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작가들이 양대 공영방송사에 노동조합의 이름으로 단체교섭을 요구하고 나섰다. 계약서상 업무 범위와 급여 일자를 명시하고 물가상승을 반영해 임금을 인상하는 등 방송작가 노동조건을 위한 ‘최소한도’ 요구를 걸고서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는 18일 언론노조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방송작가 노동조건을 정할 교섭을 KBS와 MBC에 요구한다”고 밝혔다. 김한별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장은 “(노조를 결성한) 2017년부터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다방면으로 싸워왔지만 방송사의 묵묵부답으로 메아리처럼 되돌아왔다”며 “더 이상 셀프 개혁에 기댈 수 없어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조합의 권리를 행사하고자 한다”고 했다.

방송작가지부는 교섭안으로 △임금(원고료)의 기준 마련 △현행법을 준수한 계약서 작성 △지역 작가 처우 개선 △비정규직 고충처리 기구 설치 등 4대 요구를 걸었다. 김 지부장은 “듣는 이도 ‘너무 기본적인 것이 아니냐’고 느낄 것이다. 대규모, 그것도 공영방송사에서 주요 방송 제작 스태프가 이런 기본적 권리도 배제된 채 그간 일해왔다”고 했다.

▲김한별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장. 방송작가지부는 18일 언론노조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방송작가 노동조건을 정할 교섭을 KBS와 MBC에 요구한다”고 밝혔다. 유튜브 갈무리
▲김한별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장. 방송작가지부는 18일 언론노조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방송작가 노동조건을 정할 교섭을 KBS와 MBC에 요구한다”고 밝혔다. 유튜브 갈무리

방송작가지부는 임금 인상안으로 올해 언론노조 임단협 지침 인상률(5.2%)에 지부 출범 이래 4년 간 물가상승률인 4.3%를 더한 일괄 9.5%를 걸었다. 원고료 인상 정례화도 요청했다. 똑같이 일하고도 방송에 송출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임금의 반액만 지급하거나 아예 지급하지 않는 기획료 관행 개선도 과제다. 기획 기간의 노동도 인정해 기획료를 100%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방송작가지부는 계약서에 업무범위와 급여 지급일자를 명시할 것도 요구했다. 김 지부장은 “이 부분은 현행법상 반드시 지켰어야 하는 규율임에도 방송사에서 무시해왔다. 명확하게 정해지지 않은 업무 범위 때문에 시키면 모두 다 작가일이 됐다”며 “임금 지급 일자와 방식을 명확히 하라는 것 역시 너무 당연한 얘기다. 그러나 ‘송출 이후 원고료를 입금한다’는 규정 탓에 많은 작가들이 입금 날짜도 모르고 일을 한다”고 했다.

방송작가 가운데서도 열악한 지역사 작가 처우 개선도 교섭안에 포함했다. 언론노조는 “KBS 지역총국 그리고 MBC지역계열사 정규직은 받지 않는 차별을 지역 방송작가들은 구조적으로 겪어왔다. 적어도 공영방송 KBS와 MBC는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했다.

전주KBS 방송작가인 진경은 조합원은 “가장 시급한 문제가 원고료다. 제작비가 줄면 가장 먼저 삭감되는 게 원고료, 먼저 잘리는 것이 작가다. 그렇다고 일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라며 “그 결과 20년차 작가도 200만원에서 30~40만원 더 받는 정도”라고 했다. 진 조합원은 “특히 다큐 프로그램의 경우 지역국 원고료가 본사의 절반 정도”라며 “재방료 미지급 관행도 해결해야 한다. 다큐를 방영한 뒤 지역에서 아무리 10번 방송해도 재방료를 받지 못한다”고 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는 18일 언론노조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방송작가 노동조건을 정할 교섭을 KBS와 MBC에 요구한다”고 밝혔다. 유튜브 갈무리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는 18일 언론노조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방송작가 노동조건을 정할 교섭을 KBS와 MBC에 요구한다”고 밝혔다. 유튜브 갈무리

마지막 요구는 비정규직 고충처리기구 설치다. 방송작가를 비롯한 언론사 내 비정규직들이 피해를 신고할 창구를 마련하라는 것이다. 김 지부장은 “비정규직은 방송사 내에서 벌어지는 온갖 직장 내 괴롭힘, 갑질, 성폭력의 주된 피해자였다. 하지만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더더욱 피해자로서 해결을 바라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김 지부장은 “방송현장은 달라지고 있다. 이제 방송작가가 노동법으로 보호받아야 할 노동자임을 증명하는 많은 판정들, 사례들, 증거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KBS와 MBC가 전향적 태도로 공영방송의 책무를 다하기를 강력히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마지막으로 우리 언론노조 동지들께 호소한다. 비정규직들과 연대해 달라. 착취 없는 방송 노동환경 만드는 여정에 함께해 달라”고 덧붙였다.

윤창현 언론노조 위원장은 “MBC 보도국 작가들과 고 이재학 PD의 노동자성 인정은 그간 자본의 논리, 사용자 편의에 의해 노동자성을 함부로 박탈했던 질서가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음을 보여준다”고 했다. 윤 위원장은 “KBS와 MBC 경영진은 방송작가들의 요구가 지난 세월 본인들이 거리에서 외친 언론민주화의 요구와 무엇이 다른지 생각해보길 바란다. 당당하게 교섭에 나와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된 노동자의 권리를 인정하는 자리를 하루 빨리 시작하자”

▲윤창현 언론노조 위원장. 언론노조는 18일 언론노조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방송작가 노동조건을 정할 교섭을 KBS와 MBC에 요구한다”고 밝혔다. 유튜브 갈무리
▲윤창현 언론노조 위원장. 언론노조는 18일 언론노조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방송작가 노동조건을 정할 교섭을 KBS와 MBC에 요구한다”고 밝혔다. 유튜브 갈무리

1995~2004년 방송작가로 일하며 마산MBC를 상대로 교섭을 요구했던 박미경 전태일재단 기획실장도 “당시 지방노동위원회에서 고등법원까지 가서 회사와 법적다툼을 벌였고, 중앙노동위에서만 방송작가의 노동자성은 인정받았다. 그럼에도 회사가 교섭에 나오지 않을까 희망을 거는 것은 우리 상대가 방송사이기 때문”이라며 “방송사는 우리 시대의 문제로 불평등을 꼽고 완화에 노력을 기울어야 한다고 얘기한다. 그런 공영방송이 함께 일하는 동료 작가에 대해선 프리랜서라는 딱지를 붙여 배제하고 차별해선 안 된다”고 했다.

주우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 사무국장도 “방송사들은 2012년 노조가 아니라며 우리와 교섭을 거부했으나, 2018년 대법원에서 방송연기자는 노동조합의 권리를 지닌 노동자라는 판단을 받았다”며 “더욱이 방송작가는 고정된 시간에 출퇴근하며 회사에 상주해 일한다. 방송작가의 당연한 교섭 요구에 방송사는 응해야 한다”고 했다. 방송작가지부 교섭투쟁에 전태일재단을 비롯한 10여개 노동시민사회단체가 꾸린 연대체 ‘방송작가친구들’도 이날 “온·오프라인 지지 연대 활동을 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KBS 관계자는 이날 방송작가지부의 교섭 요구에 “기자회견 내용에 대해서는 내부 법률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MBC 관계자는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가 교섭 요구안 공문을 보내오기로 해, 내용을 검토해 판단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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