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소범 기자는 한국일보의 최연소 ‘문학기자’다. 입사 3년차였던 2019년 문화부에서도 ‘중후한’ 출입처로 꼽히는 문학을 담당했다. 올해부터는 매주 화요일, 뉴스레터 ‘무낙’(Munhak)을 쓰고 있다.

‘문학’을 소리 나는 대로 쓴 ‘무낙’은 ‘당신의 일상에 문학을 똑똑(knock knock) 두드린다’는 뜻이다. 매주 시를 비롯한 세 편의 문학 작품과 함께 읽으면 좋은 기사들을 소개한다.

가장 전통적인 미디어라 할 수 있는 책이 주력인 문학기자가 새로운 플랫폼으로 각광받는 뉴스레터를 발행하는 일상은 어떻게 채워지고 있을까. 콘텐츠가 넘쳐나는 요즘 책을 소개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지난 6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사옥에서 한소범 기자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무낙’은 어떻게 연재하게 됐나.
“지면 기사에만 얽매이지 말고 다양한 것들을 시도해보자는 취지로 회사에 뉴스레터 전담팀이 생겼다. 문학기자로 3년차가 됐고 그 나름의 전문성을 활용한 뉴스레터를 만들어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이 와서 ‘무낙’을 맡게 됐다.”

-문학기자는 어떤 일을 하나.
“쉽게 말해서 책을 출입처로 삼는다. 일주일에 회사에 200권 정도의 신간이 도착하는데 그 책들을 다 확인하고 이번 주에는 어떤 책을 소개할지 정하고, 읽고 쓰고, 또 다시 고민하는 일이 일상이다. 문학기자는 블로거도 평론가도 아니고, 어느 정도 전문성은 필요한데 또 너무 어렵게 쓰면 안 된다. 책이 사회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는지 고민하면서 유희적인 부분도 함께 고려해야 하는 직업인 것 같다.”

-부럽다는 반응도 있을 것 같다.
“‘책 읽고 독후감 쓰면서 돈 버니까 좋겠다’고들 하는데 일종의 편견이다. 사회부는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 안에 작성한 단신 기사들도 많은 사람이 읽는다. 반면에 문화부는 책 하나를 읽어야 기사 하나를 작성할 수 있다. 물리적인 시간은 굉장히 많이 들어가는데 비해 관심도는 낮으니까 처음엔 박탈감이 컸다.”

김훈, 박래부 등 한국일보 문화부 하면 떼어놓을 수 없는 이들이 있다. 문화부 중에서도 문학 담당은 소위 ‘중후한 출입처’라 평가받아 왔다. 한소범 기자는 3년차에 문학기자가 됐다.

▲뉴스레터 '무낙'을 발행하고 있는 한국일보 한소범 문학기자. ⓒ한소범 제공
▲뉴스레터 '무낙'을 발행하고 있는 한국일보 한소범 문학기자. ⓒ한소범 제공

-한국일보 문학기자로서 최연소라고 알고 있다.
“처음부터 문학기자를 생각하고 기자가 된 건 아니었다. 대학에서 문학과 영화를 전공했는데 기자 준비를 시작했다가 운 좋게 한국일보 문화부 인턴 기회를 얻었다. 이후 한국일보 공채에 합격해 기자생활을 하게 됐다. 문화부에 처음 발령났을 때 연차가 높지 않은 기자가 맡는 게 이례적이라는 반응도 많았다. 최근에는 문학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과 스타일도 많이 바뀌고 있는 것 같다. 사회비판적이고 무거운 내용들만 원하는게 아니라 가벼운 소재의 젊은 작가들도 많이 발굴되는 추세다. 시대에 발맞춰가는 게 앞으로의 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무낙’에선 어떤 기준으로 책을 소개하나.
“단순 ‘리뷰어’가 직업이 아니기 때문에 사회 이슈와 유리될 수 없다. 뉴스레터를 위해서 사회문제를 소개한다기보다, 주목할 만한 이슈가 있을 때 어떤 책에서 인사이트를 발견할 수 있는지 생각하면서 소재를 찾고 있다.”

무낙은 지난 6월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국회 국민동의청원이 10만명을 돌파한 일을 계기로 퀴어 소설을 소개했다. 같은 달 국가인권위원회가 기획하고 작가 은유가 쓴 ‘있지만 없는 아이들’ 발간을 계기로 한국의 미등록 이주 아동 문제를 조명하기도 했다. 

-본격적인 책 소개 전에 쓰는 서문 부분도 인상적이다. 좋아하는 작가 이야기로 뉴스레터를 시작하거나, 동시에 책을 여러 권 읽을 수 있는 꿀팁을 전수하기도 했는데 본인이 가장 기억에 남는 뉴스레터는.
“지난주 발행한 ‘독자에게도 독자의 할 일이 있다’(7월27일) 편이다. 최근 박지리 문학상 수상작을 기사로 썼는데, 박지리 작가는 내가 굉장히 좋아하는 작가임에도 기사에선 구구절절 설명할 수 없었다. 그 아쉬운 점들을 뉴스레터에서 세세하게 다룰 수 있었다. 기사로 소개할 수 없는 것들을 문학과 매개해서 독자에게 말을 걸 수 있다는 즐거움이 있다.”

-팬심을 갖고 작가들을 만날 일이 종종 있을 것 같다.
“직업적으로는 프로페셔널해야 하기 때문에 평소 팬이었던 작가와 인터뷰를 할 때에도 마음을 숨기고 사인도 잘 안 받으려 한다. 그 금기를 딱 한 번 깬 게 은희경 작가와의 인터뷰였다. 은희경 작가의 ‘새의 선물’을 중학생 때 읽지 않았더라면 지금 완전히 다른 일을 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나에게 그런 영향을 준 사람에게 궁금한 것들을 다 물어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는 것 자체가 신기한 경험이었다. 어떻게 보면 성덕(성공한 덕후)이고, 그게 아마 문학 기자에 동경을 가질 수 있을만한 대목이지 않을까 싶다.”

▲뉴스레터 '무낙'을 발행하고 있는 한국일보 한소범 문학기자.
▲뉴스레터 '무낙'을 발행하고 있는 한국일보 한소범 문학기자.

-독서율이 낮아졌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개인적으로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고전적인 ‘책’이라는 형태가 아니라서 그렇지 오히려 활자에 대한 접촉 빈도나 면적은 훨씬 넓어졌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책에 대한 정보를 굳이 언론의 서평란에 의존할 필요가 없게 됐다. 이야기를 좋아하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비슷한 숫자로 여전히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본업과 뉴스레터 발행을 병행하는 건 어떤가.
“뉴스레터는 가욋일에 가깝다. 여럿이 만드는 게 아니고, 뉴스레터 발행을 위한 시간이 따로 할당되지 않는다. 한 편을 만들 때 최소 3시간은 걸려서 월요일 퇴근 후에는 자정까지 레터를 작성해야 한다. 야근을 매주 해야하는 셈이다. 계속 혼자 고민하고 편집도 스스로 하다 보니까 물리적으로 힘든 부분이 있다.”

-그럼에도 계속 무낙을 맡은 이유는.
“메인에 안 걸어줘도 스스로 문화부의 좋은 기사들을 홍보할 수 있는 채널을 내가 갖고 있다는 점. 그게 가장 큰 원동력인 것 같다.”

-구독자들이 뉴스레터를 열어보는 ‘오픈율’이 중요할 텐데.
“이 일 자체가 추가 업무이기 때문에 회사 쪽에서 구독자 수에 대한 압박은 전혀 없다. 공들여서 쓰는 좋은 콘텐츠는 사람들이 알아보게 돼있다’라는 믿음으로 만들고 있다.”

-‘무낙’ 관련해 세운 목표가 있나.
“처음에는 회사의 제안으로 시작했지만, ‘문화부 기자들이 굉장히 열심히 일하고 있구나, 문화부 기자들이 쓰는 글이 되게 재미있구나’라는 걸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관심사의 바깥으로 밀려나다 보니 하고 있는 일들이 작게 취급되는 측면이 있다. 나뿐만 아니라 문화부 기자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것만이라도 독자분들에게 알릴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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