등 비위생적인 실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반향이 컸다. 

논란이 되자 비알코리아는 30일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도 ‘조작 정황’을 제기했다. 그러면서 관계자 발로 제보자가 ‘민주노총 지회장’이라는 사실을 언론에 공개했다. 이때부터 정치권과 언론을 통해 SPC 던킨의 위생 문제를 공익신고한 제보자가 오히려 ‘비판 대상’이 됐다. 

▲  경제·보수 언론의 던킨 논란 보도 갈무리
▲ 경제·보수 언론의 던킨 논란 보도 갈무리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뉴스 빅데이터 서비스 ‘빅카인즈’를 통해 ‘던킨’ 키워드로 9월30일부터 10월5일 정오까지 보도 경향을 분석해보면 ‘주요 키워드’에 ‘수사의뢰’와 ‘조작 의심 정황’ 키워드가 뜬다. 이 같은 표현을 비중 있게 전한 보도가 많다는 의미다.

특히 보수·경제 언론의 공세적 보도가 이어졌다. 보수·경제 언론사들은 사건의 네 가지 이슈 가운데 유독 ‘비알코리아의 조작설 제기’에만 무게를 두고 보도했다. 조선일보, 한국경제, 매일경제, 머니투데이, 서울경제는 지면을 통해 1건씩 관련 보도를 했는데, 기사 제목은 다음과 같다.

“던킨도너츠사 ‘기름때 반죽 영상은 자작극’ 민노총 지회장 고소”(조선일보)
“SPC ‘던킨 반죽 기름때, 민노총 지회장이 묻혔다’”(서울경제)
“위생불량 제보영상 조작 정황... 던킨도너츠, 경찰 수사의뢰”(머니투데이)
“‘던킨 비위생 영상은 조작 의심’ SPC그룹, 경찰에 수사의뢰”(매일경제)
“민노총이 이물질 도넛 제보영상 조작”(한국경제)

조선일보, 한국경제, 서울경제는 민주노총 지회장이 제보자라는 사실을 제목에 쓰며 부각했다. 민주노총이 특정한 의도를 갖고 조작했을 가능성을 드러내는 뉘앙스다.

이들 보도는 비알코리아측 입장에 치중했을 뿐 아니라 언론이 공익신고를 한 제보자의 신상을 드러냈다는 점에서도 논란의 소지가 있다.

‘공익신고자 보호법’에 따르면 공익신고자 본인 동의 없이 누구든지 그가 공익신고자임을 미루어 알 수 있는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거나 공개 또는 보도해서는 안 된다. 이와 관련 서울신문은 “해당 CCTV 영상에는 촬영 날짜와 시간도 표시돼 있다. 이는 공익신고자보호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이들 보수·경제 언론사들은 ‘공익신고자 보호법 위반’ 문제를 제기하기는커녕 오히려 공익신고자의 신상을 적극 공개하는 모습을 보였다.

탁종열 노동인권저널리즘센터 소장은 페이스북을 통해 “공익제보자 보호에 대해서는 어느 언론도 관심조차 갖지 않는다. 회사가 공익제보자의 신분을 의도적으로 밝혔고, 공익제보자는 출근하지 말라는 통보를 받았다. 문제 없는 건가”라고 반문했다.

▲ 공익신고자 A씨가 5일 추가 공개한 던킨 도넛 공장 모습
▲ 공익신고자 A씨가 5일 추가 공개한 던킨 도넛 공장 모습

식약처 조사 소극 보도, 조작설 ‘검증’도 하지 않아

조작 논란은 어떻게 봐야 할까. ‘던킨 공정 과정의 비위생적인 환경’이 제보의 핵심이자 사안의 본질이다. 실제 비위생 실태가 제보 영상 뿐 아니라 식약처의 조사로 확인되면서 비위생 문제는 사실로 드러났다.

식품의약안전처는 지난달 29일 던킨 안양 공장을 조사한 결과 식품 및 위생취급 기준 위반 사항이 적발됐다고 밝혔고, 전국 4개 공장을 전수 조사한 결과 위생관리 미흡 문제를 추가로 적발했다. 이와 관련 강은미 정의당 의원은 “SPC그룹 차원에서 아무리 조작을 주장하더라도 식약처가 이틀간 진행한 조사 결과를 뒤집을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그간 조선일보와 한국경제의 지면 기사에서 ‘식약처 조사 결과’에 대한 언급은 일절 찾아볼 수 없었다. 4개 공장 전수조사 결과 위생관리 미흡 등이 드러난 사실과 지난 1일 ‘SPC 던킨도너츠 식품위생법 위반 고발’ 기자회견 역시 이들 지면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민주노총’을 겨냥한 언론사들은 ‘조작설’을 제기한 비알코리아의 주장에 대한 ‘검증’과 ‘확인 취재’에 소홀했던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비알코리아는 입장문을 통해 “아무도 없는 라인에서 소형 카메라를 사용해 몰래 촬영하는 모습이 발견됐다”며 “이 직원은 설비 위에 묻어있는 기름을 고의로 반죽 위로 떨어뜨리려고 시도하고, 반죽에 잘 떨어지도록 고무 주걱으로 긁어내는 듯한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 공익신고자(제보자) A씨(가운데)가 5일 추가 영상 공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금준경 기자
▲ 공익신고자(제보자) A씨(가운데)가 5일 추가 영상 공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금준경 기자

‘몰래 촬영한 사실’은 본질과는 무관하다. ‘설비 위에 묻은 기름을 고의로 반죽 위로 떨어뜨리려고 시도하는 모습’이라는 표현은 ‘설비 위에 언제든 반죽 위로 떨어질 수 있는 기름이 묻어 있다’는 사실을 시인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주걱을 사용한 데 대해선 ‘긁어낸 행동’이 아닌 ‘긁어내는 듯한 행동’이라며 단정하지 못했다. 비알코리아의 입장이 사실이라 해도 외부에서 기름을 가져와 몰래 섞은 게 아닌 이상 ‘과장’일 수는 있어도 ‘조작’이라고 볼 수는 없다. 

이와 관련 제보자(공익신고자)는 5일 기자회견 자리에서 “잔여 반죽을 주걱으로 긁어내려면 장비 위로 올라가야 하는데 그때 몸에 기름이 계속 떨어진다. 급하게 몸에 떨어지는 상황을 해소하기 위한 행동이었다”고 설명한 뒤 “모든 직원이 CCTV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데, 고의로 조작했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반박했다.

공익신고자와 대책위가 5일 추가로 공개한 영상을 보면 비위생적인 실태가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작업자 머리 위에 떨어진 노란색 기름 자국이 보인다. 기름이 천정에서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다는 점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천정과 환풍기 등 곳곳이 기름 때와 먼지로 얼룩져 있다. 도넛에 시럽을 바르는 레일 공정에서는 곰팡이로 추정되는 검은 물질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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