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장기 말이 아니”라던 ‘오징어게임’의 기훈. 넷플릭스에서 글로벌 인기 드라마 1위를 기록하며 흥행 신화를 기록하고 있는 오징어게임의 이 대사를 가져온 이유가 있다. 드라마 오징어게임의 처지가 꼭 기훈과 같아서다.

큰 성공에도 불구하고, 오징어게임 제작진은 제작비의 10~20%를 수익으로 받을 뿐 흥행에 따른 별도의 인센티브를 얻지 못한다. 넷플릭스가 저작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넷플릭스 세계에서, 오징어게임은 구독자를 끌어모을 장기 말일뿐이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챙기는 상황이 생기는 건 넷플릭스가 유독 악독해서가 아니다. 플랫폼의 속성이 그렇다. 플랫폼은 그 이름부터 ‘공간’을 의미한다. 구획된 땅을 의미하는 ‘plat’과 형태를 의미하는 ‘form’의 합성어다. 공간만 만들어놓으면 아무도 찾지 않으니 플랫폼은 제작자에게 투자도 하고 정해진 수익을 약속하며 콘텐츠로 그 공간을 채워 넣는다.

▲ 넷플릭스 ‘오징어게임’ 스틸컷.
▲ 넷플릭스 ‘오징어게임’ 스틸컷.

크리에이터 생태계 전문가 리 진(Li Jin) 아틀리에벤처스 대표는 플랫폼을 중심으로 한 콘텐츠 경제를 두고 ‘빵과 서커스’라고 부르며 비난했는데, 플랫폼이 제작자에게 빵(제작비)을 주고 그들에게 서커스(콘텐츠 제작)를 시킨다는 이유에서였다. 그가 말한 ‘빵과 서커스’는 플랫폼 생태계를 표현하는 가장 적확한 단어다.

문제는 콘텐츠 제작자의 생살여탈권까지 모두 플랫폼이 쥐게 되는 상황이다. 이때 어떤 상황이 벌어지는지는 언론사를 보면 안다. 일찍이 언론사는 포털 플랫폼에 모든 것을 넘겨준 경험이 있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포털과 언론사 관계는 균형을 유지했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을 지나며 언론사가 포털에 종속되기 시작했다. 언론사 사이트 트래픽의 50% 이상이 포털에서 발생했고, 뉴스 콘텐츠는 포털 대문에 걸리는 만큼 그 영향력을 얻었다. 협찬·광고도 그 영향력에 비례해 따라왔다.

뉴스 콘텐츠 유통 권력이 모두 포털 플랫폼에 넘어가는 순간, 뉴스 콘텐츠는 포털에 사람을 끌어들이기 위한 장기 말이 됐다. 언론사는 기꺼이 어뷰징 기사와 자극적 제목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이 상황이 반복되자 언론사는 온라인에서 저널리즘 품질과 자체적인 콘텐츠 전략을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언론사는 포털의 하청업체나 다름없었다.

물론 플랫폼이 절대 악이라는 게 아니다. 플랫폼은 적절한 생태계를 만드는 순기능을 한다. 예를 들어 ‘콘텐츠는 무료’라는 인식이 강했던 인터넷 세계에서 구독 생태계를 만들어낸 건 플랫폼이었다. 이제 사람들은 좋은 음악, 영상 콘텐츠를 돈을 내고 이용한다. 사람들에게 플랫폼을 찾아와 콘텐츠를 보고 돈을 내는 습관을 들인 것이다.

뉴스와 같은 텍스트 콘텐츠에도 그런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애플 뉴스+, 페이스북 불레틴, 트위터 레뷰, 서브스택 등 다양한 구독 모델이 등장해 창작자 경제(Creator Economy)가 형성되는 중이다.

▲ 페이스북 뉴스레터 플랫폼 ‘불레틴(Bulletin)’
▲ 페이스북 뉴스레터 플랫폼 ‘불레틴(Bulletin)’

우리나라에서도 네이버 프리미엄콘텐츠와 카카오 뷰 등 새로운 구독 서비스가 출시됐다. 뉴스 콘텐츠를 무료로 보던 것이 제1막이라면, 뉴스 콘텐츠를 돈을 내고 보는 새로운 2막이 시작될 수도 있다. 뉴스 콘텐츠를 생산하는 창작자인 언론사엔 새로운 기회다. 힘들여 만든 콘텐츠가 정당한 대가를 통해 소비되는 생태계가 만들어질 기회 말이다.

이럴 때일수록 언론사는 자체 경쟁력을 함께 확보해야 한다. 전처럼 플랫폼에 모든 것을 내맡기다간 과거와 같은 전철을 밟을지도 모른다. 애플 뉴스에 뉴스를 공급해오던 뉴욕타임스가 2020년 애플 뉴스 공급을 중단하기로 밝힐 수 있었던 것도, 자사 구독 모델에 대한 확신이 있어서였다. 뉴욕타임스에 플랫폼은 구독자와의 너른 접촉을 위해 이용할 수단에 불과했고, 그 방식이 자사 콘텐츠 전략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되자 빠르게 포기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플랫폼 하나에 목숨 거는 것이 아니라, 적절하게 플랫폼을 취하기도 버리기도 하면서 이용할 수 있을 정도로 언론사가 콘텐츠 유통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렇다면 뉴스 콘텐츠에 구독 경제가 태동하려는 지금이 언론사가 가장 바삐 움직여야 할 때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언론사는 또다시 플랫폼의 장기 말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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