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단독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고의 또는 중과실 추정’ 조항이 민사법의 원칙을 훼손하고 비리 대상자의 배상 책임은 놔둔채 비리를 고발한 언론에 5배 배상책임을 묻게 한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심지어 한 법학자는 이 조항 탓에 법안이 ‘괴물’로 변했다는 혹평을 하기도 했다.

지난 25일 새벽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한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대안은 ‘언론 등의 고의 또는 중과실로 인한 허위·조작보도에 따라 재산상 손해를 입거나 인격권 침해 도는 정신적 고통일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손해액의 5배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손해배상액을 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제30조의2 제1항). 특히 고의 또는 중과실을 추정할 수 있는 요건으로 △보복적이거나 반복적인 허위조작 보도 △정정보도등이 있었는데도 충분한 검증없이 복제 인용한 보도 △기사의 본질과 달리 제목·시각자료(사진·삽화·영상 등)를 조합해 새로운 사실을 구성하는 등 기사를 왜곡 한 경우를 제시했다. 피해자가 이 요건에 해당된다고 추정하고 주장하면 해당 언론사는 그렇지 않다는 반대 입증을 해야 한다. 결국 고의 또는 중과실이 아니라는 입증 책임을 언론이 해야하는 이례적인 법안이 탄생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6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고의 또는 중과실의 추정’ 조항을 두고 “가중처벌 또는 증액배상 요건의 입증 책임을 피고에게 전환하는 것으로, 어느 나라의 법전에도 어느 시대의 법전에도 찾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박 교수는 “우리나라의 경우 이례적으로 분야별로 배수손배 조항(징벌적 손해배상)을 만들면서 ‘고의 또는 과실’에 대한 입증책임을 경감한 사례는 있으나 제조업체와 소비자, 대기업과 중소기업, 개인정보처리자와 정보주체 등 권력 비대칭 관계 때문에 사법정의를 실현하기 어려운 경우 입증책임 경감도 하고 손해범위도 같이 높인 경우”라며 “언론중재법에 비교할 만한 사례는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특히 고의 또는 중과실을 구체적으로 ‘추정’하도록 해서 원고의 입증책임을 완전히 없앴다”며 “단순책임이 아니라 실제 손해액의 5배까지징벌책임을 부과하는 요건에 대해서 피고에게 불리한 추정을 하고 입증책임을 갖도록 한 것은 전대미문의 일”이라고 비판했다. 박 교수는 “더구나 고의 또는 중과실 추정 조항은 형벌의 효과 즉 징벌을 의도하면서 무죄추정의 원칙이 아닌 유죄 추정의 원칙을 적용한 격”이라고 비유했다.

박 교수는 “원고가 본인의 피해에 대한 입증책임을 지는 것은 모든 민사법의 원칙”이라며 “법의 이름을 빌어서 상대방에게 타격을 가하겠다면 그 입증을 누가 입증하겠느냐. 피해자가 피해를 입증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언론피해자가 무조건적으로 약자라는 식의 주장은 표현의 자유를 경시하는 태도”라며 “언론사가 무조건 강자인가? 예를 들어 두산 페놀 사건과 같이 오염지역 주민들의 얘기를 보도하면 언론의 피해자는 공장주인 회사가 되는데, 그럼 두산이 약자냐 이를 고발한 언론이 약자냐”고 반문했다. 언론이 수많은 약자를 대리하기 위해 기사를 쓰는 경우도 많다는 지적이다.

▲박경신 오픈넷 이사가 지난 2019년 10월4일 오전 서울 강남구 스타트업얼라이언스에서 열린 'UN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 데이비드 케이 특별초청 콘퍼런스'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경신 오픈넷 이사가 지난 2019년 10월4일 오전 서울 강남구 스타트업얼라이언스에서 열린 'UN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 데이비드 케이 특별초청 콘퍼런스'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위공직자와 대기업 주요주주와 임원을 징벌배상 대상에서 뺐으니 문제 없다는 주장을 두고도 박 교수는 “권력의 비리가 얼마나 강고한 침묵에서 이뤄지는지를 간과한 얘기”라며 “뇌물 전달할 때 국회의원이 직접 받아오지 않고, 운전기사나 보좌관(4~5급) 등 공지자윤리법 적용대상에서 벗어난 사람이 전달한다면 언론이 이를 보도할 때 보좌관 등은 예외가 아니니 고심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위축효과가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고위공직자와 대기업 임원이 아닌, 그들의 ‘눈코귀’와 ‘손발’을 통해 문제되는 행위가 이뤄지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보도가 위축되면 당연히 고위공직자나 대기업 보도도 함께 위축되는 결과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고위 또는 중과실을 추정할 수 있는 요건을 두고도 박 교수는 “30조의2 제2항 제1호의 경우 반복적 보도가 진실이라 믿을 만하다고 보고 보도하는 경우나 비판의 대상이 잘못된 보도라고공격하니 이를 반박하기 위해 보도할 수도 있다”며 “반복적 보복적 보도라고 그것만으로 고의 중과실로 추정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같은 조항 4호인 ‘사진삽화가 잘못 들어간 왜곡’의 경우를 두고도 박 교수는 “일러스트 문제를 일으킨 조선일보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 모든 언론사에 적용되도록 하겠다는 것”이라며 “어떤 공직자에 대한 보도에서 일러스트나 제목의 표현을 통해 재치와 위트, 통렬함을 더할 수도 있는데 이런 표현행위 조차도 위축되도록 했다”고 비판했다.

언론중재법을 두고 박 교수는 “악독한 기업들이 가습기 살균제처럼 연구결과를 조작하면서까지 사람을 죽이는 경우는 징벌적 손배 적용을 안하면서, 일러스트나 제목으로 공인에 대한 보도에 징벌적 손배를 적용하겠다는 것이냐”며 “이해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박 교수는 “나는 일반적인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만드는 것은 찬성하고 노력해왔고, 그걸 언론에도 적용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면서도 “하지만 이 법은 언론에 대해서만 도입하겠다는 것이어서 반대한다”고 밝혔다. 기존에 배수손배제도가 도입돼 있는 17건의 법률을 두고 그는 사회전반이 아니라 상당히 좁은 분야에만 한정돼 있다고 설명했다. 정말 고의 중과실로 사람을 죽인 회사는 5배 징벌 배상을 걱정할 필요가 없고, 이를 보도한 매체만 징벌 배상을 걱정해야 하는 불균형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언론 피해자는 무조건 약자라는 맹신 속에서 만들어진 법이라고 평가했다.

▲언론중재법 개정안 중 제30조의2 고의 또는 중과실을 추정하는 조항 표시. 사진=국회 의안검색시스템
▲언론중재법 개정안 중 제30조의2 고의 또는 중과실을 추정하는 조항 표시. 사진=국회 의안검색시스템

이 법안을 두고 박 교수는 “고의 또는 중과실과 같은 ‘초과주관적’ 요건이 있으면 5배까지 배상하도록 하면서 원고의 입증책임은 사실상 없앴다는 점에서 ‘괴물’이요, 사람을 죽이는 기업에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적용하지 않으면서 사람을 죽이는 기업을 고발하는 언론에 징벌적 손해배상을 적용하는 것은 매우 불균형적인 점에서도 ‘괴물’”이라고 혹평했다.

애초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하기 전에 ‘명백한 고의 또는 중과실에 의한 허위조작보도시 5배 이하의 손해배상을 하도록’ 한 조문에서 ‘명백한’이라는 수식어를 뺀 ‘의도’에 대해서도 박 교수는 비판했다. 그는 “명백하지 않은 고의와 중과실의 경우에도 5배수 손배를 적용하겠다는 취지로, 언론에 대한 징벌을 수월하게 하겠다는 의도는 틀림없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명백함이라는 표현 자체가 의미있는 차별성을 띄는지는 알기 어렵지만, 민주당이 이 표현을 집어넣었다가 다시 뺀 것은 일말의 ‘미안함’의 흔적마저 없앤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이밖에 현행법상 명예훼손죄 형사처벌이나 명예훼손에 따른 손해배상을 구성하는 ‘고의 또는 과실’과 언론중재법 개정안에서의 ‘고의 또는 중과실’이 무슨 차이가 있는지도 의문이다. ‘타인을 비방할 목적으로 출판물에 의해 명예를 훼손한자’(형법 307조제1항, 309조제1항), ‘고의나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로 손해를 가한자’(민법 750조)와 같이 고의성이 입증되지 않으면 처벌하거나 배상책임을 지지 않는다. 특히 공인의 명예훼손 책임의 경우 고의 외에도 ‘현실적(실제적) 악의’와 같은 ‘초과 주관적 요건’을 필요로 한다. 그런 점에서 현행법상 이미 공인에 대한 명예훼손 배상책임을 인정받는 순간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의해 5배의 징벌 배상까지 요구할 수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여기서 ‘고의’는 주관적 요건에 해당한다.

박경신 교수는 “공인에 대한 명예훼손의 경우 일반인의 명예훼손 사건과 달리 법원에서 ‘초과 주관적 요건’을 요구하는데, 뉴욕타임즈의 설리반 사건에서와 같은 ‘현실적 악의(실제적 악의)’를 요구하고 있다”며 “따라서 공인이 명예훼손 소송에서 이기려면 이 같은 ‘악의’를 입증해야 하는데, 악의라는 것은 이를테면 ‘허위인줄 알면서 보도한 경우’를 말한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넣은 ‘고의 또는 중과실’ 중 ‘고의’와 차별성이 없다”고 비판했다. 박 교수는 “결국 공인이 언론 상대로 명예훼손 사건에서 승소하면 곧바로 5배의 손해배상금을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셈”이라며 “그런 점에서 위험한 법안”이라고 해석했다. 다시 말해 현행법으로도 공인 등에게 배상책임을 묻고 있는 고의 또는 악의의 개념을 언론중재법에서 마치 새로운 것처럼 규정해놓고 그 책임만 5배까지 늘려놓은 것이 문제라는 의미다.

▲민법 제750조와 751조. 사진=법제처
▲민법 제750조와 751조. 사진=법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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